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론화 방식으로 `공론조사(deliberative polling)`을 선택했다. 성별, 연령, 지역 등을 고려하여 1차 설문조사를 실시하고(참여자 20,000여명), 이 가운데 시민참여단 500인을 선발했다. 2차 설문조사 후, 이들에게 판단에 필요한 각종 정보와 논의 기회를 제공한 다음 최종적으로 2박 3일간 합숙을 앞뒤로 3차, 4차 설문조사를 통해 결론을 도출했다. 최종 조사 결과, 건설재개(59.5%)가 건설중단(40.5%)를 오차범위를 벗어나 압도하게 되고, 공론화위원회는 이를 정리하여 정부에 권고안을 제출하고, 대통령은 이를 근거로 신고리 5,6호기 건설을 재개하되, 자신의 공약인 탈원전 정책은 지속적으로 추진해 가겠다는 의지를 밝히며 3개월에 걸친 공론화는 일단락된다.
오류나 한계가 없었던 것은 아니다. 신고리 5, 6호기가 갈등현안이라는 것을 몰랐을 리 없다. 대통령 후보가 폐쇄를 주장하려면 폐쇄에 따른 사회적 갈등을 어떻게 해결할 것인지에 대한 방안도 함께 제기했어야 했다. 대선 공간에서는 폐쇄 주장으로 탈핵 세력과 탈핵을 원하는 국민의 표를 얻고, 대선 이후에 그 결정을 국민에게 다시 물으니, 지지자들에게는 배신감을 갖게 하고, 국민에게는 정책의 일관성에 혼선을 가져오게 만들었다. 정치력의 한계다.
공론화를 위해서는 다양한 수단과 방법들이 동원된다. 공론조사만으로 공론을 정하는 건 무리다. `정책 결정 = 공론화 = 공론조사`라는 단선적인 방식에서는 국회도 사라지고 지도자의 가치와 통치철학도 없었다. 정책 결정에 국회가 사라지자 탈핵에 반대해온 일부 야당은 또 다른 의미의 대중 동원에 나서게 되고, 국민의 숙려된 의사를 묻자고 시작된 공론조사는 야-야간의 세-대결 양상으로 전환되었다. 대통령의 공론조사에 대한 지나친 의미부여가 공론화 과정을 왜곡시킨 원인으로 작용했다.
또 하나 공론화 도구로 활용된 `공론조사`가 해당 사안에 적합한 방식이었느냐에 대한 문제가 있다. 신고리 5,6기만을 대상으로 찬반을 가리는 공론조사는 그 과정과 결과에서 이미 대립과 갈등을 내포하고 있으며, 원자력에 관한 근원적인 갈등을 해소하지 못한다. 이런 점에서 2012년 일본, 1994년 남아공에서 했던 것처럼 미래 우리가 가고자 하는 방향을 세우고, 그 길에 도달할 수 있는 몇 개의 시나리오를 작성한 다음, 이를 대상으로 공론조사를 실시했더라면 훨씬 장기적이고 통합적인 결론을 도출할 수 있을 거란 아쉬움이 남는다.
이런 한계와 오류에도 불구하고, 이번 공론화과정이 국민에게 문제해결의 또 다른 과정을 보여준 민주주의에 대한 교육적 효과가 있었음을 부정할 수 없다. 또한 사회적 갈등 현안이었던 신고리 5,6호기 건설 여부가 이번 과정을 통해 상당한 정도 해소되었다는 점도 간과할 수 없다. 이번 공론화 과정을 통해 국민은 대의제와 직접민주주의를 넘어 `숙의 민주주의`에 눈뜨게 되었고, 다양한 방식으로 이를 적용·활용하게 될 것이고 우리 사회 민주주의는 이전보다 훨씬 풍부해 질 것이다. 박태순 사회갈등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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