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현진 시네마 수프] 플립

어린 시절 교과서에도 실렸던 황순원의 `소나기`나 피천득의 `인연` 때문일까요. 한국 관객이 유독 첫사랑에 대한 남다른 애정을 갖는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곤 합니다. 그런 또 하나의 영화가 있습니다. 2010년 미국 개봉 당시 제작비 대비 꽤나 씁쓸한 관객수를 기록하고 사라진 영화가 지난여름 한국에서 재개봉 같은 뒤늦은 개봉으로 30만 이상의 관객을 극장으로 불러냈던 특이한 이력의 영화 `플립`입니다.

일곱 살의 소년과 소녀가 만납니다. 소년이 새로 이사를 왔고 소녀는 맞은 편 집에 살고 있습니다. 소년은 소녀를 처음 본 순간 이상한 아이라고 생각했고, 소녀는 소년을 처음 본 순간 사랑에 빠졌습니다. 그 후로 6년간 소년과 소녀는 엇갈린 마음을 간직한 채 같은 학교 친구로 이웃으로 지내옵니다. 열세 살이 된 소년과 소녀. 그런데 혼자가 된 할아버지가 소년의 가족과 함께 살게 되면서 변화가 생기기 시작합니다. 할아버지는 정작 자신의 손자손녀들보다 길 건너편 집에 사는 소녀에게 깊은 관심을 갖습니다. 소년의 할아버지가 소년보다 먼저 소녀의 찬란한 빛을 감지한 것입니다. 그러한 할아버지의 행동은 한결같은 소녀의 애정 담긴 행동을 애써 외면해 오던 소년의 주의를 끕니다. 그리고 쌓이는 오해와 사건들 속에서 뜻하지 않게 소녀에게 상처를 주게 되는 일들이 일어나면서 소년의 감정이 복잡해집니다. 소녀를 향한 새로운 감정에 소년은 혼란스러워하는 반면 소녀는 그간의 자신의 맹목적으로 소년을 향했던 마음과 대상에 대해 점점 더 깊은 생각과 현실적인 시각을 갖게 됩니다. 소년을 향한 감정을 하나씩 정리해 가는 소녀를 바라보는 소년의 마음은 점점 더 불이 붙습니다.

`가장 매력을 느끼지 못하는 사람을 가장 쉽게 유혹할 수 있다는 것이 사랑의 아이러니`라고 한 알랭 드 보통의 책의 한 줄이 생각납니다. 같은 책은 우리가 `우리 안에 없는 완벽함을 찾고, 사랑하는 사람과 결합함으로 인간 종에 대한 불확실한 믿음을 유지하고 싶어 한다`고 말합니다. 가질 수 없는 것을 열망하는 마음과 동시에 이상적인 것을 꿈꾸며 그것을 성취할 수 있다는 희망이 우리가 사랑이라고 부르는 마음의 설계도라고 하는 것 같습니다.

가질 수 없는 것을 갖고 싶은, 닿을 수 없는 곳에 닿고 싶은 열망, 기대, 희망 그리고 나 아닌 또 다른 존재와의 완전한 결합이라는 이상의 복합체가 사랑이라고 보는 시각은 사랑의 유효기간은 900일이라고 했던 한 저명한 연구결과와 일맥상통해 보이기는 합니다. 2년 반이라는 시간은 상대를 더 잘 알게 되고, 기대의 어긋남과 실망도 경험하고, 익숙해지고 그리고 결국 그 관계가 생각했던 이상 그 자체와는 역시나 같지 않고 차이가 있음을 알게 되는 과정에 필요한 적당한 시간인 것 같습니다. 실제로 연인들을 대상으로 호르몬을 측정하면 폭발적인 열정과 함께 분비되던 도파민은 평균적으로 2년 반이면 일반적인 수치로 줄어든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사랑은 주기에 맞춰 탄생하고 소멸한다는 것이라는 얘기겠지요. 그래서 우리는 더욱 더 현실에선 불가능한 변하지 않는 불멸의 사랑을 더욱 더 동경하고 칭송하는 것이고 끝없이 그런 사랑이야기를 소비하게 되는 것이라는 얘기일 것입니다.

그러나 사랑을 바라보는 다른 생각들도 많을 것입니다. 굳이 900일의 호르몬 폭발의 열정만을 사랑의 정의로 생각하지 않는 쪽이 필자를 포함한 많은 사람들의 마음이 아닐까요? 우리는 모두 영화의 소년과 소녀가 두 사람의 마음을 확인하고 예쁜 사랑을 키워갈 것을 희망합니다. 호르몬 폭발이 지나가고 고갈되어 밋밋한 사랑의 끝이 예측되는 2년 반의 시한부 사랑을 시작하고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없을 것입니다.

모든 사랑들은 설렘으로 시작합니다. 그리고 나에게 과분한 것 같은 상대가 나에게 관심을 보이고 나를 좋아하기까지 합니다. 상대가 나를 왜 사랑하는지 의구심이 듭니다. 그리고 상대방도 나를 향해 같은 생각을 합니다. 서로가 서로를 나보다 나은 사람으로 바라보며 나를 사랑하는 이유를 알고 싶어 하는 짝. 서로를 알아가면서도 서로 상대가 나보다 나은 사람이라고 생각하는 한 쌍의 사랑이라면 그 사랑의 시간은 더욱 길어지지 않을까요? 드물게 결혼하고 아이를 낳은 후에도 배우자를 보면 가슴이 콩닥콩닥 뛴다는 부부도 만나보긴 했습니다. 그러나 비록 콩닥거리지는 않아도 여전히 상대가 왜 나를 좋아하는지 미스터리가 풀리지 않았다면, 그리고 그 미스터리를 풀기 위해 함께했던 풋풋함과 설렘과 아련함과 동시에 익숙함과 편안함과 서로에의 지지와 도움의 시간들을 되짚어 보는 이들에게는 사랑의 시간은 함께한 시간의 길이만큼 더 길어질 수밖에 없는 것은 아닐까요? 이현진 극동대학교 미디어영상제작학과 교수

<저작권자ⓒ대전일보사. 무단전재-재배포 금지>

저작권자 © 대전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