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5일 청테이프에 묶여 또래에 폭행 당한 A군에게 교실은 배움터가 아니었다. A군은 사건이 일어나기 전부터 계속되는 학교폭력에 "무서워서 학교에 가기 싫다. 괴롭힘 당하는 일에 싫증이 났다"며 등교를 하지 않았다. 폭행 사실을 알리기도 두렵고, 공부보다 다른 일을 배워보고 싶었던 A군은 "자동차 정비를 배워보고 싶다"며 부모를 설득해 올해 휴학했다.

하지만 휴학을 한 뒤에도 폭력은 계속됐다. A군은 "모든 게 내 탓 같고 그냥 죽어버리려고 했다"며 "보복이 두려워 제대로 얘기하지 못했다"고 고백했다.

한 학생이 죽음의 문턱까지 생각하고 있었음에도 학교나 사회의 시스템은 제대로 작동하지 못했다.

전문성이 떨어지는 처벌 위주의 제도와 교육당국의 안이한 태도가 시스템을 제대로 작동시키지 못하는 요인이라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12일 피해학생 가족 등에 따르면 A군을 폭행한 학생 4명은 학교폭력자치위원회(학폭위)를 거쳐 가담 정도에 따라 출석정지 5일에서 20일 처분을 받았다. 가담정도가 심한 2명은 학생특별교육과 학부모 교육 처분도 병행됐다. 학폭위는 경찰과 학부모 대표, 담당교사 1인 등으로 구성되는데 사안에 따라 1호 서면사과부터 9호 퇴학조치까지 경중에 따라 처분한다.

이 같은 처분은 2명이 구속돼 검찰이 장기 2년, 단기 1년을 구형하고 나머지 3명은 불구속 소년부 송치한 사정당국의 판단과는 거리가 있어 보인다.

원인은 학폭위 위원들의 전문성이다. 학폭위 위원들은 학교 관계자, 학부모 대표 등 학교와 직접적인 관련성이 많은 이들이 대다수여서 처분의 전문성 결여는 물론, 학교의 명예 실추 등을 우려해 중한 처벌을 기피할 수 있다는 것이다.

학교 폭력을 대하는 대전 교육당국의 태도도 문제다. 사건이 중대함에도 시 교육청 차원에서 추가피해 조사나 학폭위가 제대로 작동했는지에 대한 점검이 이뤄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출석정지 처분을 한 이유에 대해 해당 학교는"학폭위 논의결과 가해학생이 중학교 3학년으로 곧 졸업하기 때문에 출석정지 조치했다"는 황당한 답변을 내놨다. 상위 기관인 서부교육지원청 관계자는 "A군의 피해 사실을 보도된 기사를 보고 인지했다"고 말했고, 시교육청 관계자는 "학폭위가 열리면 서면이나 유선상으로 즉시 보고하도록 돼 있다"며 "워낙 많은 학교폭력 사건이 있기 때문에 교육청에서 일일이 개입하기 어렵다"고 해명했다.

이에 전교조 대전지부 관계자는 "학폭위는 업무상 절차에 따라 형식처벌할 뿐 교육적 차원의 처리는 전혀 안된다. 시 교육청 차원의 폭력전담기구 같은 것이 설치돼 보다 체계적이고 전문적인 접근이 필요하다"며 "가해자도 문제아로 낙인찍어 전학을 보내는 것이 능사가 아니다. 성폭력과 관련해 전문기관이 많은 것과 달리 학교폭력은 전문기관이 부족한 만큼 대책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김달호 기자

조수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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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달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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