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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 너머 해가 지면 물 위로 달이 뜬다

2017-11-21기사 편집 2017-11-21 17:38: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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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억이흐르는그곳 골목길] ⑬ 공주 제민천변

첨부사진1공주 원도심 제민천의 야경
충남 공주 시내 원도심의 중심을 따라 흐르는 제민천(齊民川). 공주 원도심을 남북으로 종단하는 길이 5.58㎞의 제민천 주변은 신관동 신시가지 등이 개발되기 전까지는 공주시의 중심이었다.

하지만 사람들의 발길이 점점 뜸해지면서 제민천은 물론 주변 역시도 많은 이들의 관심에서 멀어져 갔다.

황량했던 이곳을 지역민들이 중심이 돼 제민천변의 골목을 살리자는 목소리가 나오기 시작했고, 제민천을 중심으로 생태 복원사업이 전개되면서 골목이 다시 살아 숨쉬고 있다.

꺼져가던 불씨를 다시 살린 이들은 자발적으로 공주를 가꾸는데 열정을 가진 시민 주도형 자생단체인 '골목재생협의회'.

이 모임의 초대 회장 석미경씨는 평범한 서민이 오랜 시간 살아온 주택을 구입해 그 집을 우리네 삶에 흔적과 향수를 고스란히 간직한 모습으로 살려내어 '루치아의 뜰'이란 찻집을 열었다.

이후 이 공간은 시민들의 사랑을 가장 많이 받는 곳 중 한 곳이 된 것을 넘어 외부에서 공주를 찾아오는 방문객이 가장 먼저 찾는 명소가 됐다.

2014년 건축문화상인 '대통령상'을 받은 이 찻집은 1970-1980년대 공주에서 살아왔던 사람들의 노스텔지어를 달래주는 공간이 되고 있다.

제민천 골목의 또다른 즐거움은 역사도시 공주만큼 곰삭고 숙성된 맛집들이 많다는 것이다.

공주에는 한때 많은 직물공장이 있었다. '고가네 칼국수'와 '맛깔'이란 음식점의 건물도 원래는 공장건물. 고가네 칼국수와 맛깔은 옛 공장의 모습을 많이 흩트리지 않은 독특한 인테리어와 아름다운 정원을 갖춘 음식점으로 변모했다.

주부 이선희(50·여·세종시 누리로) 씨는 "대전에서 오래 살 때에는 공주에 올 일이 없었다. 세종시로 이사 온 후 가까워진 아기엄마들과 자동차로 15분 거리인 공주 시내로 나들이 왔다가 근대적인 미학을 갖고 있는 제민천변 골목, 그리고 루치아의 뜰과 고가네 칼국숫집에 들르고는 홀딱 반했다"면서 "지인들과 여유로운 시간을 보내고 싶을 때면 공주 제민천변으로 온다. 옛날에는 공주읍사무소였다는 '공주역사영상관' 주변까지의 공간을 사랑하게 됐다"고 말했다.

여기에 예전 공주읍사무소로 사용되던 건물은 공주 근대역사를 알리는 '공주역사영상관'으로, 옛 공주박물관이었던 건물은 충남의 역사와 문화를 연구하고 보존·전시하는 '충남역사박물관'으로 변모해 제민천변 일대를 더욱 다채롭게, 고색창연한 아름다움을 느끼게 하는데 큰 역할을 한다.

120-130년 전 외국인 선교사가 최초로 공주에 들어와 세운 공주제일교회 건물도 빼놓을 수 없다. 이 교회는 일제강점기 학생들에게 신교육과 함께 민족정기를 불어 넣어 3·1운동 당시 공주읍내 만세운동을 주도했다.

또 서양식 진료를 하는 의원을 열어 임산부의 건강과 출산을 돕는 진료를 시작하고, 유아들의 건강을 위해 전국 최초로 우유를 보급하고 유치원을 세우는 등 공주의 근·현대화에 많은 영향을 끼쳐왔다.

이 교회가 새로운 건물을 신축하면서 옛 교회당은 충남도등록문화재로 등록됐다. 공주시의 지원을 받아 '공주기독교박물관'으로 조성돼 기독교신자·일반인들이 한국의 기독교사와 공주의 근현대사를 이해하는데 많은 도움을 주는 박물관이 됐다.

백제시대 가장 큰 사찰이 있었다는 반죽동 당간지주 옆에는 30년 넘게 자리를 지켜온 '중동분식'이란 식당이 있다. 이 식당은 먹고 돌아서면 금세 다시 배가 고파지는 학생들의 왕성한 식욕을 30여 년간 책임져왔다. 이 집은 맛도 맛이지만 가격이 저렴하면서도 음식의 양이 엄청나게 많은 것으로도 유명하다.

그 외에도 제민천 골목에 가면, 공주 하면 떠오르는 다양한 칼국수와 공주 특산물인 밤을 이용해 음식이나 떡·빵·제과들을 연구해 다양한 먹거리를 만들어 내고 있는 음식점들을 만날 수 있다.

최창석 공주문화원장은 "어릴 적 제민천에서 친구들과 물고기를 잡거나 물놀이를 하며 뛰어 놀던 추억을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다"며 "지금 새롭게 바뀐 제민천의 모습을 보니 공주의 새로운 명소로 자리매김 할 것으로 확신한다"고 말했다.

이처럼 공주 근대화의 상징이라고 할 수 있는 중동교회와 충남역사박물관, 공주 3·1중앙공원, 영명고등학교, 선교사의 가옥, 공주기독교박물관을 연결하는 약 1.4㎞의 제민천 거리는 '공주근대역사탐방로'라는 이름으로 탈바꿈했다.

이 탐방로는 공주에서 나고 자라 공주를 기억하는 중년의 남녀들에게 학창시절의 추억을 새롭게 더듬어 보게 하거나 향수를 달래는 즐거움을 선사한다. 외부 방문객들에게는 공주 근·현대사의 흔적들이 지닌 지닌 아름다움을 만끽하는 산책로가 된 것.

산책만으로 아쉽다면 하룻밤 '공주하숙마을'에 머무르는 것도 좋다.

공주하숙마을은 50여 년간 약방으로 운영되던 건물과 일반 서민이 살아온 주택 3채를 공주시가 매입, 집의 구조와 뼈대를 그대로 유지하고 사람이 살아 온 흔적으로 최대한 유지한 채 새롭게 살려낸 작은 복합문화공간이자 게스트하우스다.

이곳 너른 마당에서 작은 음악회 등 소규모 공연이 열리기도 한다. 옛 약국 건물 2층에 조성된 작은 전시실에서 이 공간의 옛 모습과 조성과정, 그리고 완성된 모습을 보여주는 사진 전을 볼 수 있다. 차를 마시며 담소를 나눌 수 있는 담소방과 부엌, 예쁜 화단 등 작은 볼거리들을 갖추고 있다.

이곳이 이처럼 바뀌게 된 것은 공주시가 지난 2014년 '도시재생 활성화 선도지역' 공모에 선정돼 제민천 일대를 비롯한 도시 곳곳에 도시 재생사업을 진행하면서부터다.

시는 '고도역사문화환경 개선 및 고도 육성 기반구축 사업'을 통해 시민들이 본인의 집을 한옥으로 완전히 신축하거나, 혹은 지붕 담장 등을 개량하고자 하면 예산을 지원해줬다. 송산리고분군 옆 송산마을을 고즈넉한 전통마을로 탈바꿈해 자연과 문화유적지, 마을이 하나로 어울리는 경관을 만들어 낸 것이 그 효과다.

또 원도심 고도보존육성지구 내 주거지도 하나둘씩 정비되면서 주민의 주거환경 개선과 백제의 고도 공주의 모습을 갖추어 가고 있다.

이렇듯 공주 원도심은 제민천을 중심으로 오픈되어 있는 박물관, 즉 에코 뮤지엄(Eco-museum)이라고 할 만하다.

그 뮤지엄에는 고도 왕도의 역사, 충청권 중심도시의 역사 등 굵직굵직한 스토리와 함께 일반 소시민 한 사람 한 사람 각각의 삶에 흔적과 기억이 시간 사이사이에 속살처럼 촘촘하게 박혀 있다. 오감을 열고 조금만 머물다 보면 이런 삶의 흔적과 기억을 금세 느낄 수 있다.

공주=양한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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