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까지 시장이었습니다. 자고 나니 전 시장이 돼 버렸습니다." 권선택 전 대전시장이 15일 SNS에 올린 글 중 일부다. 이처럼 권 시장의 직책 앞엔 `전직`이란 꼬리표가 붙었다. 정치자금법 위반 혐의 등에 대한 대법원의 판결에 따른 것이다. 지방선거 직후 시작된 권 전 시장 재판은, 4년 임기 중 7개월을 남겨둔 시점에서 마무리 됐다. 대전 첫 민선단체장 `중도하차`라는 불명예를 안기고 말이다. 행정고시 수석 출신으로 시장직 수행을 평생의 목표로 여기던 한 공무원의 안타까운 퇴장이다. 특히 권 전 시장의 퇴장은 시 승격 70주년과 재선 도전의 문턱을 목전에 둔 상황에서 이뤄지며, 아쉬움의 그림자를 더욱 짙게 했다.

권 전 시장은 대전시를 떠났지만, 그가 남긴 숙제는 여전히 대전의 몫으로 남았다. 도시철도 2호선 트램 건설을 비롯해 △엑스포 재창조 사업의 핵심인 사이언스 콤플렉스 조성 △일몰제 시행으로 불가피하게 추진되는 민간공원 특례사업 △전임 시장에게 바통을 이어받아 추진했던 갑천친수구역 등 난제들이 대전 앞에 놓여있다. 어찌 보면 이 사안들은 권 전 시장이 시민에게 진 `빚`이다. 지방선거 당시 불가능이라 여겨졌던 권 전 시장에게 당선의 면류관을 씌워줬던 시민에게 그가 갚아야 할 채무란 얘기다.

권 전 시장은 취임 후 현안 해결을 위해 노력했지만, 어느 것 하나 최종 결과를 내진 못했다. 이 때문에 권 전 시장이 대전에 진 `빚`은 누군가 대신 갚아야 할 상황이 됐다. 그렇다면 권 전 시장이 빠진 지금 누가 책임을 져야 할까. 개인적 소견이지만 권 전 시장이 진 빚을 갚아야 할 책임은 현 정부에 있다. 권 전 시장과 정치적 궤를 함께 했던 문재인 정부에서 책임을 지고 그가 남긴 다양한 숙제를 풀어야 한다. 특히 문재인 대통령은 권 전 시장의 낙마로 인해 발생한 부채에 특별한 책임감을 가져야 한다. 권 전 시장을 통해 대전이 보내줬던 그에 대한 지지의 빚을 갚을 기회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문 대통령이 권 전 시장의 부채를 대신 갚아야 할 이유는 다양하다. 그는 권 전 시장과 같은 정당 소속의 대통령이다. 권 전 시장, 문 대통령이 함께 같은 정치적 목표를 위해 노력해왔고, 촛불 정국이란 초유의 사태 이후 치러진 대선에서 이를 달성했다. 정치적 책임도 같을 수 밖에 없다는 것. 특히 권 전 시장은 지난 대선 당시 지역 대표행사인 아침동행을 정치행사로 변질시켰다는 비판까지 감내해 가면 문 대통령 당선을 위해 노력했다. 권 전 시장이 문 대통령 당선을 위해 모든 것을 걸고 노력했단 얘기다.

률사 출신으로 권 전 시장 사건에 대해 정확히 조언하지 못한 점도, 문 대통령의 어깨를 무겁게 한다. 정치적 동지인 권 전 시장을 끝까지 지키지 못한 데 따른 책임감은 문 대통령에게 `굴레`가 될 수 있다. 문 대통령은 권 전 시장 재판이 한참 진행 중인 지난 2015년 6월의 어느 날 대전을 찾아 권 시장 재판의 부당함을 주장했다. 권 시장 무죄 주장의 한 이유였던 `독수독과`이론에 기초해 "형사소송은 절차적 정의가 핵심"이라며, 무죄를 주장한 것. 하지만 이 같은 문 대통령의 주장은 자신이 수장을 선임한 대법원에 의해 여지없이 무너졌다.

문 대통령과 함께 권 시장이 남긴 숙제를 풀어야 할 책임은 집권여당인 더불어민주당에도 있다. 자당 소속 단체장을 지키지 못했고, 이로 인해 지역을 혼란으로 빠져 들게 한 최소한의 책임을 져아 한다. 특히 권 전 시장이 재판으로 어려움을 겪을 당시, 같은 당 소속 대전시의원이 보여줬던 시정 발목잡기 행태 등은 민주당의 책임을 더욱 무겁게 한다. 선고 직전까지 진행됐던 월평공원 공론화 요구와 자당 소속 단체장에 대한 비판 논평 등은 더 할 나위 없다. 시민의 손으로 뽑은 시장에게 상처를 줬고, 결국 원활한 현안 해결의 발목을 잡는 결과를 가져왔기 때문이다.

상황이야 어찌 됐든 지금 대전은 단체장 공백이라는 사상 초유의 사태를 맞았다. 권 전 시장을 떠나 보낸 뒤 시청에 남아 있는 공무원과 150여 만 시민 모두가 힘을 모아 위기를 극복해야 할 시기가 됐다는 것. 이 과정에서 권 전 시장 낙마에 대한 귀책이 있는 이들의 책임 있는 자세는 필수다. 그것이 권 전 시장 잔여임기 뒤 치러질 지방선거에서 지역 `표심`의 향배를 가르게 될 것은 자명하다. 성희제 취재2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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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희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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