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전일보 로고

[수요프리즘] 러시아 보드카 이야기

2017-11-28 기사
편집 2017-11-28 15:50:45

 

대전일보 > 오피니언 > 사외칼럼

  • 페이스북
  • 구글 플러스
  • 카카오스토리
  • 네이버블로그
  • 네이버밴드
  • 핀터레스트
  • 기사URL 복사

첨부사진1
'러시아' 하면 제일 먼저 떠오르는 것이 무엇일까. 많은 대답 중 하나는 아마도 '보드카(vodka)'일 것이다.

보드카는 우리나라의 막걸리와 같은 전통주처럼 러시아를 대표하는 상징이라고 할 수 있다. 국민 1인당 한 해 평균 18ℓ의 보드카를 마시고, 1년에 약 4만여 명이 알코올 중독으로 사망할 정도로 러시아인들의 보드카에 대한 애착은 아주 강하다. '영하 40도의 혹한에서 아내 없이는 살아도, 흑빵과 보드카 없이는 살 수 없다'는 비유는 이러한 보드카에 대한 애착을 잘 말해준다. 러시아인들에게 있어 술은 하나의 '이념'으로 생각해도 될 정도이고, 10세기경 러시아가 국가 종교를 받아들일 때 후보 종교로 이슬람교도 있었는데, 음주가 금지돼 있어 이슬람교를 후보에서 제외시킨 역사적 사실이 말해주는 것처럼 러시아인에게 술은 또 다른 '종교'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보드카는 러시아어 '보다(voda:물)'에서 d와 a사이에 'k'라는 애칭 접미사가 붙여진 이름이다. '작고 귀여운 물'이라는 뜻으로 깨끗한 물로 만든 술이라는 의미를 지니고 있다. 호밀을 원료로 하는 보드카의 특징은 소위 3무(無)라고 하는데 색깔이 없고(무색), 맛(taste)이 없고(무미), 냄새가 없다(무취). 하지만 보드카를 상온 상태에서 개봉하면 무미와 무취는 해당되지 않는다. 독한 양주를 마셨을 때와 같은 맛과 소주보다 강한 냄새가 난다. 그래서 상온 상태의 보드카를 마실 때는 흑빵을 준비해 보드카를 마신 후에 재빨리 흑빵을 코에 대고 냄새를 맡는다. 보드카의 독한 냄새를 중화시키는 좋은 방법이기 때문이다. 이 3무가 모두 충족되기 위해서는 반드시 보드카를 영하 20도의 냉동실에 2-3일 이상 보관해야 한다. 냉동 상태에서 보관하면 점성이 생겨 아주 묽은 죽처럼 되는데, 이때 개봉하면 정말 냄새도 없고 맛도 없다. 맛을 보면 찬 얼음에 혀를 갖다 댄 느낌이다.

보드카는 40도에서 80도에 이르는 독주이다. 그럼에도 아무리 많이 마셔도 숙취가 없는 것으로 유명하다. 과학 시간 자주 등장하는 원소주기율표를 최초로 작성한 러시아의 화학자인 멘델레예프가 보드카는 40도일 때 인체에 가장 무해하다는 실험 결과를 발표한 후 대부분의 보드카는 40도로 제작되고 있다.

보드카는 러시아에서 공식 행사 후 열리는 모든 연회장에서 반드시 있어야만 한다. 건배를 할 때 거의 대부분 보드카로 한다. 러시아에서는 술을 마실 때 반드시 건배사를 해야 하는 독특한 음주 문화가 있다. 술자리에 참석한 거의 모든 사람이 순번에 따라 모임에 어울리는 건배사를 한 후 잔을 비우게 된다. 건배사는 거의 피할 수 없는 '의식'으로 간주하기 때문에 참석하는 손님들은 미리 건배사를 준비하는 것이 좋다. 건배사는 우선 모임의 주선자가 먼저 하고, 중요도가 높은 손님 순으로 주선자의 건배사에 답사하는 형식으로 진행된다. 다만 세 번째 건배사는 반드시 여성을 위하는 내용으로 할애를 해야 한다는 것이 특징이다. 러시아 역사에서 그리고 현실에서 큰 역할을 하는 여성들에 대한 배려라고 봐도 될 것 같다.

친근한 모임일수록 건배사를 하게 되면 잔을 모두 비우는 것이 예의이다. 그래서 '다 드나'(밑바닥까지)라는 건배사가 있기도 하다. 대표적인 건배사로는 '자 즈다로비예'(건강을 위해서)가 있는데 건강에 좋지 않은 술을 마시면서 건강하자라는 말이 다소 모순적이기도 하다.

보드카를 마실 때는 소주를 마실 때와 다른 방법으로 마셔야 한다. 소주를 마실 때는 입술부터 시작해 입 전체로 마시는데 보드카는 입을 열고 목 끝에 털어 넣듯이 마셔야 한다. 알코올이 혀뿌리와 식도만 뭍을 뿐이다. 아주 찬 얼음이 식도를 타고 내려가는 느낌을 받는다. 겨울철 러시아의 거리에 널려 있는 조그만 간이식당에서 찬 보드카 한잔을 주문해 마신 후 5-10분 정도를 기다리면 온 몸에 퍼지는 열기를 느낄 수 있다. 이 때 실외로 나가면 영하 30도의 날씨가 춥지만은 않다.

스트레스를 받을 수밖에 없는 사회 시스템과 긴 러시아 겨울의 지루함, 혹독한 추위는 러시아인들이 보드카를 마실 수밖에 없는 당위성을 부여한다. 러시아인들의 술을 즐기는 문화는 수백 년 동안 러시아인들의 삶을 지켜준 근본적인 요인이며, 보드카는 러시아적 삶의 틀에서 몸부림치고 있는 러시아인들에게 없어서는 안 될 중요한 윤활유라고 할 수 있다. 혹독한 러시아의 겨울을 보고자 하는 분들은 현지에서 러시아의 보드카를 마신 후 느껴지는 러시아의 겨울을 꼭 한번 경험해 보길 바란다. 김태진 배재대학교 러시아학과 교수





<저작권자ⓒ대전일보사. 무단전재-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