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나는 조그마한 일에만 분개하는가

저 왕궁 대신에 왕궁의 음탕 대신에

50원짜리 갈비가 기름덩어리만 나왔다고 분개하고

옹졸하게 분개하고 설렁탕집 돼지 같은 주인 년한테 욕을 하고

옹졸하게 욕을 하고

한번 정정당당하게

붙잡혀간 소설가를 위해서

언론의 자유를 요구하고 월남파병에 반대하는

자유를 이행하지 못하고

20원을 받으러 세 번씩 네 번씩

찾아오는 야경꾼들만 증오하고 있는가

옹졸한 나의 전통은 유구하고 이제 내 앞에 정서로

가로놓여 있다

이를테면 이런 일이 있었다

부산에 포로수용소의 제14야전병원에 있을 때

정보원이 너어스들과 스폰지를 만들고 거즈를

개키고 있는 나를 보고 포로경찰이 되지 않는다고

남자가 뭐 이런 일을 하고 있느냐고 놀린 일이 있었다

너어스들 옆에서

시를 쓰면서 시인은 세 가지 싸움을 감행하는 것. 그 가운데 하나가 자신과의 싸움이다. 그리고 나머지 두 개는 세계와의 싸움과 언어와의 싸움. 그러니 시인은 세계와의 싸움 이전에 반드시 자신과 먼저 싸움으로써 삶의 객관성을 획득해야 한다. 철저히 자기 삶에 대한 비판으로 거듭날 때 그는 세계와의 싸움에서도 타당성의 힘을 얻을 수 있는 것. 지난 시대 시인들의 삶과 시세계를 연결시키는 게 모두 다 옳다고는 말할 수 없어도 그 근거로 작용하는 것은 분명한 셈이다.

하여 자기 검열과 반성, 철저한 부정에서 시를 출발한 김수영. 오늘 그의 시를 읽으면 나를 읽는다. 그만큼 그는 앞서 인간의 보편적 모습을 관통시켜 놓은 것. 낮에 시켰던 50원짜리 갈비가 기름덩어리만 나왔다고 분개했다고. 옹졸하게 분개하고 설렁탕집 돼지 같은 주인한테 욕을 하고 옹졸하게 욕을 퍼부었다고. 그리고 그는 또 묻는다. 모래야 나는 얼마큼 적으냐. 바람아 먼지야 풀아 나는 얼마큼 적으냐. 정말 얼마큼 적으냐고. 우리는 이 시대를 향해서 이 세계를 향해서 정정당당히 외쳐야 할 것들엔 모두 눈을 감고. 겨우 1원, 10원, 20원, 50원짜리 분노만 퍼붓고 있다고. 아, 이 시에 비친 우리 얼굴…. 김완하 시인·한남대 국어국문창작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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