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는 나의 아버지였다, 이다

수필이 범람하고 있는 시대이다. 대부분의 수필은 `자기계발서` 성격으로 한정돼있다. 일상생활을 섬세하고 아름답게 표현한 피천득 선생의 수필과 같은 글은 더 이상 찾아보기 힘들다. 이러한 때에 피 선생의 제자인 김지영 저자의 글은 수필계에서 새롭게 타오를 하나의 불빛이라 할 수 있다. 저자의 문장은 밑도 끝도 없는 감정적인 언어로 독자들에게 구걸하지 않으며, 잠언으로 가르치려 들지도 않는다. 담담하고 차분하게 자기만의 서사를 풀어낼 뿐이다.

이 책은 현대수필로 등단한 김지영 작가의 첫 수필집이다. 저자는 현재 자신의 고향인 한국을 떠나 미국에서 생활하고 있는 `이민자`이다. 그렇기에 저자에게 `노스탤지어`는 마땅히 품을 수밖에 없는 감정으로 그의 글 전체에는 떠나온 곳, 고향에 대한 그리움이 고유하고 아름다운 언어로 풀어져 있다. 결국 이 작품은 한국에서 `이민자의 문학`이라는 다소 새로운 지평을 여는 첫 발자국이라 할 수 있다.

저자는 늘 그리던 한국이지만 막상 변해 버린 고국에서 `나그네` 같은 심정이 돼버린다. 하지만 정착한 땅 미국에서 `벚꽃`을 보며, 여행 간 부다페스트에서 `돼지껍데기`를 떠올리며 결국 다시 고향에 마음을 둔다. 저자는 고향을 그리워하지만 달라진 고향에 마음을 붙이지 못하고 타향에서도 늘 고향을 그리워만 한다. 곧 이 책은 떠난 자가 `떠난 곳`과 `떠나간 곳` 그 어디에도 머물러 있지 못하고 방랑하며 애끓는 마음에서 탄생한 작품이라 할 수 있다.

이 책 제2장에서는 `아주까리`, `가생이`, `뚝싱이` 등 토속적이고 향토적인 단어에서부터 `꽃상여`, `풍물놀이` 등 잊혀 가는 우리나라만의 고유한 풍습까지 생생하고 찬란하게 소생돼 있다. 젊은 세대에게는 할아버지가 들려주는 구수한 옛 이야기가 될 테고, 저자와 같은 세대에게는 사라져 가는 기억에 대한 공유가 될 것이다. 이호창 기자

김지영 글·사진/ 푸른길/ 27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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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호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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