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신정권의 서슬 푸르던 시절, 대학가 독서집단에서 인기있는 책은 단연 <전환시대의 논리>였다. 선배가 내게 권했던 이 책은 우리가 지닌 상식에 어떤 것을 보태주는 교양도서가 아니었다. 오히려 `네 머릿속에 들어 있는 상식을 버려라. 네가 진실이라 믿고 있는 많은 것들은 허위 의식이다. 네 머릿속에 주입한 허상의 실체를 지우고 새로운 눈으로 세계를 다시 바라보라`는 것이었다. 그래서 그에 대한 나의 반응은 놀랍고 두려웠다.

나중에 사실로 밝혀진 베트남전 개입을 위한 미국의 `통킹만 사건` 조작은 당시 중공에 대한 봉쇄를 축으로 한 닉슨 독트린 실행과 주한미군 감축, 그 자리를 대신할 일본의 군사적 재무장 등을 담고 있다. 당시의 시대적 배경은 북한 핵과 미사일 발사로 긴장이 조성된 현재 상황과도 비슷했다.

신고리 원자력발전소 5·6호기 건설 중단여부에 대한 시민합의 형성 논의과정도 그 뿌리에는 이러한 논리가 들어 있다. 그래서 고도의 기술력을 가진 한국 원전산업을 의도적으로 부각시키지 않는 것이다. 반핵은 1980년대 학생운동의 중요 이슈였다. `핵은 나쁘다`는 사고를 바탕에 깔고 `원전을 없애야 한다`고 하는 것은 핵무기 반대와 비교해 여러 가지 시사점을 준다. 원전 반대 이전에 핵무기부터 폐기하도록 한다면 냉전 시대적 사고에서 벗어나는 `발상의 대전환`이 될 것이다. 물론 힘의 논리가 지배하는 국제 사회에서 약자의 생존논리가 받아들여지기는 어렵다.

탈원전을 둘러싸고 공론화 숙의과정을 거쳐 시민합의 최종 결정에 참여한 인원은 471명이었다. 이 과정에서 과연 이 사람들이 5150만명에 이르는 국민을 대표할 수 있느냐 하는 문제가 제기됐다. 통계적 관점에서는 모집단 471명의 찬반에 대한 결정 선택 오차율은 ±4.7%로 본다. 즉, 찬반의 범위가 45.3-54.7% 범위에 있다면 통계적 의미 차이는 없다.

그러나 결과는 59.5%의 공사재개 지지로 공사중단의 오차 범위를 훨씬 넘어섰다. 이러한 결과의 요인은 공사중지로 인한 매몰비용 손실 우려, 과학기술 전반에 대한 파급영향, 원전관련 수출 및 경제 악영향 등 여러 가지로 분석되고 있다.

이번 결과는 단지 신고리 5·6호기 건설재개만을 결정한 것은 아니다. 탈원전에 대한 합의형성 의사결정과정이 시민참여에 의한 직접 민주주의 방식으로 이뤄져 에너지전환의 물꼬를 텄다는데 의미가 있다.

에너지전환이란 석탄 석유 등의 화석연료나 원자력 등의 중앙집중화된 에너지 공급-소비 시스템을 에너지 절약과 재생에너지 기반의 분산화된 에너지 시스템으로 바꾸는 것을 말한다. 이와 함께 지방자치처럼 에너지분권은 에너지전환을 실현하기 위해 중앙정부가 아닌 지방정부의 역할이 보다 강화돼야 함을 의미한다. 결국 에너지전환이란 지속가능한 에너지 시스템으로 바꿔나가는 과정이라 할 수 있다. 이를 위해 기존 에너지체계를 대신 할 신재생에너지를 확대하기 위한 다양한 방법과 대안 검토가 필요하다.

예상되는 대안 에너지 시나리오는 에너지 수요 증가와 공급 확대에 초점을 맞춘 시나리오가 아니다. 오히려 에너지 효율 개선, 에너지 절약, 재생에너지 이용 확대를 통한 탈원전, 탈석탄을 달성하기 위한 로드맵을 담은 다양한 시나리오가 요구된다.

그렇다면 탈원전과 달리 탈석탄은 어떻게 추진해야 할까. 우리나라는 특히 겨울과 봄에 중국으로부터의 북서풍과 황사현상으로 미세먼지에 취약한 상황이다. 이에 대한 대안으로 노후화된 석탄발전소 가동중지, 국내 신규발전소의 LNG 연료전환 등이 추진되고 있다.

한편 환경영향의 최소화를 위해 국제사회의 석탄 퇴출 노력도 진행 중이다. 영국과 프랑스는 2020년대 중반까지 탄소세 부과 및 석탄화력 퇴출을 선언했다. 작년 G20 항저우 정상회의에서는 석탄에 대한 중기적 퇴출을 재확인하고 가스를 친환경 에너지로 선언했다. 이와 함께 월마트, 스타벅스, BMW, GM, 구글 등 글로벌 리더기업들도 재생에너지로 전환을 확산시키고 있다.

급변하는 시대에는 탈석탄으로의 전환을 위해 몇 가지 고려사항이 있다.

안정적 에너지공급, 에너지안보, 기후변화 대응을 위한 준비가 가능한가? 과도한 전기화와 전반적인 에너지소비가 급증하는 상황에서 에너지소비를 막을 방법이 있는가? 수직-집중화된 공급에서 수평-분산 협업 수요관리로 패러다임 전환이 가능한가? 지속가능한 발전을 위한 방법은 있는가?

이러한 질문에 대해 `그렇다`고 답할 수 있다면 지금이 바로 에너지전환을 실현할 적기이다. 과거 전환시대의 논리가 정보독점에서 비롯됐다면, 미래를 향한 에너지 전환시대의 논리는 시민참여와 문제 해결형으로 추진하는 것이어야 한다.

정종관<충남연구원 선임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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