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르도(Bordeaux) 와인 지역은 크게 좌안과 우안으로 나뉩니다. 보르도 지역을 관통하는 지롱드 강 상류에서 하류쪽으로 왼편이 좌안으로, 마고·뽀이약·생줄리앙·쌩떼스떼프 마을(Commune)을 포함하는 오메독(Haut-Medoc) 지역(Region)과 뻬싹·레오냥 마을을 포함하는 그라브(Graves) 지역, 귀부와인을 만드는 쏘떼른·바르샥 마을 등이 유명합니다. 우안으로는 쌩떼밀리옹과 뽀므롤, 프롱삭 등의 마을이 있습니다.

지롱드 강의 지류인 도르돈뉴(Dordogne)와 가론(Garonne) 사이 지역을 `두 바다 사이(Entre-Deux-Mers)`로 칭하는 것을 보면 프랑스 사람들도 허풍이 만만치 않은 것을 알 수 있기도 합니다. 예로부터 하류지역에 주로 위치한 좌안 와인들이 하상과 해상 운송의 편리함으로 영국 등 외국에 다량 수출되어 왔습니다.

보르도 와인은 전통적으로 여러 포도 품종을 섞어서 와인을 제조하기에, 메리티지 와인을 보르도 블렌딩이라고 칭하기도 합니다. 포도 품종을 섞는 이유는 변화가 심한 기후와 해마다 편차가 심한 날씨에 대응하여 보다 균질한 와인을 생산해내기 위함입니다. 껍질이 두꺼운 포도는 부패에 강하지만 늦게까지 숙성을 기다려야 하고, 껍질이 얇은 품종은 빨리 익어 빠른 수확이 가능합니다.

자갈과 모래 토양인 좌안에는 까베르네 쇼비뇽(Cabernet Sauvignon)이, 석회질과 진흙 토양인 우안에는 메를로(Merlot)가 적합하기에 블렌딩 때에 각자 더 많은 양을 사용합니다. 까베르네 프랑(Cabernet Franc)과 쁘띠 베르도(Petit Verdot)는 와인의 색깔과 향 구성에 보조적인 역할을 합니다. 와이너리에 따라서는 남미로 옮겨져서 주요 품종으로도 사용되는 말벡(Malbec)과 까르메네르(Carmenere)를 소량 첨가하기도 합니다.

보르도 지역별로 다수의 와인 등급체계가 있는데 그 중 가장 오래되고 권위를 인정받는 것은 1855년 메독(Medoc) 와인 등급입니다. 프랑스는 파리 만국박람회를 개최하면서 보르도 와인의 우수성을 좀 더 체계적으로 알리라는 나폴레옹 3세의 지시에 따라, 보르도 상공회의소와 와인판매연합회는 보르도의 그랑 크뤼(Grand Cru) 와인 61개를 1-5등급으로 선정했습니다.

당시 정해진 등급은 담당자가 장부에 글씨를 너무 크게 쓴 탓에 자리가 모자라 빠졌다가 다음 해에 추가된 샤또 깡뜨메를(Cantemerle), 다른 샤또들에 합병되어 사라진 샤또 듀비뇽(Dubignon), 1973년 당시 농림부 장관이었던 자크 시라크의 승인으로 1등급으로 올라간 샤또 무통 로칠드(Mouton Rothschild)의 단 3개의 경우를 제외하고는 변동이 없습니다.

1등급 승격 전후 샤또 무똥 로칠드의 소유주 필립 드 로칠드 남작의 자부심 넘치는 언급이 재미있습니다. 승급 전에는 "1등급은 될 수 없고, 2등급은 내가 선택한 것이 아니다. 나는 단지 무똥이다."(First I can not be, second I do not choose to be, Mouton I am.) 승급 후에는 "무똥은 2등급이었지만 현재 1등급이다. 하지만 무똥은 변함이 없다."(First I am, Second I was, Mouton does not change.)

샤또 무똥 로칠드는 유명 화가의 그림을 라벨로 활용하는 것으로도 널리 알려져 있습니다. 레이블 작업은 5-6월경 작가를 선정하여 와이너리를 상징하는 동물인 양이나 포도, 와인 등을 주제로 작품 제작을 요청하여, 매년 10월에 2년 전 빈티지의 레이블을 발표합니다. 2015년 빈티지까지 총 72개의 화가의 작품이 들어간 레이블이 붙여졌는데, 2013년 빈티지 라벨에는 우리나라 작가 이우환의 멋진 보라색 점 작품이 들어가 있습니다.

ETRI 미래전략연구소 산업전략연구그룹 책임연구원

<저작권자ⓒ대전일보사. 무단전재-재배포 금지>

저작권자 © 대전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