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산안 통과 이후 정국이 경색될 기미를 보이고 있다. 공무원 증원과 최저임금 인상분 보전 관련 예산 등에 반발하는 자유한국당의 기류가 특히 심상찮다. 향후 법안처리과정에서는 예산안 같이 맥없이 물러나지 않겠다며 결기를 세우고 있다. 더불어민주당과 국민의당의 합작으로 인해 `한국당 패싱`을 당했다는 인식도 팽배하다. 그래서인지 닷새 앞으로 다가온 원내대표 경선을 앞두고 출마자들마다 더욱 강력한 대여투쟁을 천명하면서 전방위적 압박에 나설 태세를 보이고 있다.

사실 예산안 처리를 앞두고 민주당이 공을 들였던 측은 한국당이 아니다. 한국당은 예산안에 대해 반대를 했기에 애초부터 제쳐뒀다고 할 수 있다. 명목상으로는 116석을 보유한 제1야당이어서 일차적인 협의대상이지만 실질적으로는 캐스팅보트인 국민의당에게 정성을 들였다. 이런 민주당의 전략은 예상됐던 것이다. 여소야대 현실에서 정부 예산안을 크게 훼손하지 않고 통과시킬 수 있는 방법은 국민의당의 조력 밖에는 없었기 때문이다. 국민의당이 호남을 기반으로 하고 있다는 동질감에도 한때 같은 당을 했던 만큼 그래도 `우군`이라는 인식도 작용했음은 물론이다.

따지고 보면 예산안 통과과정에서 보여준 민주당과 국민의당의 `원포인트 팀플레이`는 향후 정국에 상당한 영향을 미칠 사안이다. 당장 정책연대를 넘어 통합까지도 모색하고 있는 국민의당과 바른정당간의 관계가 어색해지는 모습이다. 바른정당은 국민의당과 마찬가지로 예산심의 내내 문재인 정부의 내년 예산안은 일방적 퍼주기에 불과하다며 반대를 분명히 했다. 때문에 양당은 정책연대협의체를 가동하면서 예산안을 매개로 공조를 다지고 이를 통해 통합까지 염두에 뒀던 것이다.

하지만 국민의당은 민주당과 별도 논의를 통해 호남선 KTX의 무안공항 경유, 개헌 및 선거구제 개편 추진 등 막대한 실익을 챙겼다. 결과적으로 공무원 증원 반대와 법인세 인상 반대 등에 대한 바른정당의 주장을 멋쩍게 만든 것이다. 이런 국민의당의 태도는 영원한 아군도, 영원한 적도 없다는 정치판이지만 바른정당과의 연대 및 통합에 걸림돌이 될 수밖에 없다. 바른정당 입장에서는 국민의당이 언제든 자당의 이득을 위해 방향을 선회할 수 있다고 생각할 수 있다. 바른정당 유승민 대표가 예산안 통과 직후 국민의당에 대해 실망감을 표시한 것도 틈새가 더욱 벌어질 것을 경계하기 때문으로 보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국민의당이나 바른정당 모두 정책연대나 통합의 시도를 멈추지는 않을 것이다. 불과 6개월 앞으로 다가온 내년 지방선거를 놓고 보면 현재 양당의 지지율로는 승부가 쉽지 않다. 양당 모두 이념적으로는 진보와 보수의 틈바구니에서 이렇다 할 입지를 형성하지 못하고 있다. 지역적 기반도 국민의당은 민주당과 겹쳐 상황이 여의치 않고, 바른정당은 그마저도 희미하다. 확고한 제3지대를 형성하지 않고서는 당의 존립까지 위협할 것이란 점을 공감하고 있는 양당 지도부가 추동력 확보를 위해 꺼내든 것이 바로 정책연대요, 통합인 것이다.

이번 예산국회에서 보여준 국민의당의 캐스팅보트는 실리 챙기기에 지나지 않는다는 일각의 비판이 뒤따르지만 불가피한 측면도 없지 않다. 이미 예산안 법정처리 시한을 넘긴 상황에서 가장 큰 부담을 가진 것은 여당인 민주당이었지만 국민의당 역시 자유로울 수 없기는 마찬가지였다. 예산안이 통과되든 부결되든 어느 한쪽으로부터는 비난을 받을 수밖에 없는 것이 캐스팅보트를 쥔 국민의당의 `운명`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국민의당이 언제까지나 민주당 편에 서지는 않을 것이다. 국민의당은 엄연한 야당이고, 당의 최대 주주인 안철수 대표는 여전히 차기 대선을 겨냥하고 있다. 문재인 정부에 각을 세우지 않고서는 존재감이 약화될 수밖에 없다는 점을 모를 리 없다. 이번 예산안 처리 이후 민심의 향방이 어디로 쏠리느냐에 따라 차이는 있겠지만 바른정당과 연대나 통합을 서두를 가능성도 점쳐진다. 이는 국회운영의 주도권을 갖기 위한 더욱 강력한 캐스팅보트이기도 한 것이다. 그 선택의 방향이 문제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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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시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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