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대통령이 어제 직장 내 성희롱·성폭력 근절을 역설했다. 특히 2차 피해를 겁내는 피해자가 문제 제기를 못해 적절한 대응이 이뤄지지 않는 직장 내부시스템과 문화를 지적했다. 그러면서 공공기관장들의 인식전환과 더불어 엄정한 조치를 강조했다. 직장에서 벌어지는 성범죄는 대통령이 직접 나서야 할 정도로 만연화 돼 있는 게 사실이다. 문 대통령 언급대로 공공기관이 앞장 설 일이지만 현실은 어둡다.

공교롭게도 같은 날 나온 대전지법 제 4단독 곽상호 판사의 판결은 시사하는 바 크다. 곽 판사는 강제추행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A씨에게 징역 6월에 집행유예 1년을 선고했다. A씨는 대전권 문화단체장으로 있던 지난해 재직 단체의 한 여성 단원을 불러내 자신의 차 안에서 입맞춤을 시도하는 등 불쾌한 신체 접촉을 한 혐의로 기소됐다. 피해자는 정신과 치료를 받았다고 한다. 우월적 지위를 악용한 게 아닌 지 의구심이 들고, 합의도 이뤄지지 않았다니 피해자의 고통이 짐작이 간다.

지난 1994년 서울대 우 조교 사건으로 성희롱 피해자에 대한 국내 첫 배상 판결이 내려진 지 23년이 흘렀다. 이듬해 성희롱이라는 용어가 반영된 ‘여성기본발전법’이 만들어졌고 1999년 남녀고용평등법이 시행되면서 직장 내 성희롱 예방교육이 시작됐다. 하지만 18년이 흐른 지금도 현실은 그다지 달라지지 않았다. 직장 내 상사의 우월의식이 여전하고, 양성 평등 문화가 정착되지 않은 탓이 크다. 공공기관은 물론 대기업 같은 민간에서도 성희롱·성폭력 사건이 끊이지 않으니 안타깝다.

성희롱 피해자의 78.4%가 ‘참고 넘어갔다’는 조사도 예사롭게 봐선 안 된다. 여성가족부에 따르면 피해자 절반 가량(48.2%)이 ‘문제를 제기해도 해결될 것 같지 않아서’대응에 나서지 못했다. 관련 교육을 강화하고, 성폭력 발생 기업에 대한 처벌 규정을 제대로 만들기 바란다. 남녀가 직장에서 평등하게 조화를 이뤄 일하는 문화가 없는 공공기관이나 기업에서 경쟁력이 나올 리 없다. 무엇보다 우월적 지위를 남용한 ‘성(性)갑질’을 뿌리뽑아야 성희롱·성폭력이 사라진다.

<저작권자ⓒ대전일보사. 무단전재-재배포 금지>

저작권자 © 대전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