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끔 TV를 보다가 눈물이 날 때가 있다. TV 속 어떤 내용이 내 안의 어떤 것과 공명(共鳴)을 하고, 공감(共感)을 하게 되면, 눈시울이 뜨거워지면서 눈물이 나는 것이다. 미사를 집전하다가, 특히 강론을 하다가 눈물이 나기도 한다. 말씀이 내 안의 어떤 것과 공명을 하고, 말씀을 하시는 분과 내가 공감을 하게 되면, 눈물이 나는 것이다. 공명은 시간과 공간을 뛰어넘게 해주며, 너와 나의 장벽을 무너뜨릴 뿐 아니라 좋은 사람과 나쁜 사람, 높은 사람과 그렇지 못한 사람의 구분을 없애준다.

성경을 보면 예수님께서 공명하며 사셨음을 알 수 있다. 예수님께서는 죄인들의 아픔에 공명하시며 죄인들의 땅에서 죄인들의 친구로 살기를 바라셨다. 왜 죄인들과 함께 식사를 하느냐고 어떤 이들이 비판을 하자 예수님께서 말씀하신다. "튼튼한 이들에게는 의사가 필요하지 않으나 병든 이들에게는 필요하다. 너희는 가서 `내가 바라는 것은 희생 제물이 아니라 자비다`하신 말씀이 무슨 뜻인지 배워라."(마태 9,12-13) 예수님의 공명은 연민(憐憫)을 낳아 예수님께서는 가엾은 마음이 드시어 병자들을 고쳐주셨다.(마태 14,14) 예수님께서는 가엾은 마음이 드셔서 손을 대시어 나병 환자를 고쳐주셨고(마르 1, 41), 외아들을 잃은 과부를 보시고 가엾은 마음이 드시어 외아들을 되살려 주셨다. 무엇보다 예수님께서는 죽음의 길로 가고 있는 인간의 고통과 불행에 연민하셨다. 그래서 전지전능하시고 지극히 거룩하신 그분께서는 인간의 죄를 대신 뒤집어쓰시고 십자가 위에서 가장 비참하고 잔인한 죽음을 맞이하셨다. 이렇게 당신 자신을 한없이 낮추시고 희생하신 예수님께서는, 그리고 예수님께서 보여주신 하느님께서는 공명과 연민의 하느님이시다.

우리 사회에서 크게 이슈가 된 사건들이 있었다. 각지에서 조명을 받게 된 여중생들의 폭력 사건들이다. 한 사람이 다른 사람을 힘으로 그토록 잔인하게 대할 수 있다는 것에 우리 모두는 경악했다. 학생들의 행동이라고 하기에는 너무나 잔인해서 어떤 이들은 더 강력한 처벌을 해야 한다며 청소년 보호법 폐지를 주장하기도 했다. 그러나 나는 이 사건들을 접하면서 아직 이 세상에서 만날 아름답고 좋은 것들이 많은 저 아이들이 어디서 저러한 행동을 배웠을까를 생각하며 안타까운 마음이 들었다. 그리고 나는 이미 3년이 더 지나 버렸지만 우리가 잊지 말아야 할 4월의 화창한 어느 날, 그 날을 기억했다. 나는 그 날 너무나 슬픈 소식을 접하고 안타까움을 넘어 죄책감을 느꼈다. 우리의 어떤 것들이 한 여름의 잔디보다 더 푸른 생때 같은 저 아이들을 바다의 깊은 어둠 속으로 밀어 넣었던 것일까?

내게는 너무나 충격적이었던 세월호 사건 이후 이웃의 고통과 아픔에 공명을 하며 살아야 한다는 복음의 정신을 잊지 않으려, 그리고 다시는 그와 같은 일이 일어나지 않기를 희망하며 세월호 배지를 수단(soutane)에 달고 살기로 하였다. 그러나 몇 년이 지난 후 나와 함께 공명했던 사람들 중에 어떤 이들은 아직도 세월호 사건을 잊지 못하는 이들을 비판하기 시작하였다. 또 어떤 이들은 세월호 유족들과 그들과 공명하며 살고자 하는 이들에게 날을 세운 비판과 폭언을 하기도 하였다. 우리가 다른 사람의 아픔과 고통에 공명을 하지 못한다면, 그리고 힘을 더 센 힘으로 제압을 해도 된다고 생각을 한다면, 어른으로서 여중생 사건의 가해자들에게 무엇을 알려줄 수 있을까?

우리 사회는 다양한 문제를 안고 살아간다. 그리고 우리는 이웃과의 관계에서 다양한 문제들을 겪으며 살아간다. 이러한 다양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일까? 만일 우리가 서로가 서로에게 열린 마음과 진실한 마음을 가지고 공명해 나간다면 어떨까? 다른 사람의 처지와 생각, 그리고 입장에 대한 참된 공명은 예수님께서 그러셨던 것처럼 내가 그를 위해서 비우고 낮추고, 희생을 할 수 있게 해 준다. 연민(compassion)이라는 말은 `함께`(com) `고통을 당하다`(passion)라는 뜻을 가지고 있다. 다른 사람의 문제와 어려움이 곧 나의 고통이기도 하기에 이웃과 함께 울며 기꺼이 나를 비우고 낮추고, 희생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우리가 공명을 해나간다면 먼저 비판 보다는 이해를, 공격 보다는 포용을, 미움 보다는 사랑을 선택하게 될 것이다. 성경은 우리에게 말한다. "내가 이르건대 너희는 신이며 모두 지극히 높으신 분의 아들이다."(시편 82,6) 동물 이하로도 변할 수 있는 우리는 선 자체이시고 사랑 자체이신 하느님의 창조물이자, 그분의 자녀들임을 잊어서는 안 된다. 오창호 천주교 대전교구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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