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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요프리즘] 러시아 사할린 지역 지명에 반영된 러시아인의 의식과 지명의 가치

2017-10-31 기사
편집 2017-10-31 17:03:01
 이호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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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명(地名)은 사람들이 오랜 기간 살아가면서 자신들이 만들어낸 특정 장소의 이름이라 할 수 있다. 특정 장소라 함은 마을, 거리, 산천 또는 지역의 이름 등 다양한 객체들이 포함된다. 따라서 지명에는 그 지역 사람들의 생활양식과 가치관이 들어가 있다고 해도 될 것이다. 지명이 단어이다 보니 지명을 표현할 수 있는 명사, 형용사 등 언어학적으로 접근할 수 있는 가능성도 매우 풍부하다. 사람은 구사하는 말에 따라 그 화자의 의식도 어느 정도 알 수도 있기 때문에 지명을 살피다 보면 특정 지명을 부여한 그 지역 사람들, 나아가 그 나라 사람들의 의식을 가늠할 수 있는 척도가 될 수도 있다.

예를 들어 러시아 시베리아 횡단 철도의 시작점이자 종착점이라 할 수 있는 블라디보스토크는 우리에겐 겨울에도 얼지 않는 부동항으로, 그리고 2012년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APEC)회의가 개최된 곳으로 잘 알려져 있다. 최근 문재인 대통령이 러시아 푸틴 대통령과 북한 핵문제 등 외교관계 격상을 위해 회담한 장소이기도 하다. 이 지명이 지닌 뜻을 알고 나면 러시아 사람들의 아시아 지역에 대한 의식도 엿볼 수 있다.

'블라디보스토크'는 동사명령형과 명사가 합쳐진 합성어로 된 지명이다. 블라디(Влади)는 '점령하다'라는 동사의 명령형이다. '보스토크(восток)'는 '동쪽'이라는 뜻의 명사이다. 따라서 이 지명을 말로 풀이하면 '동쪽을 점령해라'이고, 명사형으로는 '동방의 정복자'라는 뜻이 된다. '블라디보스토크'라는 지명 하나로 러시아인들이 동아시아를 바라보는 의식을 느낄 수 있게 해주는 좋은 예라고 본다. 어떻게 보면 섬뜩한 지명이 아닐 수 없다. 러시아어이고 뜻을 몰랐기 망정이지 '동쪽을 점령해라'라는 해석된 상태로 불렸다면 러시아에 대한 반감마저 살 수 있는, 아시아 지역에 거주하는 사람들에게는 불편한 지명이 아닐 수 없기 때문이다.

지명이 우리에게 주는 매력 또한 낯설지 않다.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예로, 동해안에 '정동진'이라는 곳이 있는데, 여기는 대중들에게 새해 일출과 드라마 촬영 장소로 널리 알려진 명소다. '정동진'이라는 이름이 붙여진 것은 서울의 경복궁(광화문)에서 정확히 동쪽에 위치해 있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남쪽에도 '남동진'이 있다는 것은 대중들은 잘 모른다. '남동진'역시 경복궁에서 정확히 남쪽에 위치해 있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그러나 '서동진'과 '북동진'이 없는 것은 재미있다. 지금이라도 붙이면 되지 않을까?

러시아의 지명은 한국의 지명과는 달리 사람의 이름을 따서 만들어진 지명들이 많다. 그래서인지 인간의 향수처럼 독특한 친근감을 갖게 하고, 고유성과 개성이 강하다는 사실도 느낄 수 있다. 특히 사할린 지역은 역사적으로 일본에 점령되어 있었다. 러시아 사람들이 이 지역을 일본으로부터 해방시키기 위해 전쟁을 치렀던 장소이고, 일본인들의 심각한 차별과 억압을 피해 어쩔 수 없이 사할린 지역으로 이주한 아이누족의 역사도 간직된 곳이다. 그렇기 때문에 이 지역의 지명은 다른 지역의 지명과 비교했을 때 역사적으로 소수민족과 관련된, 그리고 전쟁이나 승리와 관련된 지명들이 많이 있다. 실례로 '차플라노보'라는 마을 이름이 있는데 이 마을은 1945년 사할린 해방 전투에 참여했던 '차플라노보 예브게니 아나톨리예비치'의 이름이 붙여진 지명이고, '바다피야노프카'라는 강은 북사할린 지역을 최초로 비행한 '바다피야노프 미하일 바실리예비치'의 이름을 붙여 명명한 지명이다.

이러한 지명들은 러시아인들의 영웅 의식을 느끼게 해준다. 우리나라의 지명에 아무리 지역의 발전에 지대한 공을 이룬 사람이 있거나 해당 지역을 발견한 사람의 이름을 붙이는 경우는 극히 드물다. 필자의 기억으로는 없는 것 같기도 하다. 그러나 러시아 사할린 지역은 우리와는 정반대이다. 우리의 의식과 러시아인들의 의식이 분명히 다르다는 것을 말해주고 있다. 뿐만 아니라 지형과 지리와 관련된 지명들도 상당수가 있다. 사할린 코르사코프 지역에 '아이루프'라는 강과 호수가 있다. '아이루프'의 '아이'는 아이누족이 사용하는 아이누어로서 러시아어로 번역하면 '화살'이라는 뜻이다. 그렇다면 '아이루프'라는 강과 호수의 지형이 화살의 모습과 매우 유사할 것이라는 것을 짐작할 수 있다. 실제로 '아이루프' 호수와 강은 연결되어 있고 호수의 모양은 과녁의 모습이며 강줄기는 이 호수로부터 흘러나와 마치 화살이 과녁에 들어가는 모습을 연상시킨다. 이 지명이 우리에게 주는 시사점은 지명이 바로 과거의 역사를 말해 준다는 것이다. 만약 '아이루프'라는 강과 호수에 현대식 고층 건물들이 건설되어 있더라도 '아이루프'라는 지명이 그대로 남아 있다면 과거 옛 지명을 말하고 있기 때문에 이 지명을 통해 과거 이 주변에서 사냥을 하던 동물들, 고기잡이를 하던 토착민들, 강을 따라 이동하는 원주민들의 모습과 연관된 자연환경을 짐작할 수 있게 된다. 그래서 지명의 가치를 과소평가하면 안 되는 것이다.

사할린 지역은 우리에게도 역사적으로 중요하고 의미 있는 장소이다. 러시아에서 가장 큰 섬이고, 태평양 전쟁 당시 일본군에 의한 조선인 강제징용 지역으로 잘 알려져 있다. 뿐만 아니라 스탈린에 의한 중앙아시아 지역으로의 한인 강제 이주도 뼈아픈 역사로 기록되어 있다. 우리에게 고려인이라고 알려져 있는 분들이 바로 이들이고 후손들이다. 올해가 한인 디아스포라 80주년이 되는 해이다. 사할린 지역이 역사적으로 한인들과 밀접한 관련이 있는데도 불구하고, 한인의 이름에서 유래된 지명은 찾아볼 수 없었다는 것이 한 가지 아쉬운 점이다. 사할린지역 지명을 통한 러시아인들의 영웅 의식은 느끼지만 그 의식이 이방인들에게는 허락되지 않았나보다.



<김태진 배재대 러시아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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