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주 다니던 산책길에 나섰다가 작은 보퉁이를 든 할머니 한분을 만났다. 얼핏 보기에도 운동을 나왔다고는 보기 어려운 것이, 80은 족히 넘어 보이는 노인의 움직임에는 뭔가 머뭇거림이 있었고, 발에는 낡은 겨울 슬리퍼를 신고 있었다.

연로하신 시어머니를 모시고 사는 터라 노인의 행동에 저절로 눈이 갔다. 예사롭지 않은 몸짓에 눈을 떼지 못하면서도 선뜻 다가서지 못하는 것은, 산에서 오래 지체할 수 없는 내 사정도 있지만 노인의 경계심이 염려되기도 했기 때문이었다. 나를 비켜 올라가던 노인이 돌아서며 말을 걸어왔다.

`여기 피부과가 있다고 해서 왔는데 어딘지 아슈?`

피부과라니 전혀 예상치 못한 질문이었다. 그제야 나는 좀 심각한 상황이라는 생각이 들어 노인에게 다가서며 찬찬히 살폈다. 그렁하게 눈물이 맺힌 눈자위며 불안하게 흔들리는 눈빛이 나를 바라보고 있다. 여긴 피부과 없는데요. 저하고 내려가시죠. 제가 피부과 있는 곳을 알아요. 가능한 아무 일도 아니라는 듯 무심히 말하며 노인의 옷깃을 살폈다. 보건당국에서는 치매를 앓는 노인들의 안전을 위해 간단한 연락처가 적힌 인식표를 옷에 부착할 수 있도록 배부하고 있다. 하지만 노인의 몸에서는 어떤 인적사항도 찾을 수 없었다. 노인은 같이 내려가자는 내 말을 완강히 거부하고 돌아서 등성이 쪽으로 올라갔다. 그렇다고 부득부득 노인을 따라갈 수도 없는 처지여서 관할 파출소에 전화를 걸어 도움을 요청했다. 보퉁이를 힘주어 껴안고 터벅터벅 발걸음을 옮기는 노인을 보며 우리집 어머니방의 보따리들이 떠올랐다. 요즘 들어 부쩍 정신이 흐려지신 어머니는 매일 장롱을 뒤적여 보따리를 싸신다. 무의식중에 보따리를 싸는 행동은 여성 치매노인들에게 나타나는 일반적인 현상이다. 왜 유독 여성들은 정신을 놓은 상태에서도 끊임없이 보따리를 쌀까. 어머니의 모습을 보면서 알 듯도 모를 듯도 한 여인네들의 삶에 마음이 짠해 온다. 미처 철이 들기도 전에 시집이라고 와서 어떻게든 뿌리내리고 살겠다고 얼마나 노심초사했을까. 모든 걸 팽개치고 도망쳐 버리고 싶은 순간은 또 얼마나 많았을까. 그 긴 세월을 자식 낳아 키우고 살았어도 여직 뿌리내리지 못한 마음 한 자락 남아, 보따리 싸놓고 서성이는 여인네들의 삶이 바람으로 불어와 종일 가슴이 시리다. 이예훈 소설가

<저작권자ⓒ대전일보사. 무단전재-재배포 금지>

저작권자 © 대전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