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이로프로세싱 연구가 표류할 상황에 처한 건 안타까운 일이다. 파이로프로세싱은 원자력 발전 뒤 남은 핵연료를 다시 연료로 활용하도록 처리하는 신기술을 개발하기 위한 것이다. 사용 후 핵연료의 직접 처분은 30만 년에 달하는 관리 기간과 대규모 부지가 필요한 만큼 국민 안전과 미래 세대 부담을 최소화하기 위해 부피와 독성을 저감하는 기술 개발이 부각돼 왔다. 하지만 국회 예산결산특별위원회 소속 일부 여당의원들의 반대로 내년도 예산 확보에 빨간 불이 켜졌다.

한국원자력연구원이 주관하는 파이로프로세싱 관련 정부 예산은 208억 원이 상임위인 국회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를 ‘수시배정’ 예산으로 통과했다. 타당성 검증 및 실증 기술 개발이 절실하건만 31억 원이 삭감된 규모다. 그 것도 사업계획에 대한 평가에 따라 예산 집행여부가 결정되는 수시배정을 결정했다. 활로를 찾나 했는 데 예결위에서 단단히 발목이 잡혔다. 탈(脫)원전이라는 정치 논리로 인해 친환경적 핵연료 폐기 연구 예산이 전액 삭감될 위기에 빠졌다.

탈원전 기조라고 하더라도 사용후 핵연료 안전 관리는 우리 세대 몫이다. 그래서 수년 동안 국내 과학기술자들이 기술개발 계획을 수립하고 연구를 진행해온 게 아니겠는가. 소규모 파이로실험 안전성에 대한 대전시민검증단의 검증이 마무리 단계인 만큼 최소한 상임위인 과학위의 의견을 존중하는 게 옳다. 한·미 공동연구로 진행돼 2020년 타당성 평가를 앞두고 있다는 점도 감안할 필요가 있다고 하겠다.

안 그래도 여권을 중심으로 원자력 연구개발을 해체 및 안전 쪽으로 전환하려는 움직임이 거세다. 미국을 어렵사리 설득해 확보한 파이로 프로세싱이 그러려니와 차세대 기술로 손꼽히는 소듐냉각고속로(SFR) 연구도 재검토 수순에 들어가는 양상이다. 원자력을 포기하는 방향으로 가더라도 사용 후 핵연료 활용은 영원히 해결해야 할 난제가 아닐 수 없다. 지금 해법을 찾지 않고선 고스란히 미래 세대의 부담으로 돌아가고 만다. 정치 논리에 국민 안전이 뒷전으로 밀려날 상황인 데 충청 정치인의 모습은 보이지 않으니 더 씁쓸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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