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사랑의원(신재호원장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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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수백 년 전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의 첨단 문명의 편리를 누리며 질병, 빈곤, 전쟁, 기아로부터 훨씬 안전한 세상에서 살고 있다. 하지만 과연 우리가 그 당시의 사람들보다 걱정과 불안 없이 살고 있을까. 다음의 통계를 보면 그렇지는 않은 것 같다. 2016년도 정신질환실태 역학조사 결과에 따르면 불안장애의 1년 유병률은 5.7%로 지난 1년 간 불안장애를 경험한 사람은 224만 명으로 추산되고, 유독 불안장애 유병률만 지난 10년간 꾸준히 증가 추세이다. 선진국인 미국의 불안장애 1년 유병률은 무려 성인 인구의 18.1%에 달하고 4.1%는 심각 단계의 불안장애로 분류된다.

불안은 인간의 생존 반응으로 우리에게 닥친 위험을 예고하는 정서적 반응이다. 원시 시대에서 살아남은 우리 선조는 대범하기보다는 걱정이 많고 조심성이 많은 존재였을 것이다. 그렇지 않다면 나약한 우리의 선조는 맹수의 먹이가 됐을 것이니까. 인류는 진화하면서 위험을 피할 목적으로 불안을 유전자에 새겨 넣었던 것이다.

프랑스의 역사가 토크빌은 1830년대의 미국을 방문해 민주주의의 가치를 발견했지만 평등 사회로의 발전이 사회 구성원들의 기대 수준을 높아지게 함으로써 좌절감을 주는 것을 보고 `왜 미국인들은 번영 속에서도 불안을 느끼는가` 하는 의문을 품는다. 현대 사회는 그 당시보다 훨씬 더 물질적 풍요를 누리게 됐지만 그 만큼 부의 격차는 더욱 벌어졌다. 우리는 자신이 가진 것을 누리기도 전에 이웃의 소유물과 성공담에 질투심을 느끼고 상대적인 궁핍감에도 낙오자가 된 듯한 불안감에 휩싸인다.

정보통신 혁명으로 인해 신속하고 평등한 정보 공유는 경쟁의 무대를 전 세계로 확장했다. 이와 함께 치열한 경쟁 속에서 발생하는 인재(人災)나 피해의식에서 저지른 무차별 범죄에 관한 소식도 실시간으로 접하면서 늘 목숨의 위협을 느끼게 된다. 세상의 변화는 점점 가속도가 붙어 한 사람의 일생 동안 몇 번의 혁명적 변화를 겪고 다른 문화 경험과 가치관을 가진 여러 세대의 사람들과 섞여 지내면서 어떻게 적응해야 할지 늘 고민해야 한다.

이런 세상에서 우리의 뇌가 끊임없이 살아남아야 한다는 생존 신호를 보내는 한 불안은 멈출 수가 없다. 즉 불안은 인간이 이 세상에서 살아가는 한 불가피한 증상이다. 따라서 불안에서 도망치려고 애를 쓰며 고통 받는 것보다는 불안과 함께 현재를 살아갈 궁리는 하는 것이 현명하다. 불안과 함께 잘 살기 위한 방법은 무엇이 있을까. 불안 요인을 있는 그대로 바라본다.

뇌에서 생존을 담당하는 부위는 위험에 빠르게 대처하는 것을 중시하다 보니 자극을 정교하기 구분하지 못한 채 위험과 유사한 자극에도 반사적으로 작동되는 경향이 있다. `자라보고 놀란 가슴 솥 뚜껑 보고 놀라는` 일이 생기는 것이다. 따라서 걱정거리를 확대 해석해 불안이 증폭되는 우를 범하지 않도록 불안을 일으킨 걱정과 그 이유를 적어가며 객관적인 위험도와 가능성을 따져볼 필요가 있다.

우리 몸은 전신에 분포된 자율신경계를 통해 호흡, 순환, 대사, 체온, 소화, 분비, 생식 등 생명 활동의 기본이 되는 기능이 무의식적으로 작동하며 항상성을 유지하고 있다. 불안은 자율신경계의 불균형을 초래해 여러 신체 증상을 일으킨다. 호흡은 우리의 자율신경계를 스스로 조절할 수 있는 유일한 통로이다. 오래 내쉬는 숨을 취하는 느린 호흡은 불안 상황에서 일어나는 심리적, 생리적 흥분을 안정시킨다. 따라서 평소 복식호흡을 통한 안정된 호흡은 불안을 조절하는데 매우 유용하다.

하루 일과 중 수시로 떠오르는 걱정거리로 괴로움이 많다면 그 걱정들을 미뤄두었다가 정해진 시간에만 생각하자. 미루는 것이 어렵다면 운동이나 산책과 같은 신체활동을 통해 걱정과 불안감에서 주의를 돌리는 것도 좋다.

알랭 드 보통은 저서 `불안`에서 불안 해결책으로 철학, 예술, 종교 등을 제시했다. 우리는 이들을 통해 타인에게 어떻게 보이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는 것을 깨닫고 각 개인에게 가치있는 것을 추구할 용기를 얻게 된다. 또한 인생의 유한함에 초조해하지 않고 무한한 깊이의 가치감을 통해 안정감을 얻을 수 있다.

오늘도 자신의 미미한 존재감에 대한 걱정이나 불확실한 미래에 대한 두려움이라는 처절한 투쟁 속에 지친 많은 분들이 진료실 문을 두드린다. 불안을 피해 살아 남아야 하는 삶(생존)에서 불안과 함께 지금 여기를 사는 삶(생)으로 바꾼다면 우리의 인생은 더욱 여유로워지지 않을까.

- 신재호 마음사랑의원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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