율곡인문학

율곡 이이는 `구도장원공(九度壯元公)`이라 불리우는 조선 성리학을 집대성한 대표 지식인이다. 평생 개혁 정치와 붕당의 폐해를 막는 데 힘썼고 일찍이 변란을 예고해 `10만 양병설`을 주장한 탁월한 정치가이기도 하다. 율곡 이이가 남긴 발자취는 마흔 아홉의 짧은 생에도 불구하고 조선 최고 `지성`으로 불리기에 손색이 없다.

율곡 이이의 `자경문`은 정신적 스승이자 버팀목이었던 어머니 신사임당의 죽음 이후, 무려 4년에 가까운 시간을 방황한 끝에 마음을 다잡아 세운 삶의 지표였다. 스무 살 때 세운 그 뜻을, 이이는 삼십여 년이라는 긴 시간 동안 단 한 번도 포기하거나 타협하지 않고 꿋꿋히 지켜 낸다. 자경문은 열한 개의 선언문으로 구성된 짤막한 글이지만, 여기에는 그가 가진 사람다움에 대한 철학, 실천적 삶의 자세가 담겨 있다. 이른 바 `율곡 인문학`의 정수다.

그렇다면 율곡인문학의 근본정신은 어디에 있을까. 책 `율곡인문학`을 쓴 저자이자 고전 연구가 한정주는 근본정신이 이이가 가진 `천재적 지식인`, `위대한 성인`으로서의 면모에 있는 것이 아니라고 말한다. 오히려 율곡의 인문정신은 평범한 사람들처럼 인간적인 단점도 갖고 있고 실수도 저지르며 온갖 고난과 역경을 겪었음에도 불구하고 끝끝내 뜻을 꺾지 않고 올바른 삶의 자세를 지켰던 인간적인 관점에 있다는 것. 또 개인적 차원에서 지식을 탐구하고 세상의 명망을 얻는 데 그치지 않는다고 덧붙인다. 자신을 포함한 인간과 사회 전체를 비판적으로 이해하고 성찰하는 데, 나아가 그 모두를 올바른 방향으로 변화시키고 혁신하는 데 목적이 있는 셈이다. 율곡이 추구했던 삶의 방향이란, 개개인의 공부, 수양을 넘어서 타인과의 관계, 사회적 실천까지 포함했던 것이다.

책은 자경문에 담긴 인문정신을 일곱 개 장으로 재구성했다. 입지(뜻을 세워라), 치언(말을 다스려라), 정심(마음을 바로해라), 근독(홀로 있을 때도 몸과 마음을 삼가라), 공부(배우고 또 배워라), 진성(사람에게, 그리고 해야 할 일에 최선을 다하라), 정의(늘 올바른 길을 가라) 등 독자들로 하여금 시대를 초월한 사람다움의 가치가 무엇인지, 그것을 좇기 위한 구체적 실천방안은 무엇인지 되새기게끔 한다.

현실에서 뜻이 꺾일 때마다 때로는 따끔한 훈계로 위로와 격려를 북돋아 준 스승 퇴계 이황, 도의지교를 맺으며 죽을 때까지 서로를 독려하고 참된 우정을 나눴던 우계 성혼, 지속적인 무시와 비난으로 그를 괴롭혔던 임금 선조 등 그가 맺었던 다양한 인물들과의 관계와 흥미로운 에피소드가 책 곳곳에 녹아있다.

책의 백미는 어려움에 처했을 때 이이가 취하는 삶의 자세에 있다. 벼슬에서 물러나 고향 파주 율곡으로 돌아간 후 경제적 어려움에 처하자, 그는 입만 산 유학자들과는 다른 태도를 취한다. 직접 대장간을 꾸리고 호미 등 농기구를 팔아 생계를 이어나간 것이다. "사람다움이란 배워서 깨닫고 실천하는 데서 나온다"고 했던 자신의 말과 철학을, 그는 연이은 고난과 역경 속에서 지켜냈다. 율곡 이이가 자신의 삶으로 증명한 인문정신과 사람다움의 길은 시대를 뛰어넘어 오늘날 우리에게 큰 울림을 준다. 김대욱 기자

한정주 지음/다산초당/34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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