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주의 국가를 짧고 간략히 표현해 `인간의 존엄성을 중히 여기고 자유와 평등이 있으며 국민 개개인이 나라의 주인인 국가`라고 한다면 그리 틀린 말은 아니겠다. 전문가가 아닌 필자가 민주주의를 논하는 것이 뜬금없지만, 민주사회의 본질에 대한 정체성을 재정립 할 요량이다.

민주주의는 원시 민주주의에서 수많은 시행착오를 거쳐 지금에 이르렀다. 하지만 세상에 수많은 민주국가가 있다 보니 이렇게 발전한 현대의 민주주의에도 후진국과 선진국이 있다. 대개의 민주국가에서 자유, 평등, 인간의 존엄성, 국민주권, 자유로운 출판, 집회 등이 보장되고 있으나 이것만으로는 선진민주사회에 이르기에는 부족하다. 오랜 기간 변화하면서 국민의 복지 및 행복추구가 가장 큰 목표가 됐고, 이를 추구하는 국가가 이 시대의 가장 진보되고 세련된 민주주의로 발전했다. 또한 이것에 추가돼야 하는 중요한 요소는 `다름`을 서로 인정하고 존중하는 사회적 분위기다. 서로 다른 종교, 정치관, 직업, 등을 영위하고 표현하는 일이야말로 당연히 포함 돼야 할 요소다. 그런 이유에서 민주사회에 꼭 필요한 덕목은 `다름`에 대한 너그러움과 화합을 위한 `용서` 즉 `관용(寬容)`이다.

관용의 사전적 의미는 `남의 잘못을 너그러이 이해하거나 용서한다는 말`이다. 하지만 이 단어의 태생은 종교로 부터 유래했다. 원시사회에서 주된 종교가 다른 종교를 용인한다는 의미였다. 한 지역에서 주된 종교를 믿는 절대 권력을 가진 힘 있는 사람들이 다른 소수 종교를 믿는 이들을 외부적 힘을 가해 억압하거나 강제하지 않는다는 뜻이었던 것이다. 이 말은 시간이 지나면서 자연스럽게 정치사회로 발전했다. 다른 사상의 정치관을 허용하고 인정하며 권력을 잡은 이들이 그들과 다른 정치사상을 가진 정치인들을 권력을 이용해 억압하지 않는다는 의미로 쓰이게 되었다. 이렇듯 `관용`은 힘 있는 자들이 약한 이들에게 베푸는 뜻으로 쓰여 졌던 말이다. 이런 어원의 `관용`은 오늘날에 이르러 `남의 죄를 너그럽게 용서하다`는 의미로 변화하게 됐다.

세상만물은 제각각의 힘(力)을 갖고 있다. 이 힘은 다양한 형태로 존재하며 각각의 힘은 서로 연계돼있고 파생되며 `질량 보존의 법칙`처럼 그 힘이 보존되고 파급되는 속성을 갖고 있다. 이를 사용하는 방법에 따라 긍정의 힘으로 화합과 행복을 낳을 수 있고 반대로 불행과 복수심을 잉태할 수도 있다는 뜻이다. 긍정의 힘은 관용과 사랑이 포함돼 사용하는 힘이다. 관용과 사랑은 힘에서 나오는 산물인 것이다. 어떤 형태로든 존재하는 힘은 위대한 관용이 내포돼있다. 관용은 힘의 산물이며 있는 자 만이 베풀 수 있다는 말이다. 공자는 `관용`을 일찍이 인(仁)으로 표현했다. 어질 인(仁)자를 써 `唯仁者 能好人 能惡人(유인자 능호인, 능오인)`, `오직 인자(仁者)만이 남을 좋아할 수 있고 남을 미워할 수 있다`고 했다. 여기서 어질다는 말은 `관용`이며 `사랑`이다. 더불어 `마을은 어질어야 아름다우며 이를 만들지 못하는 것은 지혜롭지 못하다` 고 했다. 결론적으로 나라에는 어진마음 즉 관용과 사랑이 있어야 하며 이를 만들도록 힘써야 한다는 말이다.

새로운 정부는 적폐청산이 한창이다. 잘못된 것을 바로 잡는 일은 올바른 대한민국을 만들기 위해 국가 백년대계에 꼭 필요한 일이다. 죄를 벌하는 것은 당연하나 이를 잔인하게 응징해 표적수사나 정치보복으로 몰린다면 후진적 민주주의를 되풀이하게 된다. 우린 길지 않은 민주주의 역사에서 정권이 바뀔 때마다 되풀이되는 보복성 청산으로 국민에게 분열과 절망을 안겨줬으며 국력을 낭비했다. 이제 누군가 힘 있는 자의 용단으로 용서하고 화합해야 한다. 새 정부에 바라건대, 잘못된 점을 바로잡되 너그럽게 관용을 베풀어 되풀이되는 악순환의 고리를 끊어 내주길 원한다. 그것이 나라의 동력이 될 것이며, 선진민주주의로 진입하는 지름길이다. 너그럽고 어질게 용서하여 화합하는 아름다운 나라를 만들자. 강명식 푸른요양병원장·칼럼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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