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년전 처음 미국을 방문했을 때 가장 부러웠던 것은 뉴욕 맨해튼의 거대한 빌딩 숲이나 브로드웨이 광장의 화려한 야경이 아니었다. 워싱턴D.C의 스미소니언 박물관에서 인류 최초로 달에 착륙한 아폴로 11호 우주선 실물을 접했을 때, 시카고 자연사박물관에서 공룡의 뼈들과 인체의 조직을 눈으로 보았을 때 `세계를 이끄는 미국의 힘은 바로 여기서 나오는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국내에선 과학박물관이나 자연사박물관 같은 이름이 생소할 때였다.

박물관(Museum)은 인류의 지혜를 모아놓은 곳이다. 생생한 체험교육의 장(場)이기도 하다. 글로 읽고 상상 속에서나 그려보던 것을 직접 눈으로 보고 몸으로 느낄 수 있다. 그래서 특히나 암기나 주입식 교육의 경향이 강한 우리나라의 경우 어릴 적 부모님 손을 잡고 박물관을 많이 찾은 사람일수록 교양이나 지식의 수준이 높아진다.

한국조폐공사(KOMSCO)가 운영하는 화폐박물관(대전 유성구 소재)은 국내에서 유일한 화폐 전문박물관이다. 경제에서 핵심 역할을 하는 돈(화폐)에 대한 모든 것을 알려준다. 지폐(은행권)와 동전(주화)이 어떻게 제조되고 1000여년 동안 우리나라 돈은 어떻게 바뀌어 왔는지, 가짜돈(위폐)을 막기 위한 위·변조 방지요소에는 어떤 게 있는지, 세계 주요국은 어떤 화폐를 사용하는지를 한 곳에서 알 수 있다.

조폐공사 화폐박물관은 `서울 올림픽`이 열렸던 1988년에 문을 열어 내년이면 개관 30주년이 된다. 공익적 문화사업의 일환으로 화폐에 관한 국민들의 올바른 이해와 인식의 형성에 기여한다는 목적 아래 무료로 개방된다. 1만 4000㎡의 부지에 2000㎡ 규모의 2층 건물로 4개의 상설전시장과 1개의 특별전시장을 갖추고 있다. 국내외 자료 14만 5000여점을 소장하고 있고, 이 가운데 4400여점을 공개한다. 우리나라 공기업이 이만한 규모의 박물관을 상설 운영하는 사례는 손으로 꼽을 수 있을 정도다.

상설전시장은 고대에서부터 고려 조선 근대 현대의 동전을 전시하는 주화역사관, 일제 시대에서부터 현대까지 지폐의 역사를 보여주는 지폐역사관, 지폐에 적용된 위변조 기술을 체험할 수 있는 위조방지홍보관, 우표와 각종 훈·포장, 여권 등 조폐공사가 만들고 있는 기타 제품을 볼 수 있는 특수제품관으로 나눠져 있다.

특별전시관은 지역 사회에 무료로 대여된다. 기념화폐 회화 서예 전각 공예 등 다양한 분야의 특별전시가 연중 열리고 있다.

화폐는 일종의 종합예술이자 그 나라의 국격(國格)을 나타낸다. 그래서 어느 나라든 나라를 대표하는 인물이나 문화유산을 화폐 디자인의 주인공으로 삼게 마련이다. 아이들과 손잡고 화폐박물관을 둘러보면서 세종대왕과 신사임당, 퇴계 이황이나 율곡 이이의 이야기를 들려줘보자. 세계 각국의 화폐를 보면서 그 나라의 역사를 알아보는 것도 살아있는 교육이다. 화폐박물관이 운영하고 있는 진로체험교육이나 `KOMSCO와 함께 하는 돈 이야기` 강연에도 참가하면 금상첨화다. 화폐 디자이너, 화폐 조각가, 주화?훈장 전문가 등 다양한 직업들을 알아보고 돈이 경제에서 어떤 역할을 하는지도 배우는 알찬 시간이 될 것이다.

유대인은 탈무드를 통해 어린 자녀들에게 `돈이란 공기와 같은 것`이라고 가르친다. 인간의 삶에 필수불가결한 만큼 소중하게 여겨야 한다는 것이다. 화폐박물관이 위치한 탄동천은 대전의 명소이기도 하다. 봄에는 흩날리는 벚꽃이, 가을에는 타는 듯한 붉은 단풍이 가슴을 설레게 한다. 벼룩시장이나 어린이 글짓기 대회도 열린다. 아이들과 함께 화폐박물관을 돌아보고 탄동천 산책도 즐겨보는 게 어떨까? 강현철 한국조폐공사 홍보협력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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