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무성 의원을 비롯한 9명의 의원이 바른정당을 떠나갔다. 바른정당 소속 의원은 11명으로 줄었다. 당장 교섭단체 지위도 잃었고 당의 진로 역시 불투명하다. 전당대회를 코앞에 두고 있지만 열기도 시들하다. 유승민 의원을 필두로 결기를 다지고 있지만 과연 자력갱생이 가능할지는 미지수다. 오히려 국민의당 등 다른 정파와 연대나 통합 등에 관심이 쏠리는 것이 바른정당의 현실이다.

돌이켜보면 바른정당의 역할은 막대했다. 이들이 없었다면 박근혜 전 대통령에 대한 탄핵도 불가능한 일이었다. 한국 정치사에 이들처럼 큰 역할을 한 정파가 또 있을까 싶다. 바른정당의 창당은 보수혁신이라는 대의명분이 있었다. 33명의 의원들이 이를 기치로 한국당의 전신인 새누리당에서 분당을 선언했을 때 분파주의라는 비난보다 보수의 희망으로 자라기를 바라는 격려와 응원이 우세했다. 그만큼 낡고 찌든 보수정치권을 혁신해야 한다는 국민적 여망이 있었던 셈이다.

그러나 바른정당은 출범과정에서부터 한계를 노출하고 있었다. 당을 지키고 있는 유승민 의원 측과 당을 떠난 김무성 의원 측 간의 경쟁과 대립이 바로 그것이다. 양측의 간극은 정치적 지향점이나 추구하는 노선에서부터 갈렸다. 유 의원 측이 혁신을 통한 새로운 보수정치를 정립하는데 방점을 두고 있었다면 김 의원 측은 정치공학적인 차원에서 당을 설계했다고 할 수 있다.

양측에 흐르던 암류는 대선을 전후에 표면화했다. 대선 7일 전 13명의 의원들이 1차로 바른정당에서 이탈했다. 보수단일화를 앞세워 한국당 홍준표 후보 지지와 한국당 복귀를 선언했다. 선거운동에 여념이 없는 자당 유승민 후보의 등에 비수를 꽂은 것이다. 이번에 2차로 탈당한 9명의 의원들 역시 보수통합을 명분으로 앞세웠다. 시기만 다를 뿐 이들의 머리 속에는 이미 한국당으로 돌아갈 생각으로 가득 차 있었다고 볼 수 있다.

이런 배경 때문이라지만 바른정당 스스로 보수개혁의 실체를 만들어내지 못하고 보수지지층에게 이렇다 할 비전을 보여주지 못한 것은 크나큰 실책이다. 민주적 리더십의 부재로 우왕좌왕하는 모습이 계속되면서 그나마 기대를 걸었던 지지층도 서서히 등을 돌렸다. 여기에 불을 당긴 것은 소속 의원들의 보신주의다. 바른정당의 간판으로는 당장 내년 지방선거는 물론 차기 총선도 기대할 수 없다는 열패감은 당을 지켜야 한다는 당위를 짓눌렀고 난파선에서 탈출하듯 몸을 빼게 만들었다.

이들 탈당파의 절박감은 한국당 복귀로 이어지고 있지만 그 길이 탄탄대로인 것만은 아니다. 한국당이 변했느냐는 하면 그것도 아니다. 박 전 대통령을 출당시킨 것 빼고는 그대로다. 친박 핵심인 서청원·최경환 의원을 비롯해 친박의 잔재는 한국당의 최대 세력을 형성하고 있다. 이들은 특히 김무성 의원 등 탈당파에 앙금이 깊다. 김 의원이 주도한 옥쇄 파동이 20대 총선 패배로 이어졌고 일련의 탄핵과 정권 상실의 빌미가 됐다고 보고 있다. 박 전 대통령 탄핵과 바른정당의 설계자가 김 의원이란 것이다. 그러니 반감이 없을 수 없다.

이 틈바구니에서 탈당파들은 새 길을 모색해야 한다. 한국당 복귀 명분이 보수 궤멸을 막자는 것인 만큼 해법을 내놔야 한다는 것이다. 그저 머릿수만 보탰을 뿐이라는 비난에서 벗어나려면 다음 달 원내대표 경선에서 당의 체질 변화에 대한 가능성을 제시하고 이끌어야 한다. 바른정당의 보수개혁 대열에서 이탈한 이들이기에 도덕성이나 참신성에서 많은 점수를 주기는 어렵지만 한국당에서는 더욱 뼈를 깎는 노력으로 변화와 혁신을 이끌 책무가 있다. 그렇지 않다면 바른정당 창당과 탈당, 한국당 복귀라는 일련의 행로가 정치생명을 연장하기 위한 몸부림에 지나지 않았다는 점을 자인하는 꼴이 될 것이다.

우리 정치사에 크고 작은 정계개편이 이뤄졌지만 때로는 정치적 이해만이 난무하는 인위적 이합집산으로 국민들의 공분을 산 경우가 적지 않다. 이번 바른정당 탈당파의 경우도 쉽사리 납득이 어려운 행보로 정치불신을 초래하지 않았는지 되돌아 봤으면 한다. 이젠 배덕의 정치를 끝낼 때도 됐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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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시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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