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통제와 더불어 사람들이 오해를 많이 하는 약 중 하나로 고혈압 치료제(혈압약)를 들 수 있다. 고혈압 진단을 받아 혈압약을 처방받아 온 사람 중에는 `혈압약은 한 번 먹으면 평생 먹어야 한다면서요`, `그거 한 번만 안 먹어도 큰일 난다고 하던데`, `아예 처음부터 먹지 않아야 좋은 거 아닌가요`. `혈압약도 오래 먹으면 부작용이 있지 않나요`라는 등의 말을 하며 혈압약 먹기를 꺼리는 사람이 많다.

이처럼 혈압약은 평생 한 번도 빼먹지 않고 먹어야 한다고 생각해서 겁부터 먹는 사람이 많은 것도 사실이다. 감기나 소화불량 같은 병은 치료가 끝나면 약을 끊을 수 있지만 고혈압 같은 만성 질환은 치료하려고 약을 먹는 것이 아니고, 몸을 정상 상태로 유지해주려고 약을 먹는 것이다. 따라서 약을 꾸준히 먹어야 한다.

안경을 쓴다고 눈이 아주 좋아지지 않지만, 안경 없이 불편하게 사는 것보다 안경을 쓰고서라도 편하게 생활하기 위해 안경을 쓰는 것과 같다고 보면 된다. 안경 때문에 불편한 점도 있지만, 잘 보기 위해서는 그런 불편은 감수할 수 있다. 어쩌다 안경을 안 썼다고 당장 큰 문제가 생기지 않듯, 혈압약을 한 번 안 먹었다고 금방 큰일이 생기는 경우도 거의 없다. 빼먹으면 절대 안 된다고 겁먹을 필요도 없다.

심장에서 피가 나올 때의 압력(최고 혈압)과 심장으로 피가 들어갈 때의 압력(최저 혈압)을 수치로 표현한 것이 혈압이다. 120/80mmHg를 정상 혈압으로 간주한다. 심장에서 나온 피는 대동맥을 지나 핏줄을 타고 온몸을 돈 뒤 허파를 거쳐 깨끗해지고, 다시 심장으로 가서 다시 온몸을 돈다.

수압이 낮으면 수돗물이 잘 안 나오듯, 혈압이 너무 낮으면 피가 몸속을 제대로 돌지 못한다. 또 수압이 너무 높으면 낡은 수도관이 터지듯, 혈압이 너무 높아도 핏줄이 터질 수 있다. 혈압이 높은 상태가 오래되면 몸에 여러 합병증이 생길 수 있으니, 합병증을 예방하기 위해서는 약으로라도 혈압을 적정 수준으로 유지해야 한다. 결론을 말하자면 혈압약은 환자를 꼼짝 못 하게 만드는 족쇄가 아니고, 건강하게 사는 데 필요한 예방책이다.

혈압약에도 종류가 많다. 핏속의 물기를 소변으로 빼내서 피의 부피를 줄이는 이뇨제, 심장이 수축하는 힘을 약하게 하고 심장 박동수를 줄이는 약 등이다. 또 호스로 물을 뿌릴 때 호스를 조이면 수압이 높아지듯 핏줄도 조여지면 혈압이 올라가므로 핏줄이 조여지지 않게 하고 조여진 핏줄을 넓게 벌려주는 약도 있다. 혹은 여러 종류의 혈압약을 같이 처방하기도 한다. 사람마다 잘 맞는 혈압약이 따로 있고 함부로 먹으면 위험한 약도 있으니 아무 약이나 함부로 먹으면 안 되고 반드시 의사의 진찰을 받아서 먹어야 한다.

혈압약도 의약품이므로 효과 외에 부작용도 있을 수 있다. 이뇨제는 탈수 증상을 일으킬 수 있고, 심박수를 줄이는 약은 천식을 악화시킬 수 있다. 또 마른기침이 나오게 하거나, 두통을 일으키고 가슴을 두근거리게 하는 약도 있고, 소염진통제 때문에 약효가 떨어질 수 있는 약도 있으니 약사의 복약 지도를 잘 받아야 한다. 특히 약을 먹고 이상 반응이 나타나면 의사와 상담해야 한다.

혈압약은 고혈압을 완치하는 약이 아니고, 몸 상태를 정상으로 유지해주는 약이므로, 혈압이 정상이 됐다고 복약을 중단하면 혈압은 다시 올라갈 수 있다. 혈압약을 먹으면서 바르지 못한 생활습관도 고쳐야 좋은데 싱겁게 먹고, 담배는 끊어야 한다. 술도 절제하는 것이 좋다. 정일영 십자약국 약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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