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5일, 대학수학능력시험(이하 수능시험)을 하루 앞두고 포항 지역에서 발생한 지진으로 대학입시사상 초유의 일이 발생했다. 11월 16일 전국에서 `일제히` 시행하기로 했던 수능시험이 일주일 연기되었다. 수능시험이 갖는 속성으로 비추어 볼 때 교육당국의 신속한 연기 결정은 당연한 일이었다. 시험 연기의 표면적 이유로 포항지역의 일부 입시고사장의 피해 때문이었지만, 그보다 수험생들이 불안감 때문에 자기 실력을 발휘하지 못하는 사태를 막은 것 같아 다행이다.

시험이 연기됨으로써 교육 현장은 대혼란을 겪었다. 우선 이미 배포된 문제지와 시험장의 보안을 위해 일선 학교들이 극심한 긴장 속에서 일주일을 보내게 되었고, 대학들도 이미 계획해 놓은 입시 일정에 차질을 빚으면서 학사 일정에 큰 부담을 느끼고 있다. 무엇보다도 16일에 맞추어 컨디션을 조절해온 수험생들의 심리적 부담감은 이만저만이 아니었을 것이다. 일부 학생들은 쓰레기통에 던져두었던 교재들을 다시 찾아오는 해프닝이 벌이기도 했다고 한다.

그런데 이번 수능시험 연기 사태를 보면서 이 기회에 우리 대학입시 제도를 근본적으로 바꾸어야 하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현행 수능시험의 가장 큰 문제점은 1회성 일제고사의 성격을 지니고 있다는 점이다. 전국의 수십만 명의 학생들은 교육당국이 일방적으로 정한 특정한 날에 `일제히` 시험을 치러야 하고, 그들은 그 성적에 절대적으로 의존하여 대학입시에 임해야 한다.

현행 수능시험의 문제점에 대해서는 그동안 많은 사람들이 지적을 해 왔다. 가장 큰 문제점은 시험의 기회가 1년에 단 한 번뿐이라는 점이다. 그래서 그해의 수능시험을 망치면 1년을 다시 기다려야 하는 데서 오는 교육적 낭비가 매우 심각하다. 사교육 문제나 재수생 문제도 여기서 파생된다. 감수성이 예민한 청소년 시기에 1년은 매우 길고 지루하고 고통스러운 시간이다. 어느 통계에 의하면, 이른바 명문 대학에 진학한 학생들의 절반 이상이 그러한 재수의 과정을 거쳐 입학을 한다고 한다. 그들은 인생의 황금 같은 시기에 1년이라는 시간을 허비한 것이다.

특수한 사례가 될 수도 있지만, 시험 당일 컨디션이 좋지 않은 학생은 비슷한 능력을 가진 다른 학생에 비해 큰 손해를 볼 수 있다. 당일에 생리적인 변화가 있거나 배탈이라도 나면 그 학생은 1년이라는 시간을 허비해야 한다. 그렇다면 수학능력시험은 진정한 실력을 겨루는 공정한 게임이라기보다는 그날의 컨디션에 따라 시험 성적이 달라지는 불공정 게임이다. 정상적인 학생과 배탈 난 학생을 동일선상에 세우고 100m 경주를 시키는 일과 다르지 않다.

이러한 문제점을 해결하기 위해 몇 년 전 수능시험을 2회로 늘리려는 움직임이 있었다. 그러나 비용과 관리의 어려움이라는 이상한 이유를 들어 포기를 했다. 사실 그런 문제는 시험 과목의 수를 줄이고 자격고사의 성격으로 전환을 하면 해결될 일이었다. 교육 당국에는 학생들의 기초 실력을 평가하여 대학수학 능력이 있는지 정도의 자료만 제시하고, 나머지는 대학 자율에 맡기면 되는 일이다. 예컨대 프랑스의 바칼로레아나 미국의 SAT와 같은 제도를 우리 실정에 맞게 전유하여 도입할 필요가 있다.

가령 학생들에게 수학능력시험에 응시할 기회를 2회 이상 부여하고, 과목별 성적을 일정기간 유효하게 하여 시험의 객관성과 공정성을 제고해야 한다. 그리고 문제의 유형도 객관식 문로 획일화하지 말고, 단답형이나 논술형 등을 함께 도입하여 심층적이고 종합적인 평가가 이루어져야 한다. 또한 수학능력고사의 성적의 반영 여부나 비율을 포함하여 학생 선발의 자율권을 대학에 대폭적으로 이양해야 한다. 이러한 일들이 너무 이상적이라고 하는 사람은 시대에 뒤떨어진 사람이다. 우리 사회, 우리 교육계는 이러한 일을 충분히 해낼 수 있을 만큼의 수준에 이르렀다.

수능시험을 포함하여 대학입시를 우리나라처럼 국가에서 전면적으로 관리하는 나라는 전 세계 어느 나라에서도 찾아보기 어렵다. 교육 선진국의 경우는 더욱 그렇다. 입시과정이나 학사 운영에서 대학의 자율권의 거의 보장되지 않고 있다. 대학들은 입학 정원은 물론이고 입시 일정, 등록금, 입학금까지도 직·간접적으로 국가의 철저한 통제를 받고 있다. 우리나라 수능시험, 혹은 대학입시가 학교와 학생을 `일제히` 통제하기 위한 반민주적 획일화 교육의 출발점인 셈이다.

요즈음 우리 사회의 화두는 적폐청산이다. 교육 현장의 적폐청산은 대학입시의 개혁으로부터 시작되어야 한다. 적폐청산이라는 것은 구시대의 잘못된 제도나 관행을 고쳐서 더 밝은 미래로 나아가기 위한 것이다. 우리나라 교육계의 가장 큰 적폐는 그동안 수십 년 동안 이어온 획일화 교육이고, 그 출발점이 수학능력고사의 `일제히` 시스템이다. 독재 시대의 논리에 부합하는 획일화 교육을 혁명적으로 청산하여, 새로운 민주화 시대에 부합하는 다양성과 자율성을 확보해 나가는 일이 긴요하다. 교육부의 자유보다 학생과 대학에게 더 많은 자유가 요구되는 시대이다. 이형권 충남대 국어국문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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