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희정 시인
김희정 시인
작가가 이슬에 우주를 담고 글에 삶을 실을 수 있다는 것은 행복한 일이다. 이런 생각을 하다 보니 작가는 가난과 동행할 수밖에 없다. 유일한 보상이 있다면 좋은 시, 좋은 소설을 써서 독자들을 만나 칭찬과 격려를 듣는 일이다. 이것마저 없다면 작가(시인)는 그야말로 고립무원이 되고 말 것이다.

작가(시인)가 글(시)을 쓴다는 것은 자기 위안이자 상대방을 향한 소통의 두드림이다. 아무리 문을 두드려도 대답을 하지 않는다면 작가는 외로움에 직면하고 말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도 작가가 글을 포기하지 않는 이유가 있다면 그것은 독자를 향한 마음 때문이다. 골방에서 혼자 고민하고 창작열을 태운다 하더라도 일기가 아니기에 독자가 절대적으로 필요한 작업일 수밖에 없는 것이 창작의 길이다.

요즘 내가 속해 있는 단체, 한국작가회의가 소란하다. 한국작가회의는 독재 시절에 만들어져 40년 역사를 이어온 대한민국의 최대 규모의 문인 단체 중 하나이다. 설립 이후 내내 민족과 평화통일 그리고 가난과 소외된 약자에 대해 관심을 갖고 활동해 왔다. 그런데 유독 친일문학상과 친일 문인에 대한 일에만은 너그럽다.

돌이켜 보니까 십 수 년 동안 친일 문인을 기리는 상을 수상하고 심사한 문인들이 우리 단체의 회원들이다. 빈곤과 친구처럼 지내고 있는데 수 천 만원의 상금을 쥐어주면 쉽게 거부할 수 있는 문인이 생각보다 많지 않을 것이다. 이렇게 받은 상이 일제 강점기에 나라를 팔고 민족을 판 친일 문인을 기리는 상이라는 사실을 알면서도 말이다.

독자들이 읽은 책(시집)이 친일문인들을 기리는 상을 받은 작품이라고 작품집을 산 독자에게 말을 하면 어떤 반응을 보일까. "괜찮다. 작품만 좋으면 되는 것이 아닌가." 하는 독자들에게 더 이상 어떤 말을 할 수 있겠는가. 문제는 그렇지 않는 독자들이다. 아무것도 모르고 수 십 년 동안 이어온 상을 받은 작품이라고 생각해서 샀는데 그 상의 이름을 딴 작가가 친일에 앞장을 서고 독재를 미화하는데 한 몫이 아닌 두 몫, 세 몫 이상을 했다는 것을 알게 된다면 어떤 반응을 보일지 작가는 생각해 보아야 한다.

독자가 없는 작가의 모습은 상상하기 싫은 현실이다. 늦었지만 작가가 독자보다 역사의식이 떨어진다면 어떨 것인가도 생각해 보자. 최소한 작가가 독자 수준은 되어야 하는데 그렇지 못한다면 그거야 말로 민망함을 넘어 황망한 일이 아니겠는가. 이런 작가(시인)들에게 작가정신까지 말하고 싶지 않다. 더불어 친일문학상을 받겠다는 작가들을 제재하지 못하는 단체가 왜 존재해야 하는지 묻고 싶다. 단체도 작가(시인)도 분명 존재 이유가 있다. 한국작가회의가 이런 상을 심사하거나 받는 회원들을 방치하면 단체로서 세상을 향해 독자들을 향해 어떤 말을 할 수 있겠는가. 이 말 곱씹고 곱씹어 보아야 할 때다. 김희정 대전작가회의 회장·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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