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류(韓流)의 흐름이 곳곳에서 감지된다. 한국적 색깔과 사고가 담긴 풍(風)과 속(俗)이 새롭게 재해석되어 새로운 한국적인 대중문화가 새로운 흐름으로 세계 여기저기로 전파되고 있다. 누군가는 한류를 요즈음에 나타난 문화전파가 아니라 7세기 전반 백제가 일본에 전한 아스카(飛鳥) 문화를 원조로 본다. 조선통신사도 다르지 않다는 생각이다. 17-18세기 막부 1년 예산이 76만-130만 냥이었던 당시 통신사 초청 비용이 대략 100만 냥 정도였음을 보면 일본 문화에 끼친 영향을 짐작하게 한다.

그동안 한류는 팝과 드라마, 영화 등 엔터테인먼트 분야와 김치 같은 음식에 치중된 면이 없지 않았다. 그런데 미술에 있어서도 바람이 일고 있다. 프랑스 파리의 퐁피두센터에서 열리고 있는 기획전 `Donation Lee Ungno`가 대표적이다. 앞서 세느강 주변의 세르누쉬 파리시립 동양미술관에서 고암 이응노 선생 회고전이 열렸고, 파리 지하철에는 고암의 포스터가 전시 일정을 알리고 있다.

한국 출신 작가로서 풍피두센터 기획전시는 하나의 사건이다. 예술의 도시 파리는 루브르에서 근대 이전의 작품이 주를 이룬다. 근대 회화는 주로 오르세이에서, 현대 회화와 조형예술은 퐁피두에서 열리는 것이 관행화돼왔다. 그런 퐁피두센터에서 고암선생의 작품 `군상`을 비롯해 20여 점의 작품이 걸린 것은 고암 선생이 현대미술 대가의 반열에 올랐음을 선언한 것이나 다름없다.

한 때 도불전(渡佛展)이란 이름으로 수많은 화가들이 파리로 넘어갔다. 하지만 요란한 파리 입성 후 얼마간의 시간이 지나면 슬그머니 자기 자리로 돌아오곤 했다. 고암의 경우는 완전히 다르다. 당시 미술사조를 이끌던 앙포르멜운동에 앞장 선 파케티화랑에 연결되면서 고암은 새로운 예술 세계를 펼친다. 작업의 근원은 바로 동양미술의 시원(始原)인 서예이다. 한문서예와 한글서체의 해체와 조합, 서예의 한 지류인 전각예술에 근거하는 예술세계는 흔히 문자추상과 콤포지션의 다양한 변화성에 이어 결과물로 나타나는 군상 시리즈라고 볼 수 있다. 당시 미술계를 휘몰아친 앙포르멜 흐름에 부합하는 해체와 조합작업은 당시파리의 예술가들에게는 동양미술의 새로운 해석적 표현기법으로 평가됐다.

몇 해 전 파리 에펠탑 근처 갤러리 퐁데자르에서 대전의 서예가 이덕희·한현숙 선생과 더불어 한글 서예전을 가진 바 있다. 당시 프랑스 최고 명문 고등학교인 루이르그랑의 일부 재학생들이 한국어를 배우고 있는데 그 수업의 일환으로 한글 서예전을 찾아왔다. 그들이 붓을 들고 한글 서예를 직접 써보는 체험을 하는 데 곧잘 따라해서 놀랐던 기억이 있다. 미술 중에서도 한류의 한 부문을 서예가 담당하고 있다는 느낌이었다. 고암 선생이 서양미술의 본터이자 근거지인 파리에서 파리 한가운데서 서예의 근원적이고 시초적인 문자의 해체와 배열에 근거한 구성적 표현을 가지고 미술 분야에서 최초의 한류를 심었다고 하면 지나친 걸까.

프랑스 전시회 중 주 프랑스 주재 한국대사의 초대로 한글날 진행된 한국대사관의 축하 만찬에서 한류의 위력을 더욱 절감했다. 한류에 힘입어 행사 때면 "왜 우리는 초대해주지 않느냐"는 항의가 적지 않다는 설명이었다. 10여 년 전 터키 이스탄불의 전시장에서 접했던 어느 예술가의 질문이 떠오른다 "너희 나라 문자는 한자로 쓰느냐?" 그 한마디 이후 우리 것에 대한 재해석 특히 한글서예에 대한 천착과 표현에 배전의 노력을 기울여왔다. 시간이 흐르면서 서예가 부각되는 것을 보며 자부심을 느낀다.

마침 23-28일 대전에서 국제아트쇼가 열린다. 역량 있는 지역 작가의 성장과 지역 미술시장 활성화를 넘어 미술계의 새로운 방향성을 제시하는 자리다. 벌써 5회째를 맞은 중부권 최대의 아트페어로 국내외 유명작품들을 선보인다. 전 분야에 걸친 미술작품을 한자리에서 감상하고 직접 구매할 수 있는 미술품 직거래장이다. `작가중심`의 전국 첫 아트페어로 올해는 프랑스와 독일, 러시아, 덴마크, 일본 등 해외 20여 개국의 30여 명의 작가와 120여 명의 지역 작가, 50여 개의 화랑이 참여해 국제행사로 발돋움했다. 대전시민들이 한류의 한 축을 만들어가고 있는 K-미술의 현장을 확인하는 기회가 됐으면 한다. 박홍준 대전예총 회장·2017 대전국제아트쇼 운영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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