청와대 외교안보라인과 자리할 때면 칭다오 맥주가 건배주로 사랑받은 적이 있다. 2013년 박근혜 전 대통령이 역대 최고 수준의 예우를 받으며 중국을 찾은 시점을 전후해서다. 공산당 기관지격인 환구시보(環球時報)는 ‘한·중 밀월기가 열릴 것으로 기대된다’고 했고, 후아춘잉 외교부 대변인은 박 대통령을 ‘중국의 오랜 친구’라고 환영했다. 한·중은 그러나 북핵으로 촉발된 사드 배치를 놓고 꽁꽁 얼어붙었다. 중국의 사드 겁박이 노골화한 이 즈음 외교가는 칭다오의 칭자(字)도 꺼내기 힘든 분위기일 게다.

가벼울 리 없는 발걸음이다. 중국 국빈방문 일정에 들어간 문재인 대통령 말이다. 사드를 놓고 돌아올 수 없는 강을 건너는 듯한 상황에서 오늘 문 대통령이 시진핑 주석과 역사적인 정상회담을 한다. 앞서 중국 국영 CCTV는 문 대통령과의 인터뷰를 “이웃 간 문제를 해결하는 데 있어 가장 중요한 건 진심으로 대하는 것(以誠相待)”이라는 훈계조로 마무리했다. 리커창 총리는 오찬 면담을 거절했고, 시 주석은 난징대학살 80주년 현장으로 떠나 베이징을 비웠다. 이런 무례는 유례가 없다.

사자성어로 보자면 ‘돌돌핍인’이다.‘거침없이 상대를 압박한다’는 의미다. ‘죽(竹)의 장막’ 시절 ‘도광양회(韜光養晦)’를 외교의 기본 정책으로 삼더니 ‘화평굴기(和平屈起)’를 거쳐 막다른 곳으로 내달리는 양상이다. ‘힘을 키워 칼을 빼들겠다’(덩샤오핑)는 속내를 보인 데 이어 ‘중국은 강국’(후진타오)이라는 선언을 하고, 마침내 시 주석에 이르러선 아무 것도 거칠 게 없다는 오만이다. 우리로선 중국 경도론을 무릅쓰고 북핵 해결사 기대감으로 손을 잡았다가 제대로 뒤통수를 맞았다.

중국의 한국 무시는 어제 오늘 일이 아니다. 19세기 청나라 외교관이었던 하여장은 “조선인은 어린애 같다. 힘을 적절하게 과시하며 달래면…”이라고 언급한 걸로 비밀전문에서 드러났다. 윽박지르다가 적당히 풀어주는 방식으로 마음껏 다룰 수 있다는 업신여김이다. 지난 4월 시 주석이 “한국은 사실 중국의 일부였다”는 발언이 괜히 나온 게 아니다. 우리의 안보 주권인 사드 배치에 딴지를 거는 밑바탕에 깔린 역사인식이다.

한·중 정상회담의 관전 포인트는 너댓가지로 추려진다. 사드와 관련한 중국의 공세 수위와 북핵 공조, 경제 협력 등이 대화 테이블에 오를 전망이다. 1994년 이후 23년 만에 공동성명을 내지 않기로 합의했고, 중국 측은 공동기자회견까지 거부한 상황이고 보면 성과를 기대하긴 어렵다. 중국이 ‘사드 추가 배치를 안하며 미국 MD에 참여하지 않고, 한·미·일 3국 군사동맹을 추진하지 않는다’는 이른바 3불(不)을 기정사실화한 점도 감안할 필요가 있다고 하겠다.

안 그래도 지난 달 베이징 한·중 외무장관 회담에서 망신을 당할 대로 당한 우리다. 왕이 외교부장은 강경화 외교장관을 향해 ‘언필신 행필과(言必信 行必果)’운운하며 3불 이행을 촉구했다. 말에 믿음이 있고 행동에 결과가 있는 사람이 최고 선비라는 힐난에 강 장관은 아무런 대꾸를 못했다. 시 주석의 파상 공세가 명약관화한데다 회담 의제 역시 확정되지 않은 만큼 단호한 대응이 절실하다.

원칙과 명분으로 맞받아 쳐야 한다. 가훈이 ‘기소불욕 물시어인(己所不欲 勿施於人·자기가 (당)하기 싫은 일은 남에게도 시키지 말라)’이라는 시 주석이다. 리 총리도 기자회견에서 이 문구를 인용해 “중국은 패권국이 되지 않을 것이다. 근·현대사의 뼈아픈 경험을 통해 깊이 느낀 바가 있다”고 공언했다. 일본의 난징 대학살로 30만 명이 넘는 희생자를 낸 중국이 사드에 대해 감 놔라 대추 놔라 하는 건 이치에 맞지 않다. 시 주석 스스로 가훈을 어기는 것이기도 하다. 이번에도 가르치려 든다면 강하게 쏘아 붙여야 하지 않을까. 바꿔놓고 생각해보라는 ‘역지사지(易地思之)’가 떠오르지만 ‘논어’의 ‘성사불설 수사불간 기왕불구(成事不說 遂事不諫 旣往不咎)’가 제격이겠다. 결론 난 일에 대해 이러쿵저러쿵하는 건 대국의 자세가 아니라는 일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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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신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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