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억이흐르는그곳 골목길] ⑩ 아산 공세리 마을 골목길

마을 길 한 복판에 이명래 고약이 탄생했다는 것을 알리는 그림. 사진=황진현 기자
마을 길 한 복판에 이명래 고약이 탄생했다는 것을 알리는 그림. 사진=황진현 기자
옹기종기 붙어 있는 집, 시멘트로 쌓아 올린 담벼락, 높고 비좁은 계단 등은 옛 골목길의 풍경이다. 화려하고 현란한 도심 속에서 골목길의 풍경은 낯설기도 하면서도 촌스러워 보이기도 한다. 요즘 도시에서는 흔히 볼 수 없는 풍경이다. 고층 아파트와 넓은 도로가 들어서면서 많은 골목길은 옛 정취를 감추며 점차 사라져가고 있다. 하지만 골목길은 오랜 삶이 묻어있는 향수의 공간이다. 누군가에게 골목길은 어릴 때 친구들과 숨바꼭질하던 동심의 장소이기도 하고 또 누군가에게는 연인과 사랑을 속삭인 공간이기도 했으며 이웃집에 놀러가기 위해 지나야 하는 비좁은 길이기도 했을 것이다. `응답하라 1988` 속 쌍문동 골목길은 덕선과 성동일, 보라와 선우 등 쌍문동 골목길 사람들의 추억이 담긴 장소였다. 오래된 물건에서 옛 정취와 유년시절의 추억을 떠오리듯이 골목길 또한 그런 존재다. 골목길을 걸리면 까맣게 잊고 있었던 유년시절 추억이 문뜩 떠오른다.

아산 인주면 공세리 마을에는 옛 정취가 묻어있는 골목길이 마을 곳곳에 있다. 구석구석에 있는 골목길에는 이 지역의 역사와 정취를 보여주는 벽화들이 그려져 있다. 그렇다고 해서 형형색색 벽화를 그려 놓은 여느 골목길 담벼락처럼 화려함이나 멋스러움은 없다. 그렇지만 어딘가 모르게 이 마을의 정서를 보여주고 있는 듯한 인상을 심어준다.

이 마을은 대한민국 가장 아름다운 성당으로도 선정된 바 있는 공세리 성당을 품고 있다. 공세리 성당은 1895년에 설립돼 120년이 넘는 역사를 자랑 하고 있다. 천주교 신앙을 위해서 목숨을 바친 수많은 순교자들을 모시고 있는 중요한 성지이기도 하다. 또한 `아이리스2`, `청담동앨리스`, `태극기휘날리며` 며 각종 드라마와 영화 장소로도 유명한 곳이다.

하지만 이 마을이 관광객들에게 주목을 받는 또 다른 이유가 있다. 바로 마을 골목길 때문이다. 얼마나 많은 세월을 지역민들과 함께 했는지는 모르겠지만 도심 속에서는 볼 수 없는 골목길 이 관광객들의 발 길을 끌고 있다. 마을 골목길은 성당과의 경계가 모호하다. 그래서 인지 서로를 위해 존재하고 감싸주고 있는 모양새다. 마을을 둘러보면 `공세리 이야기`라는 북카페가 나온다. 성당으로 향하는 길목에 있는데 주민들이 직접 운영하는 카페다. 바로 건너편에는 팽나무 도서관이 있다. 외관이 독특해서 시선이 먼저 가는 곳이다. 마을 사람들은 이 곳에서 책을 보기도 하고 음식을 함께 나눠 먹고 담소를 나누기도 한다. 정감 있는 풍경이다.

마을 골목길 담벼락 곳곳에는 이 마을의 정서를 보여주고 있는 듯한 벽화가 그려져 있다. 마을을 둘러보면 `공세리 마을이야기`라는 골목길을 마주하게 된다. 골목길 담벼락에는 벽화들이 그려져 있는데 화려함이나 멋스러움은 없다. 골목길과 마을사람들이 함께 한 세월에 가치를 두고 있는 듯한 느낌이다.

먼저 조선시대 소방관인 의용소방대 벽화가 눈에 들어온다. 검은 색 옷을 입고 검은 갓을 쓰고 있으며 짚신을 신고 있다. 특이한 소방호스를 잡고 물을 뿌리며 화재 진화작업을 하는 긴박한 상황이 떠오른다. `씨름`이라는 벽화도 그려져 있었는데 나무판으로 가려 놓아 그림이 잘 보이지 않았으나 특별한 의미를 보여주고 있는 듯 했다.

마을에는 역사의 흔적도 남아있다. 아산 공세곶고지 터가 있는데 세금으로 거둔 곡식을 보관하던 창고로 사용됐다. 공세곶창이 중종 18년에 공진창으로 이름이 바뀌었고 적재량 800석의 조선(漕船) 15척과 720명이 배치되었다고 설명해 놓았다. 옆에는 조세의 수납과 운송을 담당하던 관리가 삼도해운판관비라는 비석이 세워져 있는데 이들을 기념하기 위해 세운 비석이다. 길 한복판에는 이명래(세례명 요한)가 프랑스 선교사인 드비즈 신부로부터 고약 제조법을 배워 이 곳에서 서민들의 생활 필수품이었던 이명래 고약이 탄생하게 됐다는 것을 알리기 위한 그림도 눈에 띈다. 마을 골목을 여기저기 돌아보면 옛 시절이 녹아나 있는 방앗간, 이발소 등의 모습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 골목길을 거닐수록 먼 옛날로 시간을 거스르는 느낌이 든다. 시간 여행을 하 듯 현대에서 과거로 역행하는 것 같은 착각이 일 정도다. 이곳의 골목들은 꾸미지 않은 채 자연스럽게 남아 있어 어린 시절 살던 동네 같은 분위기를 곳곳에서 느낄 수 있다. 작은 마을과 골목길, 벽화, 그리고 성당이 함께 어우러져 있는 이 곳은 역사와 문화, 과거와 현재를 잠시나마 경험할 수 있는 곳이다.

황진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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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세리 마을 이야기`라는 골목길에 그려져 있는 벽화. 사진=황진현 기자
`공세리 마을 이야기`라는 골목길에 그려져 있는 벽화. 사진=황진현 기자
마을 골목길에 자리잡은 아산 공세곶고지 터와 삼도해운판관비. 사진=황진현 기자
마을 골목길에 자리잡은 아산 공세곶고지 터와 삼도해운판관비. 사진=황진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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