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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워낼수록, 의식은 꼿꼿해진다

2017-12-13기사 편집 2017-12-13 16:22:38      강은선 기자 groove@daejonilbo.com

대전일보 > 문화 > 공연·전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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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전아트센터쿠 내년 1월 24일까지 최병소 개인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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묵묵하게 흑연과 검은 볼펜만으로 승부를 걸어온 중견작가 최병소(74) 개인전이 아트센터쿠에서 내년 1월 24일까지 열린다.

'지우고, 비우다'의 제목으로 열리는 이번 전시는 골프존문화재단의 후원작가 특별 전시로 열리고 있다.

텅빈 전시실 아래 어둑한 그의 작품이 걸려있다. 30여 점의 그의 작품은 신문에 연필이나 볼펜을 반복적으로 그어 그 활자와 여백을 아예 덮어버렸다. 그래서 바탕이 신문지였는지조차도 알아볼 수 없을 정도다.

최병소는 고집스러운 아이처럼 신문지 위에 볼펜과 연필을 이용해 선을 긋고 또 그어 신문의 전면이 까맣게 그은 선들로 덮이고 마찰로 얇아져서 군데군데 찢어질 때까지 집착스럽게 이 일에 몰두한다. 그것은 마치 우리에 갇혀 자유를 잃은 야생 동물이 극도로 강박한 불안감 속에서 생존하기 위해 극단적인 반복 행위을 하는 본능적 몸부림 같기도 하다.

1970년대 초부터 시작해 현재까지 40여 년을 지속한 지금도 결코 간소화되거나 단축되지 않는 이러한 최병소의 원시적 노동은 신문지 위에 집적되고 끝날 때까지 반복되는 시간의 축적을 통해 어느새 신문지가 아닌 전혀 다른 물질의 결과물로 나타난다.

최병소의 노동의 결과물은 놀랍게도 인공적인 물질이 아닌 마치 자연에서 파생된 석탄 등과 같은 광물(鑛物)을 연상시킨다. 태곳적 생물이 오랜 세월 동안 땅속에 묻혀 열과 지질의 압력을 받아 화석이 된 자연의 파생물처럼 작가의 작품은 그것이 초자연적 에너지가 만들어낸 단단한 '물질'의 결정체인지 혹는 인간의 의도와 노력으로 만들어진 '정신'이 초래한 현상인지 그 여부를 보고 판단하기 힘들 정도이다.

관객은 그의 작품 앞에서 인류가 오랫동안 고민해 온 많은 '물질'과 '정신'이라는 철학적 난문들 앞에서 '실체'가 무엇인지 생각하게 된다. 요컨대 최병소는 예술의 본질을 현상의 배후에 있는 사고하는 실재를 실체의 근거로 삼아야 하는지 또는 만물의 근원은 '물질'이고 사고라는 정신적 현상도 물질의 작용이 초래한 산물이기에 예술의 본질을 결과물에서 찾아야 하는지 작가 스스로도 확답할 수 없기에 그 사이에서 생존하기 위해 본능적 몸부림을 치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그가 신문 기사를 지우는 작업을 시작한 시기가 1970년대였던 만큼 최병소의 신문 작업 계기가 당시 진실을 왜곡하고 언론을 통제했던 정부에 맞선 작가의 저항이라고 해석하는 사람도 있다. 물론 그가 신문이라는 아주 일상적인 재료를 선택한 데는 많은 이유가 있겠지만, 무엇보다도 신문은 누구나 손쉽게 구할 수 있는 아주 흔한 재료일 뿐 아니라 오늘이 지나면 그 가치를 잃고 버려지는 하찮은 재료이기 때문이기도 하다.

하지만 매일 발간되고 하루가 지나면 폐품으로 버려지고 마는 듯한 신문은 우리의 삶 속에 가장 오랫동안 밀접하게 존재해 온 대중 매체이다. 우리는 대중의 한 사람으로서 사회적 문제를 보편적이고 반복적으로 제시하는 대중 매체에 늘 노출돼 있으며, 그 중에서도 신문은 매일 우리의 의식 속에 누적된다.

이러한 누적을 통해 우리는 자기 스스로가 현실에 대한 문제를 사고하고 판단하기 전에 언론이 반복적으로 떠들어 대는 이슈가 당연히 중요한 사안인 것처럼 본능적으로 인식하게 된다. 그래서 작가는 그렇게 우리의 삶 안에서 자연의 이치와 같은 현상처럼 매일 소멸되지만, 사실은 우리 내면에 누적되어 가는 의식의 마비를 피하고자 매일 매일 그렇게 선을 긋고 지우고 또다시 긋고 지우는 것일지도 모른다.

대구 출생으로 중앙대 회화학과를 졸업한 작가는 개인전과 단체전을 열며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다. 강은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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첨부사진2최병소 Untitled, 2009, Newpaper, Ball-Point Pen, Pencil, 50x77cm


첨부사진3최병소, Untitled, 2008, Newpaper, Ball-Point Pen, Pencil, 55x82cm


첨부사진4최병소 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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