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동장군이 기지개를 켜더니 며칠 전 우리 지역에도 첫눈이 내렸다. 설레는 마음에 잠깐 일손을 멈추고 눈 내리는 창밖을 바라봤다. 첫눈은 내게 기쁘고 설레는 순간을 선물했지만, 사회복지 전공자인 내 마음 한 쪽에는 올 겨울 추위를 걱정해야 하는 어려운 이웃이 떠올랐다. 우리의 이웃들은 첫눈을 어떻게 바라봤을까.

서구의 사회복지는 원래 기독교 신자들의 자선활동에서 시작됐다. 자선이라는 말과 유사한 단어로 종교에서 흔히 사용하는 긍휼과 자비, 측은지심이 있다. 이를 쉽게 풀어쓰면 측은히 여기다, 불쌍히 여기다, 동정하다, 아픔을 위로하다 등으로 표현할 수 있다. 이러한 말과 행동을 뒷받침하는 근거가 온정주의 정신이다. 온정주의에 대한 찬반 논란이 있지만, 어려운 이웃을 따뜻하게 돌보고 사랑하라는 정신은 오늘날에도 되새겨야 할 시대정신이다.

어려운 이웃과 함께하는 사회복지 종사자들의 다양한 돌봄 행위는 이러한 온정주의에 뿌리를 두고 있다. 온정은 이웃에 대한 선한 의지, 즉 따뜻한 마음과 사랑의 표현이다. 온정은 마치 열과 같아서 적당한 것이 좋다. 너무 뜨겁거나 차가우면 본질에서 벗어나기 쉽다. 너무 다가가면 연민이나 동정으로 흘러 수치심이나 부끄러움을 느낄 수 있다. 반면 너무 차가우면 서로 간에 벽이 생겨 상대의 입장을 전혀 헤아리지 못한다. 적당한 온정은 바로 공감을 통해 빛을 발할 수 있다.

공감은 나의 눈이 아닌 상대방의 눈으로 그의 처지와 입장을 이해하는 것이다. 결코 쉽지 않은 다가감이다. 나를 비우고 성숙해지는 만큼 상대방의 고통과 아픔이 잘 보이기 마련이다. 말로 될 수 있는 것이 아니고, 마음을 담은 행위로 이어질 때 진심이 살아난다. 진심어린 공감은 참 쉽지 않은데, 우리 사회에는 공감이란 말이 남용되고 있다. 개인적 공감, 사회적 공감, 공감대 형성 등 단지 생각이 일치하는 것을 공감이라고 하는 것 같다.

우리 사회의 복지대상자들은 다양한 경험과 아픔, 고통을 안고 있다. 이들을 위해 정부와 지자체에서 다양한 사회안전망을 구비해 도와주고 있다. 경제적으로 어려운 계층을 위해서 국민기초생활보장제도라는 공공부조를 시행하고 있다. 또한 다양한 사회서비스를 마련해 심리사회적 지원을 아끼지 않고 있다. 그러나 정권이 바뀔 때마다 새로운 복지제도가 만들어지고, 기존 제도들이 너무 자주 바뀌어서 복지 전공자인 필자도 따라잡기 어려울 지경이다. 그만큼 제도로서의 복지는 그 외연이 크게 확장됐다.

그렇다면 확장된 복지제도 만큼 복지대상자들의 행복 체감도가 향상됐을까. 사회복지현장 이곳 저곳 둘러보면 그들은 여전히 힘들게 살아가고 있다. 지역에서는 어려운 이웃을 돌아보는 주민들의 마음이 예전만 못한 것 같다. 더욱이 복지 조세부담이 증가하면서 내 이웃의 돌봄은 국가가 맡아서 해줄 것이라는 생각이 점차 팽배해가고 있다. 반면 내가 조금 더 희생하고 아끼면서 어려운 이웃과 나누겠다는 생각은 점차 약화되고 있다.

각자가 속한 공동체의 이익이 우선이고 경쟁에서 생존하기 위해 치열하게 살지만, 진작 공동체가 거둔 성과는 어려운 이웃들과 큰 손 벌려 나누지 못하고 있다. 개인주의와 기관이기주의에 밀려 우리 사회를 훈훈하게 하던 온정의 손길이 점점 사라지고 있다. 공감은 커녕 불쌍히 여김과 측은지심마저 예전 같지 않은 것이 우리의 민낯이다. 자신이 속한 공동체만 위하는 열정, 부스러기만 나누는 이기심만으로 과연 누구의 마음을 울릴 수 있겠는가.

날씨가 추워지면 어려운 이웃들의 고통과 아픔도 더 크게 다가올 것이다. 정부가 다 해줄 것이라는 생각, 사회복지 종사자들이 대신할 것이라는 생각, 나 아닌 다른 이들이 도와줄 것이라는 생각이 우리의 온정을 사라지게 하고 있다. 정부와 공공의 역할을 주장하기 전에, 인간으로서 어려운 이웃을 돌보고 정을 나누는 온정은 시대를 거슬러 지속돼야 한다. 내가 가진 것의 일부를 내주면서 어려운 이웃을 사랑하는 온정은 진정 가치 있는 선행이다. 하얀 눈이 내리는 이 계절에, 힘들고 지친 이웃의 마음을 녹이는 온정과 공감의 마음이 더욱 확산되기를 기대하며…. 박미은 한남대학교 사회복지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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