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능시험이 끝나고 각 대학은 우수한 신입생을 모집하기 위해 분주하다. 더구나 신입생 모집 시기가 대학의 기말고사 시기와 맞물려 있고, 올해는 내년도에 있을 대학기본역량진단을 앞두고 대책을 마련하느라 정신이 없다. 대학기본역량진단은 이미 시행되고 있던 대학구조개혁평가를 대체한 것으로, 대학이 체감하는 것은 사실상 동일하다. 다만 이 대학구조개혁평가에 대해 대학의 구성원들이 체감하는 것은 대학의 구조개혁이라는 다소 강제적인 느낌에서 대학의 기본역량을 평가가 아닌 진단이라는 의미로 순화된 느낌일 뿐이다.

대학의 위기는 사실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학령인구가 감소하고 대학의 정원이 신입생보다 많아지면서 대학이 신입생을 모두 모집하지 못하게 된다는 사실을 인식하면서 대학의 위기는 현실로 다가왔다. 그러나 엄밀히 말하면 대학의 위기는 단순하게 신입생이 미달되는 상황에서 비롯된 것만이 아니다. 대학이 가져야 할 임무와 역할, 특히 대학이 학문에 대한 지속적인 연구와 우수한 인재를 양성해야 한다는 본연의 임무가 시대에 따라 변화되기 시작하면서 대학의 위기는 시작되었다고 할 수 있다.

한때 대학을 구분해 연구중심대학과 교육중심대학으로 분류한 적이 있다. 그리고 그 분류방식은 지금은 직접적인 표현으로 사용하지는 않지만, 아직도 대학을 구분하는 기준으로 인식되고 있다. 연구중심대학을 말 그대로 이해하면 특정 대학은 연구를 강점으로 해서 지속적인 연구를 한다는 의미이며, 교육중심대학이란 연구보다는 학생들의 교육을 중심으로 연구자가 아닌 다른 분야의 사회구성원으로 육성하기 위한 교육에 치중하는 대학을 의미한다.

이런 분류방식을 직설적으로 이해하자면, 연구중심대학은 교육보다는 연구에 치중하고, 교육중심대학은 연구보다는 학생들의 취업을 위한 교육을 목표로 하는 대학을 의미한다고 이해할 수 있다. 어찌 보면 이와 같은 대학의 분류가 대학의 특성화를 위한 타당한 기준이 될 수 있을 것도 같다. 그러나 현실은 전혀 다른 양상으로 나타났다. 연구중심대학을 지향하던, 교육중심을 지향하던 정부의 대학에 대한 평가는 이 두 가지 기준점을 다 갖추고 있어야 했다. 그리고 대학교수에 대한 개별 평가는 연구와 교육의 실적을 모두 충족해야만 승진, 재임용 등이 가능한 구조를 유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현실이 이러하니 대학의 연구와 교육을 담당하는 교수는 연구와 교육이라는 영역에서 비록 평가에 대한 가중치를 선택할 수는 있지만 어느 하나 만을 선택해 집중할 수 없게 됐다. 연구중심대학의 교수라 할지라도 교육을 소홀히 할 수 없고, 교육중심대학의 교수라도 연구업적이 부족하면 아무리 강의를 잘 한다고 하더라도 승진이나 재임용을 할 수 없기 때문이다. 이런 현실에서 세계적인 연구업적을 가진 젊은 학자가 강의 부담으로 인해 목숨을 끊는 경우도 발생하고, 또 학생들의 교육과 강의에 열중하던 교수는 승진과 재임용에서 탈락해 퇴직의 위기에 몰리는 경우도 발생하게 됐다. 아마도 이런 현실 때문에 어느 순간 대학을 분류하던 연구중심과 교육중심이라는 기준이 사라진 것 같다.

요즘 또 다시 대학의 위기가 나타나고 있다. 대학의 중요한 임무인 연구와 인재양성이라는 측면에서 새로운 방향이 제시되고 있으니 말이다. 사회맞춤형 인재 양성이라는 것이 그것이다. 4차 산업혁명을 앞두고 있는 상황에서 대학의 체질을 개선하고 사회수요에 부합하는 연구와 인재를 양성하는 것은 대학의 중요한 임무이자 의무이기도 하다. 그리고 이러한 방향으로 기존의 정체된 대학의 구조와 학문적 방향성을 재정립하는 것은 어찌 보면 필수적이다. 그리고 이러한 방향의 재정립은 대학이 위기를 벗어나서 발전할 수 있는 기틀을 만드는 새로운 방법일 수 있다.

그러나 대학이 스스로 변화돼야 한다는 것이 필수라고 하더라도, 기초학문에 대한 연구와 교육은 유지돼야 한다. 대학에서 새로운 사회변화에 부합하는 직업교육을 해야 하는 것은 당연하지만, 대학의 임무와 의무는 그것에만 한정되는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이런 점에서 대학의 위기극복을 위해 바로 지금이 대학 본연의 임무와 의무를 수행하면서도 사회변화에 부합하는 변화를 선도할 수 있는 방법이 무엇인지 우리 모두가 심각하게 고민하고 그 대안을 강구해야 하는 시기라고 할 것이다. 박광기 대전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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