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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익훈 칼럼] 내진 설계는 선택이 아닌 의무

2017-11-22기사 편집 2017-11-22 18:21: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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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을 공포에 몰아넣은 포항 지진은 아직도 진행형이다. 역대 두번째로 강한 규모 5.4의 지진으로 주택과 학교를 비롯해 도로, 항만 등도 곳곳에서 파손과 균열 피해가 발생했다. 잠정집계 된 건축물 피해만 1500곳이 넘는다. 수많은 이재민이 임시수용소 신세를 지고 있다. 집으로 돌아가고 싶어도 불안해서 갈 수가 없다. 안전여부를 알 수도 없거니와 수시로 여진이 발생하고 있다. 본진 이후 일주일 동안 60여 차례의 크고 작은 여진이 이어지고 있다. 재난본부가 피해주택 가운데 우선 305곳을 점검해봤더니 11%가 넘는 31곳에서 문제가 확인됐다. 10곳 중 1곳 꼴로 사용이 제한될 만큼 피해가 심각하다는 얘기다. 영하의 날씨에 수용소 신세가 이만저만 불편한 게 아닐텐데 집으로 갈 수 없는 이재민의 심정이 오죽할까. 정부가 포항시를 특별재난지역으로 선포했지만 복구 때까지는 시간이 걸릴 수밖에 없어 안타깝다.

우리나라는 이제 더 이상 지진의 안전지대가 아니다. 지난해 규모 5.8의 경주 지진에 이어 이번 포항 지진으로 새삼 확인된 것이나 다름없다. 더구나 포항 지진은 우리가 지진에 얼마나 무방비 상태인지를 여실히 보여줬다고 할 수 있다. 그중하나가 건물 내진 설계 규정 준수여부다. 내진 설계가 의무화된 학교 건물에서도 균열이 발생했다고 한다. 건립한지 3년밖에 안된 아파트에도 심각한 균열이 생겨 주민들이 대피했을 정도다. 규정대로 지어졌다면 일어나선 안 되는 일이다. 정부의 내진 설계 의무화는 점차 강화되고 있다. 기존의 3층짜리에서 건물에서 앞으로는 2층 건물까지 확대된다. 하지만 중요한 건 내진 기준이 아니다. 건설현장에서 얼마나 충실하게 지켜지는가 하는 것이다.

내진 보강여부에 따라 건물 피해정도에 차이가 있음도 드러났다. 진앙에서 2-3km 거리의 내진 설계 의무규정을 적용받지 않은 한 초등학교 본관 건물은 기둥이 훼손되고 철근이 튀어나올 정도의 피해를 봤다. 반면 같은 학교 서관 건물은 내진보강을 해 피해가 거의 없었다. 한 중학교는 지난해 경주지진으로 건물 외벽이 무너졌지만 그 뒤 내진보강을 한 덕분에 이번 지진에선 경미한 균열만 발생하는데 그쳤다. 기둥만으로 건물을 지탱하는 '필로티' 공법의 건물이 지진에 특히 취약하다는 사실도 확인됐다. 전국적으로 다가구주택의 80% 가량이 1층을 주차공간으로 활용하는 필로티 건물이다. 허점이 드러난 만큼 그냥 나둔 채 요행수만 바랄 수는 없다. 규정을 손질하고 사후에라도 내진보강이 이뤄져야 한다.

국내에서 내진설계가 시작된 건 30년 전이다. 하지만 건축물의 내진 설계 비율은 매우 낮다. 전체적으로 6.8% 수준에 그치고 있다. 규정 이전에 지어진 건물은 어쩔 수 없다고 하지만 그 이후가 심각하다. 내진 설계 의무화 이후에 지은 건물도 33% 정도만 내진 성능을 확보했다고 한다. 70% 가까이가 내진 설계 의무 규정을 무시한 채 지어진 셈이다. 강한 지진이 발생한다면 피해가 커질 수밖에 없는 일이다. 어떻게 건축허가가 났는지 궁금하지 않을 수 없다. 일본의 경우 건축물 내진 설계 비율이 85%나 된다고 한다. 1년 내내 지진 공포에 살고 있는 탓이기도 하겠지만 철저히 재난에 대비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기도 하다.

내진 설계 비율이 저조한데는 그럴 만한 이유가 있다. 규정은 갈수록 강화되고 있지만 정작 현장에선 이를 지키지 않고 있음이다. 물론 지진에 대한 우리 사회의 인식이 낮은 탓 일수도 있다. 여기에 돈과 시간이 많이 들어간다는 이유로 건축주 등이 내진 설계를 기피했을 수도 있다. 그렇다고 이대로 방치해선 안 된다. 적당히 넘어간다면 의무화 조치는 무용지물이 될 수밖에 없다. 재해로부터 국민의 안전과 재산을 지키는 것도 국가의 몫이다. 건물 시공 과정에서 내진 기준이 지켜지고 있는지 관리와 감독을 지나치다 싶을 정도로 해야 한다. 규정이 지켜지지 않을 땐 강제력을 발동해서라도 안전을 담보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국민들도 안전은 선택이 아니라 의무임을 인식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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