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는, 특히 11월은 우리나라가 외환위기에 빠져 국제통화기금(IMF)으로부터 긴급 구제금융을 받지 않을 수 없게 된 지 20년이 되는 해이다. 여러 기업들이 채무를 갚지 못한 채 파산했고, 금융기관들도 해외로부터 빌린 외채를 갚지 못하게 됐다. 대외채무에 지급보증을 했던 정부도 달러가 바닥나 국가 전체가 부도날 상황이었다. 이 때문에 정부는 IMF로부터 필요한 달러를 빌려오지 않을 수 없게 됐던 것이다.

외환위기로 인한 기업 및 금융기관의 파산, 경제개혁 및 구조조정은 한국전쟁 이후 가장 심각한 경기침체와 실업증가, 고용불안정을 낳아 수많은 국민들을 고통에 빠져 들게 했다. 왜 이러한 일들이 일어나게 된 것일까. 어떤 사람은 외환위기가 태국 등 동남아시아에서 놀란 외국 채권자들이 채권을 갑작스럽게 회수한데서 왔다는 주장을 제시하기도 했고, 어떤 사람들은 연고자본주의와 같은 우리 경제의 구조적 비효율성에서 왔다는 주장을 제시하기도 했다.

둘 다 근거가 있는 주장이기는 하지만, 보다 더 근본적으로는 시장경제에서 지속적으로 반복되는 고부채, 그리고 과잉투자와 투기과열(부동산 및 주식시장에서의)에 위기의 뿌리가 있다고 할 수 있다. 우리 경제는 외환위기 직전인 1997년 중반 대규모의 부채를 안고 있었다. 1997년 부도를 겪은 대기업 그룹의 부채는 그 규모가 엄청나서 자기자본 대비 부채가 3000%가 넘는 그룹도 있었는데, 삼미는 3380%, 한라는 2980%에 이르기까지 했다.

이처럼 과도한 부채는 과잉투자의 결과이기도 했고 원인이기도 했다. 기업규모 확장을 위한 경쟁적인 투자가 고부채를 유도했고, 고부채는 다시 과잉투자를 이끌어 갔다. 외환위기 이전에 재벌들이 자동차, 철강, 백화점 등에서 경쟁적으로 투자를 확대했던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우리와 달리 태국 등 동남아에서는 고부채가 부동산투자로 흘러갔고, 부동산 시장에서의 투기와 과열을 초래하기도 했다.

실물자본에 대한 투자든, 부동산 등 재산권에 대한 투자든 과잉투자는 결국 기대했던 수익률을 달성하지 못한다. 기업의 수익성은 떨어지고, 부동산 가격 또한 하락하게 되는 운명을 맞이하게 된다. 그렇게 되면, 기업이나 가계는 부채를 상환할 수 없게 되는데, 1997년 한 해에만 우리나라의 대기업 그룹 11개가 파산했던 것은 바로 이 결과였다. 이러한 채무자의 파산은 곧 채권자인 금융기관의 부실과 파산으로 연결된다. 이것이 우리가 겪은 `금융위기`의 주요 내용이다.

그런데 이 금융위기가 왜 여기서 그치지 않고 환율급등과 외채상환 불능의 외환위기로 발전하게 됐을까. 그것은 금융기관들, 특히 종합금융회사들이 필요한 자금의 많은 부분을 외국에서 달러로, 그것도 단기로 차입했기 때문이다. 채무자의 파산으로 부실해진 금융기관들은 외채 상환에 필요한 달러를 살 만한 원화도 없었고, 해외로부터 달러를 더 빌릴 수도, 기존의 빚을 연기할 수도 없는 상태에 빠져 들었다. 또한 정부마저도 달러 외환보유고가 바닥나 대신 갚아 줄 상황도 못됐다. 이것이 바로 금융위기를 외환위기로 발전시켰던 메커니즘이다.

외국 채권자들의 갑작스런 채권 회수, 연고자본주의에 기초한 정부·기업·금융기관의 유착, 그리고 금융감독 당국의 감독 미흡도 사태를 더욱 더 악화시키게는 했지만, 문제의 근원은 결국 기업의 고부채 조달과 금융기관의 과잉대출이었다. 세계 여러 나라의 금융위기를 분석한 로고프와 라인하트(Rogoff and Reinhart)가 모든 금융위기에는 공통적으로 부채의 급증과 시장과열(주택이든 실물투자든)이 있었다고 주장한 것은 바로 이러한 이점을 지적하는 것이다.

우리가 20년 전 외환위기를 되돌아보면서 얻을 수 있는 교훈은 무엇일까. 그것은 기업이든 가계든 지나친 고부채는 위험하다는 것이다. 그리고 부채 조달을 통한 과잉투자는 실물자본이든 부동산이든 주식이든 결국 경제를 파국으로 이끌 금융위기를 낳는다. 더욱이 단기 해외 차입을 통한 과잉투자는 국가부도를 낳을 수도 있는 외환위기를 초래할 수 있다. 과도한 부채나 지나친 투자(혹은 투기) 과열은 항상 경계해야 할 대상이다. 조복현 한밭대 경제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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