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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아침 7시 초응급상황

2017-10-30기사 편집 2017-10-30 14:33: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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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 7시쯤, 응급의료센터. 지난 밤 여러 차례의 폭풍(?)들이 지나가고 이제야 고요를 찾은 평온한 아침. 힘들어 하던 환자들도 조금씩 안정을 찾아 편안히 누워 있었고 밖은 1시간 전부터 비가 엄청나게 쏟아 붓고 있었다. 유비무환이라, 우리끼리 하는 말이 있다. '비가 오면 환자가 없다'라고. 그러니 이런 날씨에 응급센터를 찾는 환자는 더 주의 깊게 봐야 한다. 저런 장대비를 뚫고 올 정도로 정말 아픈 거니까.

경찰 두 명을 양쪽으로 대동하고 40대 남자가 여행가방 캐리어를 끌면서 걸어서 응급센터로 들어왔다. 보기 드문 광경이다. 대부분의 응급센터 환자들은 고통스러워하면서 보호자가 부축하고 들어오거나 아예 119에 의해 들것에 실려서 응급센터로 들어오는데, 이 폭우에 멀쩡히 걸어서 들어오다니 말이다.

경찰의 말에 의하면 갑자기 쏟아진 비 때문에 마주오던 대형트럭이 미끄러지면서 중앙선을 넘어 환자가 탄 택시와 정면충돌, 운전기사는 그 자리에서 즉사했고 차체는 심각하게 훼손됐다고 한다. 택시의 승객이었던 환자는 뒷좌석에 앉아 있었는데 외상도 없고 아픈데도 없는데 사고가 너무 커서 걱정이 돼 병원으로 오게 됐다고 했다.

응급실에서 오래 근무하다 보면 나름 촉(?)이 생긴다. 환자를 보는 순간 왠지 느낌이 좋지 않았다. 환자는 혈압, 맥박 등도 괜찮고 신체검진 상에도 특이 소견이 없었다. 배를 만질 때 잠깐 배꼽 주변이 아프다고 했다가 다시 확인할 때는 괜찮다고 했다. 일단 기본 검사를 하면서 응급실에서 경과 관찰을 하기로 했다. 나는 내 근무시간이 끝나가고 있어서 응급센터에 있는 환자들의 상태를 마지막으로 확인하고 조금 전 내원했던 그 환자가 달라진 증상은 없는지 보러 갔다.

환자는 식은땀을 흘리며 불편한 얼굴기색을 하고 있었다. 환자에게 어디 불편한 곳이 있는지 물어봤으나 환자는 없다고 했다. 혈압을 다시 재보니 혈압이 떨어졌다. 다시 신체 검진을 했더니 환자는 배꼽 주위가 조금 불편한 것 같기도 하다고 말했다. 그러고 보니 배가 처음보다 조금 부어 오른 것 같기도 하고. 수액을 다량 주입하고 혈압을 다시 재봐도 여전히 낮았다. CT실에 연락하니 다행히 지금 찍고 있는 환자가 없어 바로 오라고 했다. 우리는 환자의 침대를 밀고 CT실로 달렸다.

CT를 촬영하는데 모니터 상 비장동맥에서 피가 솟고 있는 게 잡혔다. 환자 복강 내로 점점 피가 차오르고 있었다. 초응급 상황! 저 동맥을 막아주지 않으면 환자의 혈관 내에 있는 모든 혈액은 복강 내로 새어 나와 환자는 수 시간 내로 사망할 수 있다. 바로 외과로 연락을 하고 수혈 준비를 하고 환자가 수술실로 갈 때까지 혈압을 유지시켜야 했다. 다행히 7시 40분쯤이라 첫 수술이 시작되지 않아 이 환자가 첫 번째로 수술을 받을 수 있었다. 환자는 수술 3일째 건강한 몸으로 그 캐리어를 끌고 응급센터에 들러 인사를 나누고 3일 전 들어왔던 그 문으로 걸어 나갔다.

지금 생각해 봐도 이 환자분은 정말 운이 좋은 것 같다. 그렇게 험한 사고에서 생존했고, 외상환자를 현장에서 처음 접하는 119 대원이나 경찰이 사고 기전이 심하다고 판단하고 증상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환자를 병원으로 이송했기 때문이다. 또한 다행히 응급센터에서 복강 내 출혈을 빨리 확인하고, 수술을 바로 할 수 있었던 것도 행운이었다. 이 중 어느 하나라도 지연됐다면 환자는 사망했을 수도 있고 생존했어도 여러 합병증으로 입원기간이 길어졌을 것이다. 그야말로 응급의료체계의 중요성을 실감한 사건이었다.

응급의료팀들은 외상환자가 응급센터로 내원하면 신체검진 뿐 아니라 사고 기전을 자세히 물어보게 된다. 이럴 때 어떤 분들은 불쾌하게 생각하기도 한다. 아마 우리가 누구의 잘잘못인가를 가리고 있다고 생각하시는 모양이다. 어떤 분들은 그게 왜 중요하냐고, 그냥 아픈 데만 봐 달라고도 한다. 외상환자는 혈압, 맥박, 신체소견 등도 중요하지만 이에 못지않게 사고 기전에 따라 손상의 부위와 중증도를 예측할 수 있다.

고층 낙상(성인 6m/소아 3m 이상), 차량전복, 30㎝ 이상 차체 찌그러짐, 자동차에서 튕겨져 나감, 동승자의 사망, 30㎞ 이상의 차량에 치인 경우 등은 심각한 손상을 유발하므로 사고 후 증상이 없어도 병원에서 진료를 받아야 한다. 정시경 가톨릭대 대전성모병원 응급의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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