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이 깊어가는 11월 중순 이후인 하순 무렵이면 일본의 천년 고도 교토(京都)의 킨카쿠지부터 난젠지까지 이어지는 테츠가쿠노미치(哲學の道:철학의길) 일대 단풍가도(丹楓街道)가 그립다. 그곳 철학의길 끝 자락에 위치한 유구한 전통의 정토종 사찰 에이칸도(永觀堂)의 가을 단풍은 정말 압권이다.

에이칸도 경내 곳곳에는 오랜 동안 정성스레 가꿔 온 3000여 그루의 단풍나무들이 빼곡히 들어서 있다. 단풍이 제 때깔을 서서히 드러내는 11월 초순부터 아쉬움의 끝물 매력을 발산하는 12월 초순까지는 각양각색의 매력을 발산하는 수천의 단풍나무들이 고혹적인 매력을 맘껏 드러내 경내는 단풍 관람객들로 북새통을 이룬다. 이 기간 동안에는 교토 일대에서 몇 손가락 안에 손꼽히는 단풍 풍광 명소이다 보니 낮 시간은 물론 오후 5시 반 이후부터 저녁 8시 반까지 3시간 동안 야간조명 개장을 한다.

이곳 에이칸도의 공식 이름은 `에이칸도 젠린지(永觀堂 禪林寺)`다. 화려한 단풍에 견줄만한 지혜와 자비를 구비한 걸쭉한 인재를 양성하겠다는 웅지를 지닌 신죠(眞紹) 스님이 853년에 진언종 사찰로 창건했다. 그 후 오랜 세월이 지나 11세기 후반 무렵 진언도량인 이곳에서 도를 닦던 불세출의 도인 에이칸 스님에 의해 탈바꿈을 하게 됐다. 본래 다재다능했던 에이칸 스님은 젊은 나이에 율사요 삼론종의 학장으로 유명세를 얻으면서 당시 지배계층의 인기를 한 몸에 받았다. 그는 인기절정의 순간 스모든 명성을 뒤로하고 교토 도심에서 벗어난 곳에 위치한, 한물 간 절인 이곳에서 수행정진의 삼매경에 정진했다. 에이칸 스님는 의술에도 조예가 깊어 민초들을 극진하게 보살피며 섬겨 그를 추앙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교토 철학의 길 일대 단풍가도 중에서 필수 코스 중 한 곳은 일본 국보문화재에 빛나는 단풍 명소 난젠지(南禪寺)다. 참고로 이곳의 `대장방`은 국보, `소장방`은 중요문화재, 그리고 `호조정원(方丈庭園)`은 국가명승지로 각각 지정돼 있다.

늦가을 이곳에는 소나무의 초록빛과 단풍나무의 붉은 빛이 채색대비의 절정을 이루는 단풍나무숲이 펼쳐진다. 중후한 분위기의 경내 산몬이나 렌가즈쿠리의 스이로카쿠 등 고색창연한 건축물과 검붉은 단풍이 한데 어우러져 늦가을의 정취는 더욱 무르익는다.

난젠지는 선불교의 린자이슈(臨濟宗) 난젠지파의 본산 선종 사원이다. 1293년에 축조된 난젠지는 원래의 건물은 전란으로 소실되고 오늘날의 전당은 모모야마시대(17세기) 이후에 재건된 건물이 대부분이다. 이곳 `난젠지` 입구에 자리 잡고 있는 산몬(三門)은 2층으로 돼 있어 전망대(난간)에서 교토 시내를 조망할 수 있다. 가을에는 특이한 천장화와 물결무늬 장식의 기둥과 주변의 아름다운 단풍이 한 폭의 풍경화로 마음 깊이 다가온다.

난젠지를 찾으면 비와코(호수) 수로가 흐르는 경내의 수로각과 그곳을 지나 보이는 난젠지의 `일본 정원의 교과서`라 불리는 지센카이유식(池泉回遊式) 정원에 매료돼 가던 길을 멈추고 잠시 묵상에 잠긴다.

이곳 철학의 길에서 다소 벗어나 있지만 도보로 15분 정도면 찾아갈 수 있는 곳에 위치한 신뇨도(眞如堂)는 잘 알려져 있지 않지만 빼어난 교토의 숨겨진 단풍명소다.

늦가을에 이곳을 찾는 개인여행객들은 적지만 단체관광객들로 북적인다. 이곳은 다른 단풍명소 사찰에 비해 그 규모는 상대적으로 작지만 경내 곳곳에 빼곡히 들어서 있는 단풍나무의 수령이 비교적 오래된 편이다. 뿐만 아니라 단풍나무의 품종과 관리상태도 우수해 오랜 세월의 풍파를 이겨낸 단풍잎의 우아한 자태가 매년 늦가을이면 최상의 색상으로 방문객의 마음을 사로잡는다.

철학의길 일대 단풍 삼매경을 즐기려면 교토 지하철 토자이센(東西線)을 이용해 케아게역(蹴上驛)에서 하차하면 된다. 신수근 자유여행 칼럼니스트

<저작권자ⓒ대전일보사. 무단전재-재배포 금지>

저작권자 © 대전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