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전일보 로고
최종편집일 : 2017-11-21 07:49

"축구 매개 스포츠문화 발전 기여하는 회사 만들것"

2017-11-13기사 편집 2017-11-13 21:09:30

대전일보 > 사람들 > 충청오디세이

  • 페이스북
  • 구글 플러스
  • 카카오스토리
  • 네이버블로그
  • 네이버밴드
  • 폴라로
  • 핀터레스트

[충청오디세이] 40. 오정석 싸카스포츠 대표이사 회장

첨부사진1오정석 회장은 "싸카스포츠를 축구를 넘어 건강과 웰빙 식품을 아우르는 회사로 성장시키고 싶다"고 말했다.
50대 중반인데 축구팀 라이트윙으로 뛰고 있다는 말을 들으니 이 평범한 체구의 충청도 사내가 그려온 성공 신화의 밑그림이 머리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특유의 순발력과 강한 추진력으로 싸카스포츠를 축구전문 멀티숍으로 성장시킨 오정석 회장. 1994년 설립된 싸카스포츠는 복합 브랜드 유통시장을 개척하며 취급 품목과 거래량이 국내 최대인 강소기업으로 성장했다. 오 회장은 젊은 시절 촉망받는 기획조정실 직원이었지만 현실에 안주하지 않고 정글 같은 세계에 뛰어들었다. 오 회장을 관통하는 키워드는 도전과 창의 정신으로 생산과 유통을 넘나드는 매머드 스포츠용품 전문회사 싸카스포츠의 DNA이기도 하다.



- 사업을 시작한 무슨 계기가 있었나?

"직장 생활하며 꼭 사장을 해야겠다고 주문을 외우고 다녔다. 출근 길에 속으로 '야, 오정석 넌 언제까지 이렇게 살 거야'라고 말하면 '알았다, 사장하면 되잖아'라는 식이었지. 그 때 인쇄물을 납품하던 이종사촌형이 '빨리 독립하라'고 하더라. 마음은 급한 데 좋아하는 걸 해보자는 생각이 들었다. 스포츠 용품에 꽃히게 됐다."

- 무모했던 게 아닌가?

"아마추어이긴 했지만 1번 타자 겸 센터필더로 야구를 제법 했다. 아이템도 없구, 사업자금도 없는 데 직장 야구팀 총무하면서 서울 동대문 구장 인근의 업자와 맺은 인연이 있었다. 그 분이 다른 사업에 눈길을 돌리는 중이었는 데 무조건 쫓아가 일을 배워야겠다고 했지. 월급은 내가 받던 150만 원의 절반만 달라고 했다. 고졸 여직원보다 적지만 아기 우윳값은 있어야 했으니까. 그렇게 사장 아닌 사장이 돼 첫 달에 1500만 원을 신규 매출로 올렸다."

- 결국 체육사를 인수하는데.

"3개월 뒤엔 넘겨줄 수 있다고 하더니 권리금을 달라고 하더라. 퇴직금 2000만 원을 주고나니 150만 원이 남았다. 주변에 경쟁사가 수백 개 되는 데 오토바이를 타구 달리는 게 일이었다. 학벌도 돈도 상관없다. 영업력이 최고다. 운동 선수 출신이거나 가업을 이어받거나 유명한 스포츠 클럽 소속이 가장 유리하다. 막노동을 하는 셈이었다. 혼자 힘으로는 부친다 싶어 사람을 끌어 모았다."



화근이 됐다. 믿었던 후배들은 딴 살림을 차려 고객 데이터베이스(DB)는 물론 친구들 연락까지 차단했다. 그는 승부사의 기질로 위기를 기회로 바꾼다. 야구용품으로 전문화해선 인건비밖에 건질 수 없는 현실을 딛기 위해 대한민국 마케팅 역사의 새 장을 여는 동대문 밀리오레 입점을 결행한다. 구제금융 위기 시대에 정면 승부가 효과를 발했다.



- 성공의 전기가 있었다면?

"후배들에게 상처를 받다 보니 고민이 컸다. 그런데 부모님이 자산으로 물려준 형제들이 있더라. 우리가 5형제다. 싸카스포츠로 회사 이름을 변경했다. 마침 밀리오레가 문을 열었다. 돈이 없어 분양을 못 받구 전세로 들어갔다. 이제 어딘가(유명 브랜드)를 잡아야 하는 데 처음엔 답이 안 나왔다."

- 그래서 어떻게 했나?

"당시 브랜드가 16개쯤 됐다. 판매권을 따내야 하니까 후순위부터 전화를 돌렸다. 3위까지 '노'이더라. 2개가 남았는 데 오기가 생겨 세계 1위인 나이키에 전화했다. 뜻밖에 반응이 있었다. 현지 실사를 하고는 '어렵다'고 했는 데 물러서지 않았지. 우여곡절 끝에 대전에 매장을 냈다."



오 회장은 서대전에서 대박을 쳤다. 당시 그 곳은 매출이 워낙 많아 세무서의 타깃이 되곤 했다. 다른 나이키 매장의 집중 견제도 막아내야 했다. 서울에 물건을 판매하는 역발상에 힘입어 상상하기 힘들 정도로 매출이 늘었다. 이후 덩치가 커지자 ERP(전사적 자원관리) 시스템을 도입해 체계적인 관리 체제를 구축했다. 중소기업청과 대한상의를 뛰어다니며 싸카 현실에 맞는 ERP를 이끌어냈다. 이는 완벽한 전자상거래 구축으로 이어진다. 연간 10만 개 이상의 스포츠 용품이 돌아가는 상황에서 과학적 관리망을 갖췄고, 다른 중소기업에도 전파시켜 호평을 받았다.



- 상장 같은 계획은 없나?

"한때 검토했다. 우리 회사는 신속한 의사 결정이 중요하다. 상장하면 더 키울 수 있겠지만 경영에 반드시 도움이 된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 판매 쪽이 주력인데 축구공을 자체 브랜드로 제작하는 이유가 뭔가?

"축구공 제조는 파키스탄이 1등이고, 일본은 가내 수공업으로 명품 축구화를 만든다. 우리도 장인정신이 있어야 하지 않겠나. 나름의 자존심 같은 거다. 대박 나는 시장은 아니지만 인건비 주고, 기술력 확보해 수입대체 효과를 보고 있으니 의미가 있다. 인쇄술은 우리가 최고다. 공인구뿐만 아니라 유명 감독의 사진을 넣은 식으로 캐릭터화 하니 인기가 꽤 있다."

- 공익사업을 다양하게 펼치는 데.

"자연스럽게 하고 있다. 2002 월드컵 뒤 네팔 등에 축구화 2002켤레를 기증했고, 오페라단도 후원한다. 한·아시아우호재단을 통해 책을 보급하기도 한다. 또 서울 코리아싸카 FC를 운영 중이다. 선수로 활약한 50-60대로 구성돼 있다. 축구와 더불어 사교의 장을 만들어 드리고 싶었다. 저도 뛴다. 포지션은 센터포워드 겸 라이트 윙."

- 월간 축구 베스트일레븐 발행인 직함을 갖고 있는 데.

"1970년 창간됐으니 '샘터'와 나이가 같다. 적자가 나다 보니 맡아 달라는 요청이 왔다. 내가 축구에 미친 놈 아닌가. 사회적 공헌을 고민하기에 불우이웃돕기도 하는 건데 역사적인 잡지가 어려움을 겪는 걸 더 두고 보기 어려웠다. 은퇴할 쯤엔 모르겠지만 역량이 되는 대로 지원하겠다는 각오다. 스트레스가 좀 있긴 하다. 돈 떨어지면 전화하곤 하니까. 하하."

- 축구협회 이사 등을 지냈다. 한국 축구에 대해 고언한다면?

"솔직히 미래가 밝지 않다. 하지만 전문가 누구도 위기라고들 말하지 않는다. 인적 자원이 부족하고, 선수층이 너무 엷다. 물론 어려운 상황에서 최상의 선수를 솎아내 성적을 올리는 건 협회나 정책 당국의 몫이다. 숙제가 많다. 국민들이 대표 팀을 질타하기 앞서 경기장을 많이 찾아 주셔야 한국 축구가 산다. 잘하게끔 비판해야 한다. 표 사서 아이들 손잡고 축구장을 찾는 문화가 만들어져야 한다."

- 하루 일과가 궁금하다.

"새벽 5시에 일어나 신문을 죽 본다. 남양주 본사에 도착해 전체 직원과 미팅을 한다. 팀장들이 공지사항 알려주고, 사훈을 제창하는 순이다. 5-10분이면 된다. 각 파트를 돌며 얽힌 게 있으면 풀어준다. 회사 내 업무는 오전 중 마치고 그 뒤엔 밖에서 움직인다."

- 계획이 있다면?

"축구와 관련한 스포츠 분야와 건강, 웰빙 식품을 아우르는 회사로 성장하고자 한다. 축구 꿈나무교실과 유소년 축구 육성, 미래 국가대표를 양성하는 축구사관학교 등 축구를 매개로 스포츠 문화 발전에 기여하는 회사를 만들고 싶다."

- 축구계 충청 인맥은 누가 있나. 자주 만나나?

"그다지 많지는 않다. 이태호 감독(대전)과 최순호 감독(청주) 등과 다 유대가 있다. 명문이었던 대전상고 축구팀이 해체돼 아쉽다."

- 해외 스타급 선수들과도 접촉이 잦을 텐데.

"뭐, 다 일 때문에 볼 뿐이지. 아, 구자철과 염기훈을 좋아한다. 각각 유성과 논산 출신 아닌가. 축구를 잘하거니와 인간성이 정말 좋은 친구들이다. 만나보면 진짜 착하다. 실력 뛰어나고 매너 좋고…."



오 회장이 극찬한 두 선수는 지난 10일 FIFA 랭킹 13위인 강호 콜롬비아와의 평가전에서 후반 나란히 투입돼 한국의 2 대 1 승리를 지켰다. 숫자는 많지 않되 축구계에서 충청인의 위치와 역할을 확인하게 하는 장면이었다. 대담=송신용 대기자 겸 논설위원









축구 후원·기업 경영 남다른 성과 충청인 자부심으로 제2도약 꿈꿔

오정석회장은?



대학 졸업을 앞두고 일자리를 구해야 하는데 빚 청구서만 날아왔다. 정미소를 운영하다가 쓰러진 아버지가 돌아가시자 받을 돈은 오지 않고, 줄 돈만 쌓여갔다. 오정석 회장의 사회 생활은 이렇게 시작됐다. 집안을 수습한 뒤 무림페이퍼(주)와 동양철관 기획조정파트에서 약 5년 동안 일했지만 사장의 꿈을 어쩌지 못했다.

서울 동대문경기장 인근의 작은 체육사를 인수해 오늘의 싸카스포츠를 일구었다. 흙수저에서 금수저가 된 차원을 넘어 기울어진 집안을 일으켜 세운 베이비부머 마지막 세대다. 형제들도 회사 경영에 참여하고 있다. 명품으로 유명한 이탈리아 가족 기업을 떠올리게 한다.

충남 논산에서 태어나 공주고와 충남대 경제학과, 성균관대 국가전략대학원(정치학 석사)을 졸업했다. 유난히 수학을 좋아했고, 수리에 밝았는데 회사 운영에 큰 도움이 됐다고 한다. 지금도 후배들을 향해선 입버릇처럼 도전을 외친다. 공무원 준비 같은데 시간을 쏟지 말고 창업해서 승부를 걸라는 당부다.

월간 축구 전문지인 베스트일레븐 대표이사 발행인이자 한국스포츠산업협회 수석부회장으로 활동 중이다. 대한축구협회 이사와 한국축구혁신 TF 위원 등을 역임한 마당발이다. 대전시티즌 오피셜 용품 스폰서를 비롯해 여러 프로구단과 깊은 연을 맺고 있다. 세계 최고 수준의 품질을 엄선해 경기력 향상에 도움을 주고 있다. 싸카기술연구소에서 자체 디자인해 생산·공급하고 있는 아스토레 브랜드는 전남 드래곤즈 등의 유니폼으로 인기가 높다.

2002 한일월드컵이 끝난 뒤 조직위원회 표창을 받았고, 2009년 제 5회 대한민국 스포츠산업대상을 수상했다. 2006년 독일월드컵을 앞두고 대한적십자사 북한 축구용품 지원에 참여했다. 피스퀸컵 공식후원사(2010년)와 성실납세자 표창, 중소기업청장 표창장 등의 이력에서 보듯 축구 발전을 위한 후원과 성공적 기업 경영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았다. 2012년 남양주공장의 신축 가동을 계기로 제 2의 도약을 앞두고 있다.

공주고 장학재단 사무총장과 이사를 맡을 만큼 모교와 고향 사랑이 깊다. 오 회장은 "대전에서 대학 생활을 했고, 실질적인 사업 기반을 닦았다. 충청은 제 성격과 가치관을 형성한 곳이다. 자부심이랄까, 긍지 같은 게 크다"며 웃었다.











<저작권자ⓒ대전일보사. 무단전재-재배포 금지>
첨부사진2아산무궁화프로축구단과 지난 1월 용품 후원 협약을 맺고 있는 오정석 회장 (오른쪽 두번째)

송신용기자의 다른기사보기 버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