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떻게들 살아 있지? 정말 용케 잘들 살아가고 있네. 불쑥 이런 생뚱맞은 생각이 일어난 날이 있었다. 아마 두통이 도지고 우울증이 안개처럼 엄습해 와 도무지 어떻게 하루를 버텨야 할지 막막하기만 하던 날이었을 것이다. 마치 팽팽하게 당겨진 시간 위를 끝없이 터벅터벅 걸어가야 하는 숙제를 떠안은 것만 같았다. 어떤 의미도 이유도 찾을 수가 없었다. 조롱하듯 두통은 쉴 새 없이 머리를 쪼아댔다.

두통이나 다스려봐야겠다는 생각으로 진한 커피 한 잔을 타들고 이층으로 올라가는 계단을 막 밟았을 때, 문득 사람들을 살아가게 하는 것? 하는 의문 부호가 반짝 떠올랐다. 그것은 어쩌면 층계참에 걸려 있는 사진과 눈이 마주치는 순간이었던 것 같기도 하다. 일층과 이층을 잇는 층계참에는 오래전 두 아이들을 데리고 바다에 갔을 때 찍은 사진 액자가 하나 걸려 있다. 다섯 살과 일곱 살적의 남매가 바닷가에서 놀고 있는 모습이다. 두 아이 너머로는 대각선 방향으로 커다란 여객선 하나가 바다를 건너고 있다. 사진 전문가가 구도를 아주 잘 잡은 사진이라며 칭찬을 했노라고 남편이 자랑을 했었다. 여기까지 기억이 떠올랐을 때, 팽팽하게 당겨져 있던 시간위로 스르륵 주름이 잡히는 느낌이었다.

아이들은 생전 처음 와본 바닷가에서 제 부모를 잊은 채, 한껏 들떠 까- 까- 소리를 지르며 바다와 놀고 있었다. 바다위로는 갈매기들이 먹이를 찾아 우-우 내려앉았다 날아오르기를 반복하고, 사람들은 새들을 향해 새우깡을 던져주며 즐거워했다. 마치 거꾸로 돌아가는 필름처럼 이어지는 기억을 더듬으며 계단에 엉덩이를 붙였다.

빈틈 없이 계획을 세우고, 숨 쉴 틈 없이 그 시간 위를 달렸던 순간들은 어디에 있는가. 정작 기억 속에 따스한 빛으로 남아있는 건 팽팽하게 당겨진 시간을 느슨하게 풀어 스스럼없이 내 시간 안으로 누군가를 받아들이던 순간, 아무런 경계심도 두려움도 없이 누군가의 시간 안에 머무르던 그 순간들뿐이다. 서로의 시간 안으로 스며들어 주름을 만들고, 그 주름들이 교차하며 서로를 껴안을 때 삶은 비로소 긴장을 풀고 공격의 칼날을 멈추는 것 아닐까. 그리하여 그 시간들을 가슴에 품은 후에야 비로소 삶이 살아볼 만한 것이 되는 것이겠지…. 이예훈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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