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0월 8일 발생한 미국 캘리포니아 북부지역의 산불로 최소 42명이 사망했고 현재까지 알려진 재산 피해액만 650억 달러(약 73조 6000억 원)에 달합니다. 서울특별시 크기의 약 1.5배에 달하는 22만 에이커(약 890만㎢)의 산림이 불에 타버렸습니다. 캘리포니아 역사상 최악의 산불로 와인 양조장 40곳 이상이 전소됐고, 미국 최고의 와인 산지 나파밸리는 양조자협회(Napa Valley Vintners) 소속 와이너리 330곳 중 47곳이 직접적인 피해를 입었다고 합니다. 2016년 관광객이 2000만 명이 넘었던 나파밸리와 소노마 지역의 와이너리 방문도 대폭 줄 것으로 예상됩니다.

이번 초대형 산불로 인한 피해는 향후 몇 년간 복구가 어려울 것입니다. 제조 과정 중 언제 연기를 쏘였는지에 따라 강하거나 탄 맛이 날 수 있고 품질이 나빠질 수도 있습니다. 나파밸리, 소노마밸리 등 캘리포니아 와인 명산지들의 2017년 와인에서 불내음이 나는 건 어쩔 수 없을 것입니다. 보관되어 숙성 중이던 이전 와인들도 화재의 영향을 피할 수 없습니다. 와인은 일종의 생물이어서 주위 환경의 영향을 받게 됩니다. 다행히 불길을 피했어도 열기로 숙성 중이던 와인이 끓어서 맛이 변할 수 있습니다. 또한 연기에 뒤덮였던 포도나무가 몇 년간 생산할 포도로 만든 와인 맛에 대한 우려도 높습니다.

와인생산에 대한 자연의 영향은 지대합니다. 화재는 아니더라도 봄철의 냉해, 여름철의 폭우, 수확기 가을의 일기불순 등은 와인 생산량과 품질에 악역향을 미칩니다. 세계 최대 와인 생산국인 프랑스의 2017년 와인 생산량은 전년 대비 약 19% 감소하여 1957년 이래 60년 만에 최저수준을 기록할 것으로 예상된다고 합니다. 프랑스의 대표적 와인산지 보르도에는 지난 4월의 한파로 포도나무 싹이 대거 냉해 피해를 입었으며, 그 결과 보르도 와인 생산량이 작년보다 39% 가량 감소할 것이라는 예측되고 있습니다. 샹파뉴에서는 여름 동안 비를 동반한 폭풍이 몰아치면서 포도가 부패하는 현상이 발생해 샴페인 생산량이 애초 예상보다 9% 정도 줄어들 것으로 분석된다고 합니다.

와이너리들은 이러한 자연이 내리는 시련을 극복하기 위해 부단히 노력합니다.

보르도 와인이 블렌딩을 시작한 이유가 자연의 방해를 최소화하면서 균질적인 품질의 와인을 생산하기 위함이라는 주장도 있습니다. 일조량이 부족하면 품질이 떨어지는 카베르네 쇼비뇽(Cabernet Sauvignon)에 비해 덜 영향을 받는 메를로(Merlot)와 까베르네 프랑(Cabernet Franc) 등의 블렌딩 비율을 높여서 대응합니다. 그렇기에 반대로 날씨가 좋았던 그레이트 빈티지들의 까베르네 쇼비뇽의 비율은 보통 평년보다 높습니다.

다행이 이번 캘리포니아 화재시 나파밸리의 포도의 약 85%는 이미 수확이 완료되었었다고 합니다. 포도밭에 남았던 품종의 대부분은 상대적으로 늦게 수확하는 까베르네 쇼비뇽 포도들이었을 것입니다. 보르도 블렌딩을 벤치마킹하는 나파밸리 와이너리들도 블렌딩 비율을 조정하면 어느 정도 와인의 품질을 유지할 수 있을 것으로 판단됩니다. 지난 2014년 8월에도 6.0 규모의 강진의 피해를 너끈히 극복해냈었던 나파밸리이기에, 나파밸리 와이너리들의 저력을 기대합니다.

우리나라 대형할인매장이나 백화점에서는 이번 가을 정기 와인할인행사에서 캘리포니아 산불로 인한 나파밸리 와인가격의 상승 예측에 힘입어 `나파밸리 스페셜존` 운영하는 등으로 그동안의 재고를 털어내는 기회로도 활용하려는 것 같아 보입니다. 공급이 줄어들면 당연히 예상되는 가격 상승 예측이 합리적이라면, 소비자 입장에서도 평소 좋아하는 나파밸리 와인을 저렴하게 구입할 수 있는 기회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ETRI 미래전략연구소 산업전략연구그룹 책임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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