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습비용 없이 진행되는 관행의 늪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대전연극. 토양이 척박하다. 아마 지역연극이 대부분 이럴 것이다. 하여 연극인들은 프로라지만 생활경제를 연극으로 해결하지 못한다. 그래서 필자 같은 경우는 극작과 가무악극 또는 무용시나리오나 축제개막공연 시나리오를 쓰면서 버텨낸다. 이에 배우들은 연극 수업을 하며 생활을 이어가고 어떤 배우는 끝없는 `알바`로 작품 활동의 기회를 기다린다. 어떤 배우는 주기적으로 공장에 나가는 경우도 있고, 카페에서 일하다가 혹은 닭을 튀기다가 달려오기도 한다.

한날 연습이 시작될 무렵 소주트럭을 끌고 온 배우가 있었다. 가게마다 소주박스를 배달하다가 연습실로 온 것이다. 그 배우는 체질상 술을 못한다. 술고래처럼 말하며 영업을 할 그 배우를 상상하면 신기하고 웃음이 터진다. 그러다가 모든 연습 스케줄이 결정되면 배달 일을 그만두고 새벽에 출근하는 헬스트레이너로 전업한다. 연습이 끝나면 늦게 잠들고 새벽 5시에 일어나 헬스장으로 출근한다. 초인적인 정신력이다. 퀭한 눈으로 버티는 이 배우는 일상의 근력은 월등히 좋은 편이지만 생존을 위해 잠을 깎아내는 일은 그를 휘청거리게 했다. 체력이 소진되니 감정이 살지 않고 감정이 생기지 않으면 연습이 어렵게 된다. 상대배우도 같이 힘들다. 대사 행간의 의미를 읽어내고 감정을 교감해야 연기가 가능한 것인데 홀로 외롭게 자가발전하면서 연습을 하니 오죽 하겠는가. 그래도 배우는 결국 해내고야 만다.

무엇이 이들을 연극에 미치게 했을까. 무대에 서면 중독되는 유전자가 프로그래밍 되어있어서 그런 것인지 아니면 결핍을 채우기 위해 남의 인생을 흉내 내며 감정을 느끼고 창조하는 것인지.

물어보면 "좋아서 시작했다가 너무 멀리 와버렸다"고 말한다. 이해는 하지만 가끔 말리고 싶은 배우지망생들이 있다. 예술을 위해 집안을 등지거나 부모봉양을 회피한다거나 한다면 말이다. 재능이야 천재 아니면 공부와 연습으로 적정선까지 오를 수 있으니 탓하지 않는다. 열심히 하다 보면 재미가 붙고 확신이 생기면서 진짜 배우가 되기 때문이다. 그 과정에서 경·조사를 못 챙기는 비극은 온몸으로 감당해야 하지만. 하나를 위해 아홉을 포기할 줄 하는 사람만이 원없이 살다갈 수 있는 것이니. 이시우 연극배우 겸 극작가

<저작권자ⓒ대전일보사. 무단전재-재배포 금지>

저작권자 © 대전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