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시우 연극배우 겸 극작가
이시우 연극배우 겸 극작가
내가 배우라고 하면 흔히 듣는 질문이 있다. 그 많은 대사를 어떻게 외우냐는 것이다. 꽤나 해맑아 보이는 질문이다. 이 질문은 밥은 먹고 사냐를 묻기 전에 던지는 설탕 같은 것이다. 그래도 배우들은 연극에 대한 관심을 가진 질문이라 생각하고 고맙게 받아들인다. 한권의 대본을 어떻게 외우냐고? 생존과 관련된 일이라면 누구나 외울 수 있다. 귀찮긴 하지만 불가능한 일은 아니지 않겠는가. 더 들어가 보자. 신입배우가 알게 되는 사실이 두어 개 있다. 하나는 내 대사만 외워서 될 일이 아니라 상대 대사까지 외워야 연기가 가능하다는 것을 깨닫는 것이고, 또 하나는 대사 외우기보다 감정 흐름을 익히는 것이 더 어렵다는 것이다.

감정을 미리 외우고 있으면 현장에서 발생하는 미묘한 상대 배우의 감정변화에 날것으로 반응하지 못하는 문제가 생기는 것이다. 그래서 연습한다.

감정 노동의 일례를 들어보겠다. 오래전 나는 살인자 역을 맡은 적이 있다. 연습이 끝난 후에도 심장이 튀어나올 정도로 뛰기 시작했고 쉬이 그치지 않아서 운전을 할 수가 없었다. 손이 떨려서 운전대를 잡을 수가 없었던 것이다. 나는 곧장 차를 세워두고 술을 마셨다. 그 후 술기운으로 이완을 해서 겨우 가라앉힐 수 있었다. 뇌는 연극인 줄 알면서도 구분 없이 받아들이고 반응한다. 그래서 진짜 같은 연기가 가능한 것이고 이런 현상 때문에 배우는 힘들다. 외국 배우들은 공연이 끝나면 정신과 치료를 받는다지만 우리는 술로 풀거나 운동이나 여행을 해서 감정의 흔적을 헹궈낸다.

이제 연극에 미치면 중독에서 헤어나오지 못하는 이유를 눈치챌 것이다. 엄청난 존재감이 느껴지고 운명처럼 여겨지기도 하기에 불안정한 토대를 딛고 버티는 것이다. 인문학자들은 지식을 섭렵하고 분석해서 연구를 하지만 배우는 몸으로 체득한다. 이 매력적인 작업을 누가 놓겠는가. 공연을 보는 관객은 작업과정을 모르고 본다. 그래서 날카롭고 부족한 연극에도 박수를 보내준다. 참 감사한 일이다.

심심하신가? 심심하다는 것은 외로움의 다른 표현이니 지금 당장 소극장을 찾아가 보시라. 거기 심장 뛰는 그들이 있다. 존재감을 느끼기 위해 동맥을 찾아 헤맬 필요 없이 소극장으로 가서 연극 한 편에 감성을 흥건히 채우고 오시라. 이시우 연극배우 겸 극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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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12월 두 달간 정예지 대전예술의전당 PD, 이시우 연극배우 겸 극작가, 이예훈 소설가가 집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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