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는 아이를 다시 한 번 차가운 땅 속으로 홀로 내려 보내야 했다. 사람들은 5년 전 사고로 잃은 하나뿐인 아들을 긴 재판에서 이겨 결국 국립대전현충원으로 이장할 수 있는 것이라고 하였다. 내가 무덤 축복을 하는 내내 엄마는 울었다. 눈물 가득 고인 눈으로 어렵게 경문을 읽어 내려가던 나는 저 어머니에게 아들을 잃었던 그 날 그 시간이 지금 현재 일처럼 되살아나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이처럼 우리에게는 과거의 일이지만 현재의 일처럼 마음속에 간직되고 있는 일들이 있다. 어떤 이에게는 가장 행복했던 추억이 그리고 어떤 이에게는 아주 고통스러웠던 체험이 그렇다.

우리가 영원한 현재로 간직하고 있는 것이 무엇인가 하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왜냐하면 과거의 일이지만 현재의 일처럼 간직되고 있는 그 사건이 현재의 나의 생각과 행동에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누군가 과거의 상처받은 기억들을 안고 살아간다면 그 상처는 그에게 계속해서 아픔을 줄 것이다. 아픔을 간직하고 살아가는 그는 어두운 표정을 지으며 만나는 사람들의 마음도 어둡게 할 것이다. 누군가 과거의 행복한 기억들을 가지고 살아간다면 그 기억은 그의 삶에 생기를 불어넣어 줄 것이다. 밝은 표정을 지으며 살아가는 그는 만나는 사람들의 마음도 밝혀주며 살아갈 것이다.

나에게 있어 사제로서 내가 매일 봉헌하는 `미사`가 영원한 현재이길 바란다. 라틴어인 미사(Missa)는 `파견하다(Mitere)`라는 말에서 왔다. 왜냐하면 미사는 이 예식에 참여하는 것으로 완결되지 않고 미사로부터 파견되어 그 사명을 완수함으로써 완결되기 때문이다. 미사로부터 우리가 받는 사명이 무엇인지 잘 드러내주는 것이 초대 교회 때부터 미사를 불러온 다른 이름인 `기념제`(記念祭)이다. 기념제(ἀναμνησις, 아남네시스)라는 말은 그리스어인데, 이 말은 단순한 과거에 대한 기억을 의미하지 않는다. 기억을 하는 순간에 되풀이 되어 발생하는 사건으로서의 `기억`을 의미한다. 미사에서 기억이 되는 것은 바로 인간의 죄의 용서와 구원을 위한 예수님의 십자가상의 죽음과 부활이다. 우리가 미사 안에서 주님의 명에 따라 최후의 만찬 사건을 기억할 때(루카 22,19), 2000년 전의 그 날처럼 그분은 우리의 죄의 용서와 구원을 위해서 십자가에 못 박혀 돌아가시고 부활하신다. 미사로부터 우리가 받은 사명은 바로 예수님의 희생 제사를 우리의 고유한 삶 안에서 기억해내는 것이다. 십자가 위의 예수님처럼 내가 누군가를 위해서 나를 비우고 희생할 때 나의 삶 안에서 예수님의 십자가상의 죽음과 부활이 기억된다. 나를 힘들게 하는 이웃을 사랑으로 받아들이고, 폭력을 사랑으로 되돌려 주며, 정직하게 살기 위해 손해를 감수할 때, 나의 삶 안에서 거룩한 미사가 봉헌되는 것이다.

그리스도교인들에게 있어 예수님의 수난과 죽음은 매우 소중한 기억이다. 왜냐하면 예수님의 수난과 죽음은 그 어떤 순간에도 내가 충분히 살아갈 가치가 있고 사랑을 받을 충분한 자격이 있음을 말해주는 행복한 기억이기 때문이다. 예수님께서는 십자가 위에서 당신 자신을 나의 구원을 위해서 희생 제물로 받치셨다. 온 누리의 창조주요 심판자이신 분이 나를 위해서 당신의 생명을 받치신 것이다. 의롭고, 선하고, 무엇이든지 잘해내는 내가 아니라 같은 죄를 반복하며 살아가고, 선한 삶을 살아가기에는 많은 한계와 약점이 있는 나를 있는 그대로 사랑으로 받아들이시며 당신의 목숨을 바치셨다. 예수님께서 세례를 받으실 때 하늘에서 들어온 음성, "이는 내가 사랑하는 아들, 내 마음에 드는 아들이다"(마태 3, 17)는 그분께서 우리에게 가장 들려주고 싶어 하시는 말이다. 복음서들을 보면 예수님께서 하신 일은 특정한 민족이나 사람들의 전유물이 되었던 거룩함과 구원을 모든 이에게, 심지어는 죄인으로 여겨졌던 병자와 세리, 그리고 창녀에게 까지 개방하시는 것이었다. 우리는 다만 이 사랑을 거부하지 않고 받아들이기만 하면 된다. 그러면 내 안에 자유와 평화가 흘러넘치는 것을 느낄 것이다. 이러한 사랑을 받고 있는 우리는 받은 사랑을 전파해야 한다. 그럴 때 나의 희생 제사이기도 한 우리 삶의 거룩한 미사는 완성이 된다. 우리는 우리의 이웃에게 나의 비움과 희생으로서 너는 있는 그대로 아름답고 사랑받기 충분하다는 것을 알려주어야 한다. "우리가 서로 사랑하면, 하느님께서 우리 안에 머무르시고 그분 사랑이 우리에게서 완성됩니다."(1요한 4,12) 오창호 천주교 대전교구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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