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청오디세이]박석흥 대한언론인회 편집위원장 겸 주필

대한언론 2017년 3월호 권두좌담 사회를 보는 박석흥 주필(맨왼쪽). 박 주필 다음 시계 도는 방향으로 이택휘 전 서울교대총장, 송평인 동아일보 논설위원, 남시욱 전 문화일보사장 노재봉 전 국무총리 사진=대한언론인회 제공
대한언론 2017년 3월호 권두좌담 사회를 보는 박석흥 주필(맨왼쪽). 박 주필 다음 시계 도는 방향으로 이택휘 전 서울교대총장, 송평인 동아일보 논설위원, 남시욱 전 문화일보사장 노재봉 전 국무총리 사진=대한언론인회 제공
“정치인이 매스커뮤니케이션을 잘못 사용하면 그 역기능 또한 대단합니다. 대중을 저질화·규격화하고, 수동적 종속물로 보수화 시키는 경우를 우리는 많이 보고 있습니다. 조선시대 왕까지 진절머리를 하게 한 언론 3사(사간원·사헌부·홍문관) 인사권을 왕이 빼앗자 조선 왕조의 견제와 균형 장치가 무력화되면서 나라가 망했습니다.”

박석흥 대한언론인회 편집위원장 겸 주필은 “언론은 정확한 정보 제공뿐 아니라 건전한 여론 형성을 하도록 해야 한다”며 “이념 표현의 자유는 서로 다른 다양한 세계관이 존재함을 인정하고 상대방의 의견을 존중할 때 꽃 피울 수 있다”고 강조했다. 반세기를 언론인과 학자로 대한민국 현대사를 지켜 본 ‘현대판 선비’에게 전환기 한국의 언론 및 정치의 좌표와 대전환의 새 방향을 들어본다.

-먼저 대한언론인회를 소개해주시지요?

“원로언론인들의 모임입니다. 언론사 간부를 지낸 500여 명으로 구성돼 있죠. 이승만 대통령의 건국 혁명에서 문재인 정부의 체제 변혁 실험까지의 역사 현장을 바라보고 보도하며 언관(言官)·사관(史官)의 역할을 한 언론계 엘리트 집단의 의식을 수렴하고 공론화하는 조직입니다.”

-2017년 대한언론회는 무엇을 기록했습니까?

“2016년 8월부터 ‘대한언론’ 편집위원장 겸 주필을 맡았습니다. 그 해 12월 9일 박근혜 대통령 탄핵과 지난 3월 10일 헌재 탄핵판결, 19대 대선, 문재인 정부 출범 과정을 충실하게 보도했죠. 대한언론의 ‘자유민주주의 테두리 안에서 헌법적 가치와 법 질서를 지키면서 시시비비를 가리자는 보도원칙’에 따르며 격변기 언론의 허위과장 보도와 가짜 뉴스를 경계하는 감시자의 역할에 충실 했습니다. 제도권 언론이 숨죽이고 좌고우면 할 때 정론지 역할을 하며 편향 보도 지양과 언론의 바른 역사의식을 고취했다고 자부합니다. 전직 대통령이 수감되고 기존 질서가 붕괴되는 시기에 대한민국 국가 정통성·체제 정당성·남북한 관계를 우려하는 회원들의 여론을 충실하게 반영하려고 노력했습니다.”

-‘가짜뉴스’같은 최근의 보도 행태를 놓고 여러 말들이 나옵니다. 현실이 어떻다고 보십니까?

“언론이 기사 자료를 충분히 검토하지 않고 보도해 독자들에게 잘못된 판단을 유도한다면, 그것이 치밀성 결여에 의한 것이라도 중대한 범죄입니다. 언론은 진실해야 합니다. 허위 정보를 유포할 권리가 없습니다. 침소봉대도 안되겠죠. 정보는 객관적이라는 것만으로 충분치 않습니다. 사실 보도와 공동선에 충실해야 합니다. 우리는 정보의 홍수 속에서 허우적거리는 커뮤니케이션 시대에 살고 있습니다. 저널리스트들이 뉴스의 게이트키퍼 역할을 하던 시대도 지나갔습니다. 선전선동이 범람하는 시대에 정확한 정보를 커뮤니케이션 하는 새로운 문제가 부상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어떤 방향의 보도가 바람직할까요?

“언론의 임무는 정보 제공에 그치지 않습니다. 국민들이 정보에 밝은 시민이 되어 건전한 여론 형성을 하도록 해야 합니다. 언론의 자유는 국가에 대한 소극적·방어적 권리였지만 국가질서 형성의 적극적 권리로 그 성격이 바뀌었다고 봅니다. 여론을 중개해 사상의 자유 시장을 만드는 데 기여 해야겠죠. 공론의 장 형성과 관련해 언론은 국가적 관심사와 정책의 우선 순위를 결정하는데 중요한 역할을 해야 합니다. 적폐청산 혁명인가, 체제변혁인가 묻게 되는 대전환기에 언론이 과연 제 기능을 하고 있는 건 지 오늘의 언론 사태는 돌아볼 게 많습니다.”

-신문이 위기라고들 합니다. 타개 방안이 없을까요?

“1990년대 이후 한국의 매체 환경은 급속하게 변했습니다. 일부 언론은 기사의 공정성·객관성 보다 이념을 우선하며 정파주의 보도로 독자 위에 군림하는 시대착오적인 자세를 고수하고 있지 않나요? 선전선동 속에 정치적 무력감과 감각적이고 향락적인 대중문화 탐닉 등의 혼돈 상황에서 언론까지 진보·보수로 양분돼 사회분열을 부채질하는 건 아닌 지 묻게 합니다.”

박 주필은 프랑스 전 대통령이자 석학인 지스카르 데스텡의 저서‘프랑스 민주주의’의 서문을 인용, “언론은 합리적인 조직 결정 도출과 균형 있는 사회 발전을 구현하는데 기여해야 한다”고 거듭 역설했다. 적극적인 소통으로 우리시대 국가의 근본 목적을 국민이 인식하도록 해야 한다는 메시지로 받아 들여진다.

-학술 및 문화재 전문기자로 활동하셨습니다. 기억나는 일이 많을 것 같습니다.

“언론이 통제 받던 60년대 말 신문기자가 되어 김대중 정부의 ‘언론과의 전쟁’이 본격화됐던 2001년에 퇴사하기까지 학술전문기자로 일했습니다. 식민사관 극복과 국어순화·교육개혁·종교개혁·근현대사 정리·전통문화의 창조적 계승 등의 아젠다를 제기하고 그 변화를 지켜본 보람 있는 기자 생활을 했습니다. 학술기자로 일하면서 좋은 선후배와 취재원을 만난 건 큰 행운입니다.”

-아쉬움도 없지 않으실 텐데요.

“강단사학을 지나치게 비판한 게 YS(김영삼 전 대통령) 이후 국사학을 혼미케 한 한 원인이 되지 않았나 돌아 봅니다. 70년 대 민관식 문교부 장관이 무모하게 단행한 교육평준화와 그에 동조한 서울사대 교육학을 비판하고 바른 교육 회복을 집요하게 역설한 게 전교조 결성의 빌미가 된 듯해 반성됩니다.”

혈기 넘치던 젊은 시절 식민사관 극복 등과 관련해 얼마나 독하게 비판했는 지 역사가이자 당대의 논객인 천관우 동아일보 주필이 전화를 걸어와 “어떻게 책임지려고 이렇게 써대?”라고 질책 아닌 질책을 했다. 박 주필은 “정의감이 앞서 아무래도 균형감이 부족했던 것 같다”며 웃었다.

-개교 100주년을 맞아 모교인 대전고에 저서를 포함 100권의 책을 기증하셨는데 무슨 계기가 있었나요?

“주로 고전이었죠. 학교 도서관이 지금은 좋아졌겠지만 후배들이 동서양 고전을 많이 읽었으면 합니다. 기회 있을 때마다 계속 보낼 생각입니다.”

-계획이 있다면?

“역사교육이 문제가 많습니다. 대한민국사와 한국사가 바르게 정리되지 않아 갈등이 심하고 국론이 분열됩니다. 요즈음 모든 책이나 지식인이 일제 침략기를 북한 역사책을 따라 강점기라고 표기합니다. 역사는 밖으로부터 오는 많은 문화와 충돌하며 자기문화를 정립하고 발전하는 겁니다. 한국사를 세계사나 국제관계와 연관해 조명하는 사회과학자들의 주목할 만한 논문이 쏟아져 나왔건만 국사학자들이 보지 않는 게 문제입니다. 한국근현대사 수정 보완과 한국사개론을 정리해볼까 합니다.”

-대외 활동을 많이 하시지요?

“정치학회와 행정학회·한국정치외교사학회·언론법학회·광화문 문화포럼 등에 참여합니다. 세미나와 토론회에 참가하고, 주제발표를 하기도 합니다. 지난 10월에는 평화토론회에서 ‘위기의 한국 어디로 가나-적폐청산 혁명인가, 체제전복 반역인가’를 발표했습니다. 50년 언론인으로 취재했던 자료를 잘 활용해야겠죠.”

-서울에서 충청인들은 자주 보시나요?

“새로운 인물을 찾아 사회에 기여 하도록 하는 게 사명 중 하나인 언론의 임무를 비교적 성공적으로 했다고 믿습니다. 제가 찾아내 국가와 사회에 기여한 탁월한 인물은 대체로 충청도 출신이 많았습니다.”

-충청인들에게 인사말을 부탁 드립니다.

“6·25 이후 대전은 월남한 피난민과 영호남 사람이 뒤섞였습니다. 이렇게 복합된 다양한 문화가 새롭게 피어날 시점이 됐습니다. 기존의 장점을 창조적으로 계승·발전시키는 전기를 기대합니다.”

박석흥 주필이 전환기 언론과 정치의 바람직한 방향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저널리즘·학술영역 접목 완성도 높여… 공주 석장리 유적발굴 등 특종 다수

박석흥 누구

아카데미즘을 저널리즘에 접목시키고 매스미디어에 아카데미즘을 끌어들이는 실험을 과감하게 시도한 언론인으로 손꼽힌다. 신문 제작에 있어 일본의 영향에서 벗어나는 참신한 기획과 오피니언 페이지에 전문가와 지식인 참여를 활성화해 우리 언론의 아젠다 설정을 한 차원 높이는 데 기여했다. 경향신문 문화부장과 논설위원, 문화일보 학술부장, 편집국장대우, 고급지 제작 연구위원, 출판국장 겸 포럼담당 국장 등을 지냈다. 70년대 공주 석장리 구석기 유적과 부여 송국리 비파형 청동검 발굴, 대원군 컬러 사진과 이토 히로부미 사살 직후 안중근 의사 사진, 자유당 말기 국무회의록 등의 발굴 기사와 고려 금속활자 확인 등 특종으로 1면을 장식한 민완기자였다.

현역에서 물러난 뒤엔 언론 전문 매체와 대전일보 등 고정 칼럼을 통해 한국현대사의 바른 인식을 촉구해왔다. 또 건양대와 대전대, 외국어대, 숙명여대, 건국대, 카톨릭대학에서 겸임교수 등으로 강의했고 신문기자와 방송 앵커를 수없이 배출했다.

한국도서잡지주간신문윤리위원과 한국간행물윤리위원, 한국신문방송편집인협회 보도자유위원, 관훈클럽 편집위원, 한국언론법학회 감사, 국채보상운동기념사업회 이사, 독립기념관 감사, 문화재 위원을 역임하는 등 활발한 사회 활동을 펼치고 있다. 충청명사 모임인 백소회 단골 멤버다.

어린 시절 강경과 공주, 부여 등을 오가며 자라 금강과 충청에 대한 기억이 남다르다고 한다. 대전고와 서울대 문리대를 졸업했다. 주요 저서와 논문으로 ‘건국 60년 한국의 역사학과 역사 인식’을 비롯 ‘한국 근현대사 100년의 재인식’, ’한국근현대사 쟁점 연구’,‘신뢰와 존경을 받는 언론’ 등 다수.

독립운동가 집안으로 유명하다. 임진왜란과 병자호란에 5부자가 의병으로 순국한 오충신(五忠臣) 가문이며 외가는 외증조부 등 모두 9명이 대한민국 건국훈장을 받았다. 유관순 열사 문중으로 어머니 류정숙 여사는 3·1여성동지회 명예회장을 역임했다. 아버지 박재규 선생이 공주사대 학장과 인천대 총장, 장인 황운성 선생은 초대 충남도교육감을 지낸 교육가족이다.

대한언론 2017년 3월호 권두좌담 사회를 보는 박석흥 주필(맨왼쪽). 박 주필 다음 시계 도는 방향으로 이택휘 전 서울교대총장, 송평인 동아일보 논설위원, 남시욱 전 문화일보사장 노재봉 전 국무총리 사진=대한언론인회 제공

박석흥 주필은 역저 ‘한국근현대사의 쟁점 연구’에 제국주의 침략과 공산화 위기를 극복하고 선진국 반열에 오른 대한민국의 역사를 상세히 기록했다. 사진=대한언론인회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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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석흥 주필이 전환기 언론과 정치의 바람직한 방향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사진=대한언론인회  제공
박석흥 주필이 전환기 언론과 정치의 바람직한 방향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사진=대한언론인회 제공

송신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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