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의 여느 옛 도시와 마찬가지로 늦가을에 접어들수록 더욱 정감 넘치는 곳이 바로 남부 독일 바이에른 주의 레겐스부르크(Regensburg)다. `일본 순정만화의 고전`으로 불리는, `베르사유의 장미` 등으로 유명한 일본 만화가 이케다 리요코의 작품 `올훼스의 창`에 배경으로 등장하는 곳이 바로 이 곳이다. 이 만화에 등장하는 유리우스와 크라우스 두 주인공의 가슴 깊이 저미어 오는 사랑에 동화돼 가슴앓이를 해야 했던 사람이라면 누구나 한 번쯤 꼭 찾아가고 싶어 하는 곳이다. 실제로 그곳에 가보면 만화 속에 등장하는 레겐스부르크 곳곳의 장면 그대로를 확인하고 놀라게 된다.

독일군과 연합군이 맞섰던 2차 세계대전 당시 레겐스부르크 일대에는 공업지대가 들어서있어 연합군의 집중 포격을 받았다. 하지만 당시 연합군 측은 중세도시의 유적 알트 슈타트(Alt Stadt·구시가지) 도심지역은 폭격을 하지 않았다. 그 결과 전쟁의 포화 속에서도 중세시대의 건축문화재들이 그대로 남아 있다. 어찌 보면 전시상황인데도 연합군 측의 배려로 독일 여러 도시 중 중세시대 원형 그대로를 간직할 수 있었던 곳이 바로 레겐스부르크다. 도시 곳곳에 들어서 있는 유구한 역사의 중세시대 문화재들이 원형 그대로 보존돼 있다 보니 유네스코는 2006년에 대성당과 구시가지 전체를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했다.

레겐스부르크는 늦가을 11월쯤 찾아가 보면 더욱 정감 넘친다. 당일치기보다는 1박 이상 머무르며 여유 있게 걸어서 중세도시 곳곳을 거닐어 보자. 시시각각으로 변화하는 그 수려한 온고이지신의 매력 속으로 흠뻑 빨려 들어가 보자. 다채로운 관광매력에 풍성한 먹거리와 넉넉한 인심이 시나브로 마음을 강타해 다가온다. 오랜 세월 자태를 다듬어온 대자연의 풍광 속을 거닐며 나만의 여행 이야기를 만들다 보면 시간 가는 줄 모른다. 가이드북이나 관광지도를 휴대하지 않아도 그다지 불편하지도 않다. 그저 발 길 닿는 데로 이곳저곳 기웃거리며 카메라 셔터를 연신 눌러대다 보면 어느새 도시 전체가 아름다운 황혼의 품속으로 빨려 든다.

그 넉넉한 품 안에서 수제 햄이나 소시지가 든 빵 하나로 저녁 한 끼니를 때워도 포만감이 오랜 시간 지속된다. 그렇게 땅거미가 지기 시작하는 옛 골목길을 걷다 보면 인적이 드물어 고즈넉하지만 외롭지는 않다. 순간 수천 년 전의 중세시대 사람들이 나그네와 함께 길동무가 되어 주는 것 같은 환상 가운데 빠져든다. 그렇게 시공을 넘나들며 커뮤니케이션을 하며 길을 걷다 보면 옛 돌길 위에 깃든 정기를 받아 발바닥이 참 시원하다는 느낌이 든다. 오랜동안 잊지 못할 정경을 가슴 고이 간직하려면 매혹적인 경관이 펼쳐지는 곳에 서서 두 눈을 살포시 감고 그 감흥 어린 순간을 향유하면 더할 나위 없이 좋다.

하지만 레겐스부르크 등 독일의 옛 도시들을 여행하면서 절감하는 점은 나 홀로 떠나온 여행이라도 전혀 외롭지 않다는 사실이다. 지금 내 처지가 비록 초라하더라도 이 세상의 괄목할만한 지위와 부와 명예를 자랑하는 그 누구도 부럽지 않은 나만의 행복감을 만끽할 수 있다. 그래서 옛 도시에서의 나그네 여정은 더욱 애틋하고 각별하다. 레겐스부르크를 찾아서 깊은 매혹적 감흥에 빨려 들어 찬사를 늘어놓은 이는 필자뿐만이 아니다. 대문호·유명 정치인·위인 등 수두룩하다.

도나우 강의 최북단과 레겐 강이 합류하는 지점에 자리 잡은 중세 고대도시 레겐스부르크는 만추(晩秋)가 깊어질수록 독일 남부 거점도시 뮌헨에서 기차로 1시간 40분이면 주파할 수 있는 곳에 위치한 레겐스부르크가 더욱 그리워진다. 로마시대 이후 국제 교역도시로 명성을 날리다가 중세 신성로마제국시대에는 제국회의가 열리던 국제정치의 중심지로 자리 잡은 레겐스부르크에 다시 가고 싶다. 신수근 <자유여행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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