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년 겨울, 충남 태안에서는 지금도 생각하기 끔직한 사고가 있었다. 유조선 허베이 스피리트호 충돌사고다. 이 사고로 유출된 기름이 1만 900t(1만 2547㎘)이나 됐고 4627㏊에 달하는 태안군 8개 읍·면 3800개소의 어장과 4개면 15개소 400㏊ 해수욕장, 가로림만에서 안면읍 내파수도 연안까지의 해안선 167㎞에서 극심한 피해가 생겼다. 또한 인근 도서지역도 피해가 커서 지역주민들로서는 방제작업은 엄두도 못내고 있던 실정이었다. 사고 후 3일이 지나서야 정부는 태안군 등을 특별재난지역으로 선포했고 이후 지역주민, 군·경찰은 물론 전국 각지에서 방제를 위한 자원봉사자들이 몰려왔다.

필자도 그때 당시 대전적십자봉사회 소속으로 방제작업에 참여해 기름을 닦아내고 쓸어담았다. 푸르던 바닷가는 어디 가고 시커먼 기름이 우리의 생명을 위협하고 있었다. 이미 갯벌이나 해변가에는 바다생물은 물론이고 조류들의 사체가 한가득했다. 도대체 무엇이 이토록 아름다운 바다와 생명의 갯벌을 죽음의 장소로 만들었던가 그저 아연실색 말문이 막혔다. 매서운 추위는 아랑곳하지 않았다. 그저 돌멩이 하나부터 바위틈새 하나하나, 모래사장 구석구석 기름을 걷어내야 한다는 일념만이 필자를 포함한 자원봉사자들의 마음이었으리라. 그렇게 해 지역주민과 군경찰, 그리고 자원봉사자 180여만 명이 수고한 결과 유출된 기름의 2/3 정도를 수거 또는 제거할 수 있었다.

환경전문가들은 오염돼 상실된 갯벌과 자연자원들의 경제적 가치를 거론하며 기름 유출전으로 회귀하는 기간만 무려 20년 이상이 걸릴 것이라고 했다. 이러한 전문가집단의 추측과 발언은 지역주민들에게 있어서 사형선고나 다름없었다. 시간이 지나며 정부의 지원약속은 특별법 제정이 전부였다. 피해주민들은 여러 가지 질병에 노출됐고, 결국 삶의 터전인 고향을 떠나는 이들까지 발생하기에 이르렀다. 그래도 남아있는 사람들은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매일같이 바다에 나가 기름을 걷어내기 위해 노력했다.

어느덧 무심한 세월은 10년이나 흘러갔다. 그렇다면 지금의 태안의 모습은 어떨까? 환경전문가들이 20년 이상 걸려야 한다고 했던 오염된 바닷가, 갯벌을 상상했지만 전문가들의 예상과는 달리 아름다운 해변과 운반로와 숲과 바다가 만나는 천혜의 자원 갯벌은 다시 살아나 청정지역으로 우리들 곁에 숨 쉬고 있었다. 이렇듯 바다와 갯벌의 생명들과 해송이 줄지어 서 있다. 마치 누군가를 기다리기나 하는 듯 말이다.

그러나 이곳의 지역주민과 바다의 생명들과 솔향기 가득한 해송은 서로의 시간을 맞대며 강한 생명력으로 독한 기름을 걷어냈지만 아직도 돌아오지 않는 사람들이 있다. 바로 추운 겨울 기름때를 걷어내던 고마운 사람들의 따뜻한 손길과 예전에 그리도 이곳을 아름답다 칭찬했던 관광객들의 발길이 그렇다. 그러한 고마움을 잊지 않기 위해 지역주민들은 부단히도 그리움과 감사의 마음을 담아 아름다운 청정자연 갯벌과 힐링의 솔향기길을 다듬고 가꿔왔다. 그리해 드디어 지역주민의 여망이 한데 모여 갯내음 솔솔 솔향기길이 탄생하게 됐고, 솔향기길은 11월 꼭 가봐야 할 아름다운 국내여행지로 선정됐다.

태안의 솔향기길은 총 5개의 코스로 이뤄져 있으며 각 코스별로 길이는 10㎞ 내외로 트레킹하기 부담이 없으며 어렵지 않은 코스이다. 태안절경 천삼백리 길에서 단연 최고의 감성코스이기도 한 솔향기 1코스를 소개하자면 만대항에서 꾸지나무 해수욕장까지의 길이다. 성인 기준 3시간 정도 소요되는 1코스의 길은 물이 들어오면 길이 잠기다 보니 따로 길이 마련된 것은 아니지만 물때를 사전에 알아보고 간다면 바닷가 돌길을 걷는 기분은 우리들의 인간 세상사 길처럼 녹록치만은 않은 길을 경험하게 될 것이다.

어느새 깊어진 계절은 온 산을 오색 빛으로 물들이기 시작했다. 총천연색으로 곱게 물든 단풍은 가을이 선사하는 최고의 선물이기도 하다. 만추(晩秋)의 계절 가을단풍도 제철이지만 10년 전 가슴 아픈 기억을 이겨내고 다시 아름다운 바다와 청정갯벌과 가슴까지 맑아지는 해송을 보듬고 살려낸 태안의 사람들을 찾아가는 힐링의 시간을 가지면 어떨까 생각하니 깊어가는 가을 발걸음은 어느새 서해바다 솔향기길을 걷고 있는 듯 하다. 산책로 따라 걸으며 해송들 사이로 하얗게 핀 구절초와 하늘거리는 억새, 빨갛게 익은 열매처럼 가을의 풍경을 발견하는 것도 색다른 재미다. 발길에 사박거리는 낙엽을 밟으며 잠시 가을 감성에도 젖어본다. 운이 좋거나 물때를 잘 맞춰 간다면 혼자남아 꿋꿋하게 세월을 이겨낸 `여(餘)섬`에 걸어들어 갈 수도 있다. 서해에서는 만나기 힘든 에메랄드 빛 굴껍질 해수욕장은 여섬이 준비한 작은 선물이니 꼭 들렀다 가길 바란다. 김수경 우송정보대학 호텔관광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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