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코롤리오프의 골드베르크 변주곡

오지희 백석문화대 교수
오지희 백석문화대 교수
지난 25일, 2017 바흐무반주컬렉션 마지막 주자로 러시아출신 피아니스트 예브게니 코롤리오프(Evgeni Koroliov)가 대전예술의전당 무대에 섰다. 2016 바흐시리즈에서 피아니스트 임동혁이 들려주었던 개성 있는 연주와 사못 다르게 다가온 코롤리오프의 바흐는 주관이 최대한 배제된 객관적인 골드베르크 변주곡이었다.

골드베르크 변주곡은 아리아로 불리는 하나의 테마와 30개의 변주곡으로 구성된 1시간을 훌쩍 넘는 대곡이다. 여러 가지 변주를 가진 아리아라고 붙인 원 제목이 시사하듯 바흐는 느린 춤곡풍의 테마에 박자, 리듬, 선율 변화를 시도해 18세기 바로크음악이 표현할 수 있는 건반악기 기법의 다양성을 이 작품에서 모두 실험했다. 본디 테마가 춤 선율이기 때문에 전체가 하나의 장대한 춤곡이라고 할 수 있는 골드베르크 변주곡에는 바로크음악의 이상이 온전히 담겨져 있다. 즉 음악이 감정을 표현하지만 객관적 감정을 그려야 한다는 바로크 음악사상은 작곡가가 자신의 주관적 감정이 아닌 일반화된 감정으로 특정 정서를 표현함을 뜻한다. 예컨대 낭만시기 작곡가들이 자신이 표출하고자 하는 감정을 새로운 음색이나 화성을 만들어 드러냈다면, 바로크 기악음악에서 객관적 감정이란 정해진 관습화된 음악양식을 정교하게 다듬어 감정을 모방하는 것이었다.

코콜리오프의 연주철학은 객관적인 감정을 그리는 바로크시기 작곡기법을 연주와 일치시킨 데서 찾을 수 있다. 다시 말해서 코롤리오프에게 골드베르크 변주곡 악보는 연주자의 주관이 들어가 해석하는 대상이 아니라 피아노라는 악기로 바흐 음악의 의미를 전달하는 충실한 전달자 역할로 남아 있었다. 거기에는 오로지 바흐가 추구하는 음악의 의미를 진실하게 재현하는 순간만 존재한다. 연주자의 손에서 울린 섬세하고 영롱한 음색은 골드베르크 변주곡 선율이 지닌 아름다움을 극명하게 보여주었고 힘을 뺀 연주스타일은 춤곡의 특성이 드러나면서도 결코 가볍지 않았다. 선율이 독자적으로 흐르는 대위법의 변화무쌍한 흐름이 선적으로 예리하게 울리는 가운데 변주곡 각각의 성격에 따라 분위기는 매번 다르게 등장했다.

비록 기교적으로 훨씬 더 정교함을 보였던 젊었을 때 코롤리오프 연주와는 차이가 있었지만, 진실한 태도로 바흐음악을 담담하게 응시하는 관조적인 모습은 너무나 인상적이었다. 이 시대에 자신을 드러내고 음악을 과장해 효과를 부풀리는 음악가들에게서 찾아볼 수 없는 구도자적인 풍모에는 범접할 수 없는 권위가 새겨있었다. 그것은 오로지 바흐에 대한 연주자의 존경심이 바흐음악에 대한 헌신과 만나 작곡자와 연주자의 생각이 완전히 일치된 음악을 보여주었기 때문이다. 오지희 음악평론가·백석문화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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