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자는 지난 칼럼에서 국민건강권에 대한 국가의 책임에 대해 언급하고 국민건강보험 보장성 강화를 통해 이를 해결해야 함을 제안한 바 있다. 우리나라의 건강보험제도는 2000년 7월 전 국민이 하나의 보험자로 통합 일원화된 이후 50%에 불과했던 국민건강보험의 보장성이 2015년 현재 63.4%까지 높아졌지만 경제협력개발기구 회원국 평균 보장률 81%에 비해 매우 낮은 수준이다. 다만, 최근 제안된 문재인 정부의 건강보험 보장성 강화계획이 제대로 이행된다면 5년 이내에 보장률은 70%대까지 높아질 수 있다.

그 동안 건강보험의 보장성 수준은 높아졌지만, 우리 사회의 전반적 행복수준은 크게 추락했다. 우리 사회에 문제가 생긴 건 1997년 외환위기 이후였다. 외환위기를 수습하는 과정에서 미국과 IMF가 요구했던 신자유주의를 그대로 수용했고, 이후 빠른 속도로 제도화됐다. 그래서 더 자유롭고 큰 시장과 역할이 작은 정부가 탄생했다. 그 기간 동안 심화된 경제와 산업의 양극화는 결국 일자리의 양극화로 귀결되어 보편적 복지의 제도화를 추진하는 것 대신에 선별적 복지로 땜질식 문제 해결을 추구했다. 그래서 대다수의 국민들은 복지를 자신들의 일이 아니라 극빈자들만의 일이라고 생각하게 되었고 대한민국은 소득 불평등이 심각한 격차사회로 전락하고 말았다.

지난 20년 동안 헌법상의 권리인 `행복추구권(헌법 제10조)`은 충분히 인정됐다. 국민은 누구나 자신의 행복을 추구할 권리를 가지고 있다. 그래서 우리 국민들은 규제완화와 감세가 적용된 `보다 자유로운 시장`에서 행복을 추구하기 위해 각자도생의 방식으로 엄청나게 노력했다. 그런데 그렇게 살아온 지난 20년 동안 자살률은 3배나 늘어났고, 출산율은 세계 최저로 추락하고 말았다. 이런 현상의 배후에는 불평등이 존재한다. 소득 상위 10%가 전체 소득의 절반가량을 가져가는 나라는 주요 국가들 중 미국과 우리나라밖에 없고 자산의 불평등은 이보다 훨씬 더 심각하다.

그리고 그런 불평등을 초래한 원인이 참여자의 노력 부족인 경우도 있겠지만 지난 20년 동안 우리나라에서 더 결정적인 승패의 요인은 `행운`이었다. 부모의 경제사회적 지위가 높은 경우 성공할 확률이 압도적으로 높기 때문인데, 이게 바로 `금수저-흙수저론`이다. 부모의 경제적 능력만 행운인 건 아니다. 우수한 두뇌를 타고났거나 탁월한 신체적 조건이나 외모를 타고난 경우도 엄청난 행운이다. 정반대의 경우는 불운이다. 그리고 다수의 보통사람들은 행운과 불운의 중간쯤에 해당하는 그런 천부적 행운을 가지고 태어난다.

이것은 자연의 섭리이니 어쩔 수 없는 일이고 인간 사회의 `다양성`이라고 표현한다. 그런데 `서로 다르다`는 의미의 다양성이 불평등이라는 이름의 경제사회적 서열화와 구조적 차별로 이어지는 사회에서는 행복추구권이 보통사람들의 실질적인 행복 추구로 이어지긴 어렵다.

이런 상황을 바꾸기 위해서는 노동시장에 대한 `복지국가`의 개입이 필요하다. 무엇보다 일자리간 임금격차와 복지격차를 줄여야 한다. 최저임금을 중위소득의 60% 수준까지 올리고, 중소기업에 대한 국가의 적극적 지원이 필요하다. 또한 국가가 제공하는 복지수준을 높이기 위해 국내총생산 대비 공공사회복지지출 비중을 현재의 10%대에서 경제협력개발기구 평균인 20%로 높여야 한다. 그럴 때라야 사회경제적 행운과 천부적 행운을 가진 사람들뿐만 아니라 다수의 보통사람들이 행복할 수 있는 `복지국가`가 가능하다.

"그것이 신의 뜻이라면 불운은 얼마든지 감수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구조적 불행은 거부해야 한다. 행운·불운의 여부를 떠나 사회구성원 누구에게나 행복할 권리가 반드시 보장돼야 한다." 복지국가소사이어티 공동대표 이상이 교수의 말이다. 여기서 강조하고 싶은 것은 행복추구권이 아니라 행복할 권리(행복권)이다. 그리고 이 일을 해야 할 주체는 바로 국가이며, 이것을 가장 잘 하는 국가가 바로 `복지국가`이다. 최근 이런 복지국가의 국민으로 행복하게 살고 싶다는 보통사람들의 기대와 열망이 분출되고 있고, 이 과정은 지금도 그리고 앞으로도 계속될 것이다. 유미선 충남대학교병원 약사, 복지국가소사이어티 정책위원

<본 칼럼은 복지국가소사이어티와의 합의 하에 관련 자료를 인용하였음을 밝힙니다.>

<저작권자ⓒ대전일보사. 무단전재-재배포 금지>

저작권자 © 대전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