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정부 들어 여야 간에 가장 첨예한 대립을 보이는 것 중 하나가 바로 에너지 정책이다.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 대통령선거 과정에서 탈핵과 함께 신고리 원자력발전소 5·6호기 건설 중단을 공약으로 내걸었다. 이에 따라 지난 5월 말 건설 공사가 중단됐으며, 탈핵에서 탈원전, 다시 에너지전환으로 이름이 바뀐 정책은 일사천리로 진행됐다.

6월 국무회의에서는 신고리 5·6호기 건설 재개와 관련한 공론화 추진이 의결됐다. 이에 따라 공론화위원회는 19세 이상 국민을 대상으로 지역, 성, 연령 등을 고려해 무작위로 약 2만 명을 추출했다. 이어 이들에 대한 1차 설문조사를 실시하고 신고리 5·6호기 건설 재개, 중단, 판단유보 의견에 따라 시민참여단 500명을 구성했다. 이어 시민참여단은 숙의 과정에 돌입해 자료집을 통해 관련 내용을 학습하고 2박 3일 합숙 토론회 등을 실시했다. 공론화위원회는 이 과정에서 시민참여단을 대상으로 총 3회의 설문조사를 실시했는데, 마지막 조사에서는 유보 의견 없이 양자택일을 하도록 했다.

그리고 지난 10월 20일, 마침내 신고리 5·6호기 건설 재개에 대한 공론화 결과가 발표됐다. 최종 조사 결과, 건설 재개가 59.5%, 건설 중단이 40.5%였다. 우선 지난 1차 조사에 참여한 약 2만 명의 응답자들은 건설 재개 36.6%, 중단 27.6%, 판단 유보 35.8%를 나타냈다. 또한 이 중 선정된 시민검증단 500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3차 조사에서는 건설 재개가 44.7%, 중단이 30.7%, 유보가 24.6%를 나타냈다. 이는 초기에 찬반 의견 사이에서 고심해 결정을 유보한 응답자들이 시간이 지날수록 어느 한쪽 의견을 선택했음을 보여준다.

또 한 가지 흥미로운 점은 건설 중단에서 재개로 그리고 재개에서 중단으로 의견을 바꾼 비율이 각각 5.3%와 2.2%에 불과했다. 7.5%만이 입장을 반대로 바꾼 것이다. 혹자는 당연하게 여길 수도 있지만, 왜 이렇게 적은 수의 사람들만이 찬반 입장을 바꾼 것인지 한번 생각해볼 만하다. 이에 대해 `양측 주장에 대한 사실 검증이 없었다`, `원자력에 대한 공부가 어려웠다`, `3개월의 숙의과정이 너무 짧았다` 등 여러 논란이 있었고 그 해석 또한 다양했다.

그리고 이 중 하나로 심리학에서 말하는 `확증편향(confirmative bias)`이 있다. 일찍이 영국의 철학자 프랜시스 베이컨은 "인간의 지성은 일단 어떤 의견을 채택한 뒤에는 모든 얘기를 끌어들여 그 견해를 뒷받침하거나 동의한다. 설사 정반대를 가리키는 중요한 증거가 훨씬 더 많다고 해도 이를 무시하거나 간과하며 미리 결정한 내용에 매달려 이미 내린 결론의 정당성을 지키려한다"고 말했다. 인간은 편향된 마음이 있어 보고 싶은 것만 보고, 듣고 싶은 것만 듣고, 믿고 싶은 것만 믿는 오류를 흔히 저지른다는 것이다.

국가 에너지 정책의 기본 과제는 경제적이고 안정적인 에너지를 장기적으로 확보하는 것이다. 이를 위해 각기 서로 다른 장, 단점을 가진 에너지원을 그 나라의 실정에 맞도록 다양하게 조합하는 것이 필요하다. 이것은 경제성, 편리성, 안전성, 에너지 안보, 환경, 대체가능성, 지속가능성, 산업파급효과와 에너지의 수혜성이 종합적으로 고려된 선택이어야 한다.

다시 말해 에너지 정책은 이념이나 선악의 문제가 아니라 선택의 문제다. 미래 국가경제와 국민의 생활에 지대한 영향이 있기 때문에 큰 책임이 따른다. 우리가 에너지 정책을 고려할 때 확증편향에서 벗어나 복합적인 근거를 바탕으로 합리적인 판단을 내려야 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앞으로의 에너지전환 정책에서도 에너지원 조합이 중요하다. 안정적인 에너지 공급원이자 국가경제 발전에 기여하는 원자력의 의미와 필요에 대해 다시 한 번 깊이 고려해봐야 할 때다. 이기복 한국원자력연구원 소통협력본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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