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미 FTA(자유무역협정) 개정협상에서 농축산업부문을 다시 희생양으로 삼으려는 건 유감이다. 한·미 FTA 이행 5년 동안 농축산물 무역수지 적자가 65억 달러(약 7조 원)에 달하는 현실에서 미국의 압력에 또 굴복하는 건 있어선 안될 일이다. 위기감에 빠진 농축산업계는 조직적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FTA 대응 대책위원회와 축산관련단체협의회는 지난 10일 기자회견을 열어 협상 폐기를 촉구했다. 충청권 농민단체들의 움직임도 예사롭지 않다. 한·미 FTA는 우리나라가 체결한 FTA 중 농축산물 대부분의 관세를 철폐하기로 해 무역자유화 수준이 가장 높다. 갈수록 관세감축 누적효과가 커지면서 미국산 농축산물이 더욱 밀려올 상황이고 보면 농축산업계의 주장이 설득력이 있다.

현실은 농축산인의 바람과는 정반대로 가고 있다. 정부는 공청회에서 제시했듯 개정 협상에서 농축산물의 추가 개방을 협상 시나리오의 하나로 검토하고 있는 모양이다. 쇠고기와 포도 같은 농축산물 176개의 관세 철폐 기간을 더 당기거나 단계적으로 개방을 확대하는 방안이다. 이는 김현종 통상교섭본부장이 “농업은 우리의 레드라인이다. 농업을 건드리는 순간 우리는 미국의 제일 민감한 것을 건드릴 수밖에 없다고 미국 쪽에 이야기했다”고 말한 것과 정면 배치된다. 농축산물 추가 개방 가능성이 거론될 때마다 적극 부인하던 정부가 태도를 돌변했으니 농축산업계의 배신감이 이해가 된다.

한·미 FTA 협상을 하면서 농축산업 부문이 가장 많이 양보했음은 주지의 사실이다. 우리의 대미 무역수지 흑자는 2011년 116억 달러에서 2016년 233억 달러로 2배 증가한 반면 농축산물은 같은 기간 적자 폭이 59억 달러에서 65억 달러로 커졌다. 쇠고기 시장을 활짝 열어줘 국내 축산농가가 붕괴 위기에 몰렸고, 미국산 과일이 쏟아져 들어오면서 과수농가의 타격이 이만저만 아니다. 외교력을 발휘하는 데 집중하기는커녕 농축산물 양보 카드를 만지작 거리고 있으니 어느 나라 정부인지 묻지 않을 수 없다. 당당한 자세와 정교한 논리, 치밀한 전략으로 농축산업을 지킬 것을 주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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