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추석 연휴는 유난히 길어 전후로 휴가 며칠씩을 보태 20일간의 유럽 여행에 나섰다. 이미 많은 사람이 내 집 드나들 듯 하는 곳이지만 탈규범적인 유희성이라는 여행의 속성 때문인지 나도 모르게 자기 검열을 하고 있었다. 학술활동의 연장이 아니라 `순수 놀이`를 즐기는 것이 아직은 불편하고, 형제와 친족들이 성묘를 하고 제사를 준비할 시간에 공항에 운집한 1인이 된다는 게 조심스러웠다. 하지만 우리 부부가 오래전에 기획한 것이고, 가족을 만나러 가는 여행이니만큼 명절의 뜻에도 부합하는 게 아닌가?

첫 여행지 파리에 도착하니 산티아고 순례길에서 2주간의 여정을 마친 작은아들이 우리를 맞이했다. 파리의 3박 4일은 아침식사가 끝나면 바로 거리로 `출근`하여 저녁 늦게 지친 몸을 이끌고 호텔로 `퇴근`하는 식이었다. 때론 함께 때론 따로 다니면서 각자가 원하는 것을 `폭풍 흡입`하는데, 갈 곳도 많고 볼 것도 많았다. 다만 90년 전 이곳을 찾았던 나혜석의 시선과는 격세지감을 느낀다. "단발을 하고 양복을 입고 빵이나 차를 먹고 침대에서 자고 스켓치 빡스를 들고 연구소를 다니고 책상에서 불란서 말 단자(單字)를 외우고 (…) 실상 조선 여성으로서는 누리지 못할 경제상으로나 기분상 아모 장애되난 일이 하나도 업섯다."(나혜석, 1929)

내 눈에는 담배를 손가락에 끼고 출근하는 세련된 차림의 여성들이 낯설었다. 흡연에 성별 잣대를 들이대는 우리의 문화 관행과는 달리 그녀들은 이 `사소한` 것으로부터 자유로워 보였다. 사소한 것이 결코 사소한 것에 그치지 않을 것이라는 생각이 꼬리를 물자 나혜석이 또 생각났다. "우리가 여긔서는 여자란 나부터도 할 수 없는 약자로만 생각되더니 거기 가서 보니 정치, 경제, 기타 모든 방면에 여자의 세력이 퍽 많습듸다."

파리에서 기차로 1시간 남짓 거리의 베르사유 궁전은 프랑스 혁명기의 여성들이 걸어서 8시간 만에 도착한 곳이다. 빵 만들 밀가루를 달라며 루이 16세를 만나러 간 대열의 선두에 섰던 당시의 파리 여성들. 그즈음 조선에서는 극심한 가뭄으로 삼남지방 백성들의 생계가 위협받자 나라에서는 진휼(賑恤)책을 마련했다. 그런데 진휼 문서에 이름이 오르는 것을 부끄럽게 여긴 양반집 부녀들이 문밖을 나오지 않아 구제를 할 수 없다는 안타까운 보고가 올라왔다.(정조 17년 2월 20일) 가난과 굶주림을 대하는 두 여성 집단의 차이가 오늘날 두 사회의 여성 지위와 필연적인 연관이 있을 법도 하다.

파리 동역에서 테제베를 타고 독일로 넘어가 거기부터는 자동차로 이동했다. 그곳에 사는 큰아들이 합류하여 독일, 스위스, 오스트리아, 체코의 여러 명승지를 찾아다녔다. 유럽의 지붕이라는 융프라우로 가며 그 길목의 베른에 잠시 머물렀다. 도시를 걷는 내내 중세기로 들어온 듯한 묘한 느낌이었다. 스위스는 독자적인 통화를 썼는데, 주차를 해놓고 동전을 구하지 못해 안절부절못하자 마침 그곳에 있던 젊은 한 쌍이 2.5유로에 해당하는 스위스 프랑을 건넸다. 우리 쪽에서 0.5유로가 없으니 3유로를 받으라 했더니 굳이 사양하며 2유로만 달라고 한다. 아무리 애원해도 요지부동. 총총히 사라지는 남녀를 보며, 우리 돈 700원에 불과하지만 배려를 몸으로 익힌 그들이 부러웠다. 내 기억 속의 스위스는 그들과 함께 할 것이다.

루체린, 인스부르크, 짤즈부르크, 비엔나, 라이프치히, 프라하 등의 도시에는 근대적 효율성을 비웃기라도 하듯 독자적인 역사적 시간이 흐르고 있었다. 역설적이게도 그것은 세계 사람을 유혹하는 상품이기도 하다. 역사 사건이나 인물, 유적들을 스쳐 지나면서 동시대의 우리 역사를 되짚는 버릇은 직업병이리라. 인문풍경 자연풍경 다 다르지만 보고 걷고 만나다 보면 또한 사람이고 사람 사는 곳이었다.

10월 3일 개천절은 독일에서도 통일기념의 날로 휴일이었는데, 둘은 내용은 다르지만 개벽이라는 점에서는 같다. 그날 우리는 비엔나 인근 다뉴브 강가의 작은 도시 툴른에 여장을 풀고, 보름달이 비추는 다뉴브 강둑을 거닐었다. 달은 같은 달이로되 땅의 문화는 동서양이 달랐던 것인데, 만남이 가속화될수록 그 다름은 새로운 모양을 빚을 것이다.

이숙인 서울대학교 규장각 한국학 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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