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 불어 향그러운 날

동구리 호숫가 오솔길을 걷습니다.

갑자기 비가 내리고, 멈추더니

나뭇가지는 맑고 투명한 빗방울

주렁주렁 둥글게 매답니다.

바람 불어 나무는 간지럽다는 듯

참을 수 없는 가벼움으로

둥근 빗방울 머리 위로 떨어뜨립니다.

깜짝 놀라 다람쥐처럼 귀를 세우고

나는 사람방울이 되어

둥글게 굴러가다가 두 발 멈춰섭니다.

주위를 둘러보니 세상은 빗방울 머금고

둥글게 둥글게 돌아갑니다.

서로서로 손잡으면 둥글게 커지는 빗방울

호수를 흔드는 잔잔하고 둥근 포물선

따스한 마음 한 자락 멀리멀리 보냅니다.

둥글게 돌아가는 지구처럼

세상은 둥글다고, 둥글게 살아가라 합니다.

저 하늘은 사람방울 만들어놓고

모른 척 청아한 얼굴 내밉니다.

`둥글다`는 제목처럼 이 시는 온통 둥근 세계로 도배가 된 듯합니다. 또한 물의 세계가 지배적이기도 하지요. 둥글다는 것은 언제나 다시 동근 것을 낳느니. 빗줄기는 빗방울을 낳고 둥근 빗방울은 종내 우리를 사람방울로 만듭니다. 세상은 그렇게 손을 잡고 점점 더 둥글어져 가는 것이지요. 세상은 한껏 부풀어 더 커져만 가는 것이구요. 빗방울은 둥글고 그래서 호수가 둥글고. 또 둥글게 돌아가는 지구가 둥글고. 세상은 더 둥글고 그래서 그것을 품고 있는 하늘도 덩달아 둥글어지는 것입니다. 그러니 둥근 것은 모든 것들의 원형. 그곳에서 새로운 생명은 탄생하는 것입니다.

세상은 서로서로 손잡으면 우리 모두 둥글게 커가는 물방울. 하늘과 사람의 이 먼 거리를 연결시켜주는 것도 정다운 빗방울. 그 빗방울 나뭇가지에 주렁주렁 매달려 머리 위에 떨어져 닿으니 사람도 방울이 되어 점점 커집니다. 못내 그 빗방울로 인해 사람도 사람방울 되어 둥글게 더 둥글게 굴러갑니다. 둥글게 돌아가는 이 지구처럼. 세상은 둥글다고 그래서 둥글게 살아가라고 합니다. 우리 모두는 그렇게 이 한해를 굴러온 것입니다. 힘차게 달려온 것이지요. 한껏 빛과 함께 희망을 품어 온 것이지요. 둥글게 둥글게. 김완하 시인·한남대 국어국문창작학과 교수

<저작권자ⓒ대전일보사. 무단전재-재배포 금지>

저작권자 © 대전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