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목길 자본론

신도시 개발은 구도심을 낙후시키기 마련이다. 빠르고 편리한 신도심 환경은 사람을 끌어 모은다. 이에 반해 골목길은 허전하면서 조용한, 때로는 안전하지 않은 이미지로 각인되기도 한다. 하지만 홍대를 중심으로 시작된 골목길 문화가 삼청동, 가로수길, 이태원 등으로 확산되자 시선은 뒤바뀌고 있다.

최근엔 쇼핑몰도 골목길의 느낌을 차용하고 있다. 신세계백화점 동대구역점 루앙스트리트를 비롯해 몇몇 쇼핑몰은 지역 맛집을 유치해 쇼핑몰 안 골목길을 만들었다. 신도시 복합주거단지에는 아예 스트리트형 상가를 조성하기도 한다. 대형쇼핑몰들이 골목상권을 끌어들여 변신을 시도하고 있는 것이다.

대전도 마찬가지다. 대전은 대전역과 옛 충남도청사 인근 원도심이 주요 상권이었다. 그러나 둔산으로 상권이 옮겨가면서 원도심 재생의 필요성에 대한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원도심 내 뻗어 있는 골목길은 지나온 대전의 역사를 그대로 보여준다.

학문 분야로 따지면 골목길은 주로 건축학과 도시공학의 전유물이다. 소비자수요, 골목상인 공급, 임대료, 상권 간 경쟁 등 골목상권에서 일어나는 다양한 경제적 현상을 체계적으로 설명하지 못했다. 젠트리피케이션이 사회 전체의 주요 논쟁거리가 되는 상황에서도 뾰족한 수를 찾아내지 못한 것이다.

책 `골목길 자본론`은 골목길 경제학자로 불리는 모종린 연세대 교수가 경제학자의 눈으로 골목길을 바라본다. 도시문화를 창출하는 골목상권의 주요 자산인 독립 상인, 건물 투자자의 수요와 공급에 초점을 맞춘다. 골목상권을 이해당사자들의 경제적 선택으로 형성된 하나의 시장으로 설정하는 것이다.

헌데 골목길이 경제력을 회복하고 돈이나 사람이 모이기 시작하면 젠트리피케이션 문제가 항상 대두된다. 골목길 경쟁력 강화에 기여한 상인들이 갑자기 높아진 임대료를 감당하지 못하고 쫓겨나고 마는 것이다. 독립상인들이 사라지는 순간 골목길 특유의 매력은 점차 감소하게 되고 경쟁력 자체도 떨어진다. 반대로 급격한 방지 정책을 펼치면 골목상권의 성장은 둔화된다.

책은 해법으로 `장인 공동체`를 제시한다. 건물주와 상인은 같은 배를 탄 운명공동체이므로, 이들에게 적절한 교육이 필요하다는 것. 특히 건물주에 대한 협상력 확보도 어렵고 대기업 브랜드와의 경쟁도 벅찬 독립상인들을 위해선 자영업 역량 강화에 많은 공을 들여야 한다. 실력 있는 골목길 장인을 학교에서부터 양성해야 한다는 게 저자의 시각이다.

이처럼 책은 경제학의 눈으로 경쟁력 있는 도시와 골목길의 비밀을 밝혀낸다. 어떤 태도로 골목길을 즐겨야 하는지 제안하는 것을 시작으로 골목길의 경쟁력 확보를 위해 필요한 물리적 조건과 문화적 조건을 모두 검토한다. 저자 직접 방문하고 경험한 국내외 다양한 도시의 사례도 실감나게 소개돼 따듯한 에세이처럼 읽힌다. 김대욱 기자

모종린 지음 / 다산북스 / 39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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